건치,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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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치,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4.2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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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건치는] 와락치유단 김미성 활동가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김미성 활동가

“건치의 한결같음을 보고, 인터뷰를 결정했습니다” 쌍차 해고노동자들의 심리치유를 위한 ‘와락치유단’ 활동가인 김미성 씨는 이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미성 씨는 아이를 낳고 보니, 내 삶이 그리고 세상이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는 게 보였다고 한다. 이런 세상을 당신의 아이가 살아갈 생각을 하니 끔찍했고, 사회의 폭력을 덜어나가는 작은 활동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나갔다. 그러다보니 심리치유전문 기업 마인드프리즘의 직원대표, 김미성의 공감아지트에서 마음트레이너로서도 일을 하고 있다.

2009년 쌍차 해고 노동자 문제가 불거졌고, 지난 2018년 9월 14일 119명 전원 복직이 이뤄질 때까지 약 10여년 간 30명의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쌍차 문제가 한창이던 지난 2012년 대한문 앞에 쌍차 분양소가 설치되고, 해고 노동자 가족들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와락센터'에 자신들 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상담하고 치유하겠다는 목적으로 '와락 치유단'을 구성했다.

여기에 김미성 씨도 활동가로 참여하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싸우는 현장에 함께했다. 그리고 건치도 같은 해 7월부터 ‘와락센터’에서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활동가를 대상으로 치과진료 지원에 나섰다.

“쌍차 해고 노동자가 서른 분이나 돌아가셨다. 그러다보니 사회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많은 분들이 많은 지원을 해 주셨다. 고통의 기간이 너무 길고, 다른 사안도 많다보니, 연대도 점점 느슨해진다. 그런데, 건치는 지금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옆을 지켜주고있다.

사실 사태가 장기화되고, 각각의 이해와 우선순위에 따라 옮겨가는 게 어쩔 수 없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사실 끝까지 옆에 있겠다는 약속을 지키기가 어디 쉬운가?

그 사람(단체)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언제 어디에 있는지를 보면 그의 성실과 진정성을 알 수 있다. 건치 선생님들은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매달 진료차를 타고 와서 치아를 돌봐주는 그 마음 자체가 귀하다. 그 긴 시간 자체가 해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

투쟁 당사자들도, 치과치료를 받으면서 지속적으로 나는 누구나에게 존중받고, 돌봄을 받는 귀한 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고 건치 선생님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한마디 따뜻한 말도 위로가 될 수 있지만, ‘지속성’ 이라는 그 행위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위로와 영향이 사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따뜻한 건치 선생님들

건치와 초반 ‘와락 진료’를 만들어 가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을 물었더니, “신순희‧김철신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단체도 사람의 일이다 보니 단체와 사람을 동일시하는 건 자연스럽다.

김미성 씨는 신순희‧김철신 선생 두 사람에게서 너무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게 건치의 이미지와도 연결이 됐다고.

“사실 상대를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사람들이나 바깥에서의 자기 권위를 그대로 가져오는 분들이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당사자(해고 노동자)에게 몰입해 자기가 더 당사자 같아지는 사람들이 있다. 와락치유단을 대변하는 위치이긴 하나 당사자들의 고통을 함부로 말 할 수 없다. 당사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다 보니 조심스러운 점이 많다.

톡 까놓고 얘기하면 ‘의사’라는 신분 때문에 그 집단에 대한 선입견도 있고, 그런 사람들과 당사자들 사이에서 일하는 건 쉽지 않다. 막말로 ‘밥 한끼’ 먹는 일 조차 고될 때가 있다.

그런데 저 두 분은 ‘모시지’ 않아도 되고, 자기중심이 있으면서도 폭력을 경험한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비교적 편안하게 일을 했다.

한 번은 쌍차 가족들과 신순희‧김철신 선생님과 소고기를 먹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날 신순히 선생님이 굉장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사실 나는 직업상 외부 연대인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선 당사자들의 안색을 살피기 때문에 편하게 밥 먹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자리는 편안하고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굳이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구나 하는 느낌이 기억난다. 신순희 선생님은 사람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90%의 티 안나는 꾸준한 일 계속해 줬으면”

김미성 씨는 아픈 사람들과 공감 대화를 하다보면, 문제가 해결돼야 진짜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이 안 좋아서 마음이 아픈 경우도 있는데 건치의 ‘와락진료’는 현실적 문제를 바로 해결해 주는 일이라고 봤다.

“이런 활동을 하다보면, 공식적인 도움을 주긴 뭐한 소소한 속내들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어느 집에 쌀이 떨어진 걸 알게 됐고, 그걸 말도 못해서 마음이 아플 것이고, 한 두 포대 정도만 도와주면 될 거 같은 상황이 있다.

와락진료가 그랬다. 당사자들이 치과치료를 원했고, 실제로 치료를 받고 고통에서 해결되니 바로 좋아지고. 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세상엔 티 안나게 도와 줘야만 하는 일이 많다. 티가 나지 않더라도 도움이 꼭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 ‘건치’다. 김철신 선생님 같은 경우 노들 야학 분에게 꼭 필요한 교제비 지원을 부탁하기도 했고, 또 흔쾌히 들어주시기도 했다. 물론 당사자에게 허락을 구했다.

보이지 않게 도와주는 90%의 손길이 사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10%의 티냄이 일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니 양쪽의 균형이 중요하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티나지 않은 사사로운 것들이 당사자 개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데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상황이 투쟁 당사자보다 안 좋은 경우도 많다. 옆을 지키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그런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건치 선생님들이 안정적이라생각한다. 지금까지 진정성 있고 성실하게 티나지 않는 지원을 해 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그 자리를 지켜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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