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애인치과병원, 10년 걸려도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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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장애인치과병원, 10년 걸려도 세워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4.24 18: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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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주평화치과의원 문은영 원장
문은영 원장

청주 평과치과의원 문은영 원장은 충북 청주지역에서 알아주는 진료봉사자다. 1992년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결혼 후 지난 1997년 일과 육아를 병행키가 어려워 고향인 청주로 내려왔다. 둘째 아이를 낳고, 매주 목요일 단국대 치대 교정과에서 석사공부를 하면서 집- 치과-집에서 벗어날 수 있단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성 보나의 집’에서의 진료였다. ‘성 보나의 집’은 30여 명의 중증 여성자애인들이 사는 시설로 성공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곳이다. 문 원장은 2002년 당시 너댓 살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목요일, 진료를 나갔다. 30명 모두에게 검진부터 발치, 스케일링 보철진료까지 했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는 중에, ‘성 보나의 집’에서 유닛체어가 시설에 있으니, 치과의사가 와서 진료만 하면 된다는 공고를 보게 됐고, 내가 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그러고 가서 보니 유닛체어만 정말 있었다. 나머지 필요한 장비들을 정비해 진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성공회가 굉장히 진보적이고 개방적이고, 합리적이랑 나랑 코드가 잘 맞았다. 시설에 사는 분들을 편하게 ‘언니’라고 불렀는데, 그분들과 우리 아이들하고 참 잘 놀았다”

그렇게 1여년을 꼬박 진료하고 나니, 매주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 그 이후엔 1달에 1번 유지치료만 하기로 했다.

‘꾸준한 10년’의 성과…그린나래 진료소

그러면서 270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충북재활원을 알게 됐고, 당시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세 사람과 의기투합해 지난 2003년부터 매주 목요일 진료를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진료한지 벌써 16년이나 흘렀다.

“당시 충북재활원에서 정부지원 사업을 받아 이미 치과유닛체어와 간단한 진료장비를 갖췄지만, 공중보건의의 배정 등 추가적인 진료 지원이 이뤄지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중 우리가 진료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소문이 나기 마련이라 충북지역 3개 치위생(학)과에서도 나와 진료보조, 장애인과 보호자, 복지사를 대상으로 진료 때 나와 ‘구강보건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충청대 치위생과 남수현 교수님이, 건강상 문제로 치과를 접으면서 고이 소독해 모셔놓은 장비와 재료 일체를 기부해 주셔서 초반 세팅을 할 수 있었다. 또 필요한 재료들은 청주시 치과의사들의 기부로 채워졌다.

지금도 청주시치과의사회에서는 매달 20~30만원을 지원해주고, 개개인이 강연에서 받은 강연료, 상금, 골프대회 수익금을 기부해 주기도 한다.

“당시엔 6명의 치과의사가 돌아가면서 매주 진료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에 있는 분들뿐 아니라 재가 장애인도 진료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진료실을 벗어나는 일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4년에 청주시, 청주시치과의사회, 충북장애인재활협회(이하 재활협) 등 3개 단체가 MOU를 체결하고, ‘그린나래 진료소’를 만들었다. 그에 따라 청주시는 행정지원과 시설홍보를, 재활협에서는 장소 제공, 장비의 소독, 접수, 그리고 신청자를 인터뷰 하고, 필요자를 선별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피콜을 이용해 재가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 나절동안 5~6명의 장애인을 진료하게 됐다.

그러자 청주시치과기공사회에서도 기공물을 무료로 제작해 주겠다고 나섰고, 청주시치과위생사회에서도 진료보조 자원봉사를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일을 하고 있는 ‘그린나래 진료소’ 환경은 열악했다. 건물이 노후 돼 영하 5도만 돼도 수도가 얼고 벽이 얼어버린다. 때문에 콤프레셔도 진료소 안에 둘 수밖에 없었다고. 뿐만 아니라 신청자는 많아 재활협 활동가들의 업무가 너무 많이 늘어나는 문제도 생겼다. 게다가 전동휠체어가 진료소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 환자를 이동시키는 것도 일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달라고 전 시장 때부터 요구했고, 지난해 11월에 시장과 면담을 해서 시의 지원을 이끌어 냈다”

그 결과 청주시에서는 오는 5월 완공을 목표로 하는 청주시 장애인주간보호센터 1층을 ‘그린나래 진료소’ 자리로 내줬다. 시설 장애인 뿐 아니라, 재가 장애인까지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진료소는 오는 7월 문을 연다.

“새로운 곳으로 옮기고 나면, 격주 토요일 오후 진료로 진행할 생각이다. 직장에 다니는 장애인분들도 많고, 치과의사나 치과위생사들도 평일에 시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주말에 진료하면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으니 좋다.

충북지역 3개 치위생(학)과, 청주대, 충북보건과학대, 충청대도 순서를 정해, 내원 환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양치교실을 하고, 예방치료 범위를 늘려볼 생각이다. 올해 하려고 하는 일 중 가장 큰 일이다.

여담이지만, 저 3개 치위생과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었는데 장애인 진료사업을 중심으로 다 같이 모여 구강보건교육 세미나도 하고 학생들끼리도 많이 친해졌다. 남수현 교수님이 계신 충청대 치위생과에는 ‘장애인구강보건’ 강좌가 개설됐고, 동아리도 생겼다. 동아리 학생들이 모여 구강관리 내용을 담은 인형극을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장애인 진료지를 간다고 하면 교수님들까지 나서 봉사조 세팅을 해주기도 한다.

게다가 진료소가 이사를 간다고 하니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소아치과 원장님이 환자를 결박할 수 있는 패디랩 장치가 달린 유닛체어를 기부해 주시겠다고 했다”

“기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꽃향기에 취해 나비가 날아든다고 했던가, ‘그린나래 진료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뜻하지 않은 도움의 손길에 놀란 적이 많다고 문 원장은 전했다.

의료폐기물 수거하는 사장님이 원장님 몰래 그것도 무료로 그린나래 진료소에서 나오는 적출물을 수거해가는 일이나, 재료업체 영업사원이 배달을 왔다가 에이프런과 석션팁을 기부하고 간 일, 자주 고장 나는 체어를 보고 틈틈이 고쳐 준 일, 오스템에서는 체어를 무료로 교체해 주기도 했고, 한번 본 적도 없던 덴트웹 개발자 이현욱 원장이 전산 프로그램을 설치해 준 일 등등 나열하기도 힘들다.

‘그린나래 진료소’를 포함해 장애인 치과진료는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보람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의 계기로, 희망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정신지체 2급에 알콜중독이 있는 40대 남성분이었는데,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얼굴도 일그러져 있었다. 진료소에 처음 왔을 때도 공짜로 해주는 거냐며 비아냥 거리고, 우리를 조롱하기도 하고 욕도 했다. 마음도 많이 다쳤구나 생각했다.

기본적인 진료를 하고, 부분틀니를 해 드렸다. 그러고 나니 일그러졌던 얼굴도 살아나고, 밥도 잘 먹게 돼 건강해졌다. 건강해지니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장애인을 채용하는 곳에 취직하고, 돈을 벌게 되니 저축도 하고. 우연히 같은 시설에 있는 여성 장애인 분과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 정말 그 전의 인생과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알콜 중독자들이 대개 부끄러움이 많은데, 고맙다는 말 대신 맛있는 거 사드시라며 5만 원 짜리 상품권을 들고 쭈뼛거리며 재활협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그 뒤로는 계속 적은 돈이라도 꾸준히 시설에 기부를 하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우리가 조롱을 듣고 빈정 상해서 저 사람을 돌려보냈다면 이렇게까지 인생이 바뀌었을까? 하는. 처음 왔을 때 정말 우리를 힘들게 했다.

그런 비슷한 일은 정말 많다. 그럼에도, 10명이 실패해도 1명만이라도 치과진료를 통해 새로운 삶이 열린다면 정말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오래 하다보면 사명감은 옅어지고 의무감만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일을 떠올리면 다시 힘을 얻는 것 같다.

또 사건사고도 많았고, 한 번 진료하려면 마취가 어려우니까 5명이 체어에 올라가야 하니 어려운 점도 많았다. 장애인 진료는 그 사람에게 예쁜 미소를 선물한다는 것도 있지만, 그를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관심과 연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데도 의미가 있다”

그리고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꾼다(feat. 건치)

충북지역에서 중증 장애인이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 천안에 있는 단국대치과병원이라고 하니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춰진 곳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마저도 몇 개월씩, 반년 씩 기다리는 건 예사라고 한다. 과거 충북대병원에서 장애인 치과진료를 했지만 이젠 치과의사도 채용 안하고 아예 접수조차 받지 않는다고.

“체계적이고 질 높은 장애인치과진료를 위해서라도 권역별 장애인치과진료센터는 꼭 필요하다. 장애인 진료도 체계가 필요하다. 봉사자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다.

극단적으로 모든 장애인이 가난한 건 아니고, 체계 안에서 정당하게 지불하고 치료를 받을 능력이 되는 사람들도 치료 받기가 어렵다.

결국 공공의료기관이 중심이 돼 정책개발도 하고, 기존의 봉사자와 시설, 거기서 이뤄진 내용을 흡수해 지역에 맞는 시스템으로 재편하고 관리하는 일이 답인 것이다.

청주시가 장애인치과진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청주시가 인식하고, 시립 장애인치과병원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찾아가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서 문 원장은 그린나래 진료소는 물론, 1년에 1번 구강보건의 날에 진료를 가는 청주맹학교와 보은 소망원 등에서 쌓인 진료 데이터를 정리하고, 장애인진료를 공공의 영역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신뢰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잃어버린 회원 찾기라도 했음 좋겠다. 건치가”

본과 3학년 때부터 건치 활동을 했다는 문 원장은, 졸업 후 청주로 내려가기 전까지 건치 선배들 치과에서 페이닥터 생활을 하면서 치과의사로서, 제대로 된 시작을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조광제 원장님, 김창집 원장님 치과에서 페이닥터를 했다. 두 분 다 건치 활동도 열심히 하는 분들이라 배울 것도 많았다. 단순히 진료 잘 해서 돈을 번다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기술을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배운 것 같다.

청주에 내려오고 얼마 안됐을 때 청주에서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성명서도 쓰고, 정수장도 찾아가고, 지역 사람들도 만나고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건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일단 나섰었다. 나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도 건치가 있었으면 더욱 신나게 일했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필요할 때 생각나는 건 건치와 건치 사람들이다. 그리고 건치도 날 잊지 않고 작년인가엔 여성 가장에게 치과진료를 지원하는 일을 부탁해 오기도 했다. 나도 이렇게라도 도움 되니 기뻤다. 앞으로도 뭔 일 있으면 나를 좀 껴줬으면 좋겠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 장애인 치과병원을 추진하는 데 있어 문 원장이 낯설지만 친근한 그 이름 ‘건치’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친한 후배인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사회치과학교실 류재인 교수에게 긴급 호출을 보냈다.

“역시 재인이는 전문가답게 내 막연한 생각과 쌓여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해야할지 짚어줬다. 그러면서 청주에 개원하고 있는 건치 회원인 김준용 원장을 소개해 줬다. 김 원장도 이런 일에 관심도 많고 열심인 후배라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데이터들을 잘 정리해서 신뢰받는 데이터를 만드는 건 이제 시간문제다.

그 와중에 또 우리 선배인 신동근 의원이 ‘장애인 구강검진’을 법제화 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자료와 비교도 할 수 있고.

지금까지 누적된 경험과 노력, 공감대가 시스템으로 발전해 정착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 장애인 구강보건 체계의 발전에 관심과, 성원이 필요하다.

20년 걸려 여기까지 왔다. 작게 개인적 봉사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일개 개인의 일이 아니게 돼 버렸다. 10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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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그렇게 2023-08-08 19:08:27
응원하고 박수를 보냅니다. 말 그대로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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