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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녹두꽃』이 『이몽』과 다른 점영화 역사에 말을 걸다- 여덟 번째 이야기
이인문 기자 | 승인 2019.06.17 16:38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2주차 금요일에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SBS)

뜻하지 않게 공중파 드라마에서 우리는 두 영웅을 매주 보고 있다. MBC 드라마 『이몽』은 요즘 화제의 인물(?)인 김원봉이 주인공이고 SBS에서는 녹두장군 전봉준을 소재로 한 드라마 『녹두꽃』이 극의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두 작품 모두 시청률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몽』은 역사의 팩트를 도외시한 무한상상 창작의 여파로 겨우 5%대 미만에서 허덕이고 있으며 『녹두꽃』 역시 작품의 완성도나 기대와는 달리 10%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녹두꽃』은 조금 다르다.

『이몽』이야 지난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는 통찰력은 물론 극적 재미를 획득하는데도 실패해 대망(大亡)의 불명예를 얻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반면 드라마 『녹두꽃』은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인물의 캐릭터를 꿰어내는데 성공하면서 극적 완결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사극드라마의 시청률이 쉽게 오르지 못하는 까닭은 멜로드라마 처럼 중간부터 시청해도 쉽게 스토리를 따라잡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녹두꽃』은 시대의 엄청난 무게에 사극의 재미가 짓눌릴 수 있을 것이란 예단으로 시청자 확보에 어려운 점도 있으리라 본다.

그러나 『녹두꽃』은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피눈물 나는 시대의 벽화를 다양한 계급의 군상들과 함께 잘 그려내고 있다. 1894년 그해, 동학혁명의 깃발아래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명멸했는지를 서사적 재미와 함께 보여주는데 성공했다. 드라마의 배경이 됐던 ‘동학혁명’의 처음과 끝을 한번 따라가 보자.

(출처 SBS)

1884년의 갑신정변을 기억하는가?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친일 개화파의 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나고 이후 한반도는 일본, 청, 러시아의 세력균형 덕분에 10년간 태풍속의 고요 혹은 잃어버린 10년을 보낸다.

이 시기에 고종정부는 많은 근대화 정책과 개화를 시도하지만 보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개혁의 주체’를 명확히 세우고 ‘내정개혁’을 이루는데는 실패한다. 새로운 체제를 세우자는 목소리와 구체제의 혁파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래로부터 시작된다.

최제우의 동학은 이런 흐름에서 창시되었다.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패러다임은 혹세무민이라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해 교주 최제우는 효수되고 만다. 그러나 동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2대교주 최시형에 이르면 더욱 더 많은 백성들 사이에 급속도록 전파된다.

동학의 지도자들은 이미 서학인 천주교가 인정됐음을 지적하며서 최제우의 신원과 동학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집회를 공주와 삼례에 모여 갖는다. 그러나 지방의 수령들은 자신들에게 그럴 권한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급기야 40여 명의 동학교계 지도자 대표가 한양 궐문 앞에 엎드려 신원을 요청하지만 고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드디어 보은에서 대궐기를 한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보국안민’과 ‘척왜양창의’의 깃발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놀란 조정은 어윤중을 보내 달래게 하는데 의외로 동학 지도부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치지향적이고 강경세력인 전봉준의 눈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보은에서 일단 물러난 접주 전봉준은 때를 기다린다. 그 때는 멀리 있지 않았다.

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한국 근현대사에 엄청난 사건들로 확실하게 각인됐던 운명의 1894년.

그해 1월 전라도 고부땅의 군수는 조병갑이었다. 그의 수탈은 상상을 초월했다. 각종 명목의 세금으로 백성들은 오히려 죽은 목숨을 부러워했다. 이곳의 동학 접주가 바로 전봉준(최무성)이다.

그리고 전라도 고부 관아의 악명 높은 이방이자 만석꾼인 백가의 장남인(백가가 여종을 범해 태어난 얼자 출신으로 이름대신 ‘거시기’라 불린다) 백이강(조정석)과 백가의 본처의 아들 백이현(윤시윤)이 각자의 얽힌 운명의 굴레를 풀어나간다.

(출처 SBS)

백이현은 조선의 메이지유신을 꿈꾸는 개화주의자로 문명을 신봉하고 일본을 조선의 롤모델로 여긴다. 여기에 전라도 보부상들의 대부인 도접장 송봉길의 무남독녀 외동딸 송자인(한예리)이 동학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형제와 애증관계를 형성한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자신의 계급성과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두 주인공들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데 있다. 애초에 백이강은 백가의 행동대장이었다. 누구보다 백성 수탈에 앞장섰고 악행을 일삼았던 인물이 점차 전봉준과 함께하며 변모한다. 그리고 마침내 동학군의 선봉대에 서게된다.

반면에 사리분별에 합리적이며 개화문명만이 조선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백이현은 전봉준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단발을 하고 일본편에 서서 동학농민군의 반란을 진압하는 전위에 서게 된다. 드라마는 역사의 팩트라는 씨줄 위에 이야기와 캐릭터의 날줄을 직조해낸다.

전봉준은 조병갑의 학정을 계기로, 드디어 오랜 기간 품속에 가지고 있던 혁명의 죽창을 꺼내든다. 1894년 1월, 고부의 동학도와 농민들은 봉기한다. 창고의 양식을 풀어 백성들에게 나눠주고 수세라는 명목으로 수탈했던 상징, 만석보를 허문다.(드라마의 ‘만석보 폭파장면’은 너무 왜소해 보이긴 했다) 그 여세로 동학군이 처음으로 관군과 맞닥뜨린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급기야는 조선의 모태이자 자존심인 전주성을 함락한다.

1894년은 동학혁명과 함께 청일전쟁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시기였다. 동학군이 전주를 함락하자 다급해진 조정은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만다. 외국의 군대를 불러 들인 것. 청나라 군이 조선땅에 출병하자, 임오군란 후에 맺어진 텐진조약을 근거로 일본 역시 군대를 급파했다.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간파한 동학군은 외국군이 물러나길 바라며 스스로 전주성을 나왔다. 그리고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해 최초의 자치정부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관과 농민이 함께 권력을 나눠 가진 시도였다. 여기에 정부와 12개조 폐정 개혁을 합의하면서 소기의 실리적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일본군은 한반도 침략의 본색을 드러낸다. 경복궁을 강제 점령하고 청나라와는 조선의 주도권을 놓고 전쟁을 벌여 승기를 잡은 일본군은 동학군을 말살해야 후환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우금치에서 동학군을 몰살한다.

동학군의 손에는 죽창과 낫이 들려있었고, 일본군에게는 신식 게트링 연속기관총이 있었다. 백산은 피로 넘쳤다. 1월에 시작된 동학혁명전쟁은 그해 12월말에 동학군이 와해되면서 1년간의 혈투는 끝이난다.

(출처 SBS)

현재 드라마 『녹두꽃』은 정궁인 경복궁이 일본군에 의해 점령된 사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고종이 피체됐고 강압적인 친일 내각을 만들도록 강요한다.(사실 이때 이미 조선은 망했다) 여기에 청나라의 힘을 과신한 민비의 전술적 오류도 한 몫 거든다. 청일전쟁에서 절대 청나라가 패배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일본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개화만이 살길이라 여겨 친일의 양복을 입은 백이현은 혈서로 ‘개화조선’을 화선지에 쓴다. 거병을 촉구하는 고종의 밀지가 전봉준에게 건네진다. 이렇듯 숨가쁜 정세가 화면에 그려지면서 드라마 『녹두꽃』 의 맥을 살아 뛰게 한다. 어떤 결말이 나올지 기대된다.

고종32년 3월. 전봉준은 손화중 등과 함께 교형에 처해진다. '만인 평등'의 신념으로 신분해방을 외쳤던 녹두장군 전봉준. 그가 남긴 마지막 시를 적어본다.

때가 오니 천지가 모두 힘을 합했 건만
운이 다하니 영웅도 스스로 도모할 수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일 뿐 내겐 과실이 없나니
나라를 위하는 단심을 누가 있어 알아줄까.
 

이인문 기자  gcnewsmoon@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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