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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아닌 ‘우리’기에 힘을 얻는다”[건치를 일궈온 사람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이희원 전 공동대표(광명성애병원 치과진료부장)
문혁 기자 | 승인 2019.04.26 18:14

1989년 4월 26일 첫발을 낸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이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립(而立)입니다. 설립 이래 국민 건강권 쟁취와 의료모순 극복을 위해 노력해 온 건치의 30년 한 길, 이를 기념하기 위해 본지는 그 길에 함께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연재 기사들은 건치 30주년 기념 특별판 지면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편집자 주

이희원 회원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건치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의 탄생을 주도한 건치의 창립 발기인이다. 1971년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학생 운동을 주도하며 건치의 창립 멤버들과 인연을 맺었다.
 
“군부독재의 막막한 시절에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건치의 창립멤버이다. 한영철 선생을 비롯해 송학선 선생 그리고 유영재 선생과 김광수 선생, 성열수 선생, 대구의 이재용 선생, 대전의 서성구 선생, 부산의 조기종, 차봉환 선생과 같이 학생 운동을 하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당시는 같이 만나도 우르르 만날 수 없었다. 어디서 만나기로 해도, 점조직처럼 각자 흩어져서 우회해서 다시 만났다. 삼선교에 있는 태극당 바로 뒤쪽 지하에 있는 이름도 없는 술집에서 모였다. 선‧후배들과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나 셀리그만의 「경제사관의 제문제」등의 책을 공동번역해서 읽고 토론을 했다” 
 
대학 시절을 학생운동에 전념한 그는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래도 치과의사로 살려면 부끄럽지 않은 치과의사로 살고자’하는 생각에 인제대학교부산백병원 구강악안면외과에서 1981년부터 전공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전공의 시절을 “바쁘게 삶을 일구면서도 내적으로는 갈등이 심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바로 전년에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은 젊은 지식인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큰 상처였다.
 
“전공의 시절엔 일에 치이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도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학생 운동을 하던 내 모습과 치과의사로서의 내 모습이 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우리 주변 상황은 더 어두워지고 심해졌다. 
 
학부 시절에 운동을 하면서, 4.19세대, 6.3세대 선배들이 운동하다 그냥 사회에 흡수돼버리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혁명적인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가서 여전히 운동했다면 군부독재가 종식돼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변화는커녕 더 심화되고 어려워지는 사회 현상들을 보면서 암울해 했었고, 정치권에 줄을 대서 자신의 영달만을 바라는 이들을 보며 ‘변절자’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에 나와 전공의로 바쁘게 살면서, 학부시절 운동하던 이들과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삶에 급급한 건 아닌지, 내적으로 고민하며 아파했고 때로는 부끄러워하고 그랬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던 시절에 강신익 선생이 인제대학교부산백병원에 전공의로 왔다” 
 
'강신익', '전동균' 운명과도 같은 만남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부산대학교 강신익 교수와의 만남을 ‘치과의사로서, 전문인으로서의 운동’이라는 방향성을 세운 계기라고 했다.
 
“강신익 선생이 76학번이고 나는 71학번이다 보니 같은 대학 출신인 것만 알았지 잘 알지는 못했던 사이였다. 그런데 강신익이 나에 대해 학창시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학생운동을 그렇게 열성적으로 했는데, 사회에 나와 단절이 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   
 
강신익 선생은 우리가 전문인으로서, 치과의사로서 할 수 있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급진적이거나 뿔뿔이 흩어져 조직화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지속가능하지도 못하고,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함께 만나고 모여서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했다. 적극 동감했고, 좋다고 했다. 그래서 강신익 선생의 소개로 전동균 선생을 부산에서 만났다.”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전동균’, ‘조영수’, ‘김옥희’, ‘강신익’ 서울대 치과대학 76학번 출신 이들의 이름을 이어 부르며 ‘건치의 이론적 배경을 만들고 조직화한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그렇게 의기투합하고 76학번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한영철, 송학선, 유영재, 김광수, 박길용, 이재용, 서성구, 조기종, 차봉환 선생 등 점차 그 범위를 확대해서 조직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됐다. 

그 뒤로 계속 사람들과 만나면서 많은 논쟁을 벌였다. 당시에는 열심히 운동을 해도 변혁은커녕 왜 더 어려워지는지 의문을 품고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떻게 운동을 해야 할지 방향성을 놓고 고민하던 시기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게 의정부 다락원에서 회의를 하는데, 민청련 의장이었던 김근태 선배가 우리와 함께한 일이다. 당시 수배를 당해 여러 기관에서 체포하려고 혈안이 돼있는 와중임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와 함께 해준 것이다. 우리 조직이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목표는 원대하게 가지되 전술적으로는 구체적으로. 실천은 작은 것 부터’. 우리도 조직의 방향성과 현실적, 전술적 목표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에 관해 몇 년 동안 논쟁을 벌였다. 주된 논쟁은 ‘치과의사 대중조직’으로 갈 것인지, ‘진보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조직’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그 과정을 통해 공개적인 대중조직으로 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시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전국에 있는 치과의사 대중을 상대로 하는 조직으로 가자. 이 길이 ‘지속가능한 운동’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청치, 청년치과의사회가 출범했다”
 
"건치는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있는 것"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건치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의 탄생 과정을 설명하며,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건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건 개인적 차원에서 가능한 게 아니다. 우리가 처한 이 사회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

"만약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처한 이사회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사회로 변화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변화를 위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에 의한 시민사회 운동이 필요하고, 건치 또한 그렇다. 
 
개인은 때론 부끄러움을 잊고 현실과 타협하며 나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조직이 필요하다. 내가 나약해질 때 ‘혼자가 아닌 우리’이기에 힘을 얻는다. 김남주 시인이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했듯이, 우리는 더불어 함께 가고 있는 거다. 나에게 건치는 그런 거다.” 
 
이어 그는 “건치는 출범 이후, 치과의사 조직이라는 이유로 치과의사만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어떤 정책을 주창하며, 창립 때 세운 원칙을 무너뜨린 적이 없다. 건치 구성원이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가 조금은 부족하고 힘들더라도 때론 유혹에 빠지더라도, 건치만큼은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한 덕분이다. 그래서 건치가 자랑스럽고 내가 건치 회원인 게 자랑스럽다.

이희원 회원의 거실에는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한길' 친필이 걸려있다.

건치인으로서 부산 지역 실천 활동에 주력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부산에서 20여 년간 터를 잡았다. 건치 부산‧경남지부 공동대표를 역임하는 등 건치 활동과 지역 사회 내 실천 활동을 병행하며 ‘건치인’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1989년, 부마항쟁 10돌을 앞두고 설립된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의 이사로 참여하는 등 지역사회 내 민주주의 성숙과 민주화운동의 이해를 넓히는 활동을 전개했다.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송기인 신부를 비롯해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 등이 기념사업회 이사로 함께 활동했다. 당시 부산지역에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 참여 했었고, 보건의료계의 대표로 내가 함께했다.  

그렇게 지역사회 내에서 활동을 하던 중,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 당선을 위한 움직임이 부산 내에서 일었다. 당시에는 시민운동단체가 정치에 가담하는 게 바람직하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현실적인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무현 당선을 위한 지지 모임인 희망연대가 출범했다”

그는 부산희망연대 공동대표를 비롯해 ‘노무현과 정치개혁을 위한 치과의사모임(약칭 노정치)’
에 가담하고,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건의료정책 특보를 역임하는 등 현실 정치를 바꾸고자 구체적 행동에 나섰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 발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으며,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탄핵반대 범부산시민 투쟁위원회 공동대표’를 정치 개혁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현실 정치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면서 정치계로 오라는 권유도 몇차례 이어졌다. 

“대선 시절에 특보였던 사람들 중, 몇몇은 장관으로 입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정치 쪽으로 갈 기회가 두어번 있었으나, 마누라의 완강한 반대로 뜻을 접었다.” 
 
"젊은 치과의사들의 활동 공간 만들어야"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부‧경건치 활동을 회상하며, ‘뜨겁고 격한’ 부산의 젊은 후배들과의 만남은 항상 즐거웠다고 말했다. 
 
“내가 부산에 있을 때는 건치 회원들과 학생들과의 교류가 빈번했고, 그래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건치 회원으로 들어온 그런 기억이 있다. 근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최근 건치 신입회원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면서, ‘젊은 치과의사가 와서 활동 할 수 있는 공간’과 ‘정책적 배려’를 만들 것을 당부했다.
 
“예전에는 학부 시절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건치에 오곤 했는데, 지금 상황도 여전히 80년대 출범 당시와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건치에 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 자체가 당시와는 분위기가 다른 듯하다. 청년들은 취업 같은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 부딪히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보니,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주변 상황을 둘러보고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 같다.
 
현실이 그렇다면 건치도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젊은 청년들이 활동 할 수 있는 공간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시민들보다 지나치게 앞서가지 말고, 반보 정도 앞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조직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과 함께 가되 약간 앞에... 참 어려운 문제다.” 
 
끝으로 이희원 전 공동대표는 건치 30주년을 축하하면서도, 기념식에 건치를 만든 사람들의 자리가 비어있다며 전동균‧故 송학선 선생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오늘 전동균 선생하고 잠깐 연락을 했는데, 건치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 중 하나이다. 건치 30주년이라고 하는데, 그 친구가 자리에 없다는 건 좀 공허하다. 송학선 선생이나 지금 몸이 불편한 한영철 선생도 그렇고. 유영재, 김광수, 박길용, 김옥희, 강신익, 조영수, 그때의 주역들이 올지 어떨지...” 

인터뷰를 끝낸 그는 “전동균이 있는 중국 항주에 놀러가야겠다”고 읊조리면서 “이번 주말엔 차마고도로 트래킹을 간다”고 했다.


문혁 기자  mhljb1@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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