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미국에 가 보았습니다
상태바
[사는이야기] 미국에 가 보았습니다
  • 김형성
  • 승인 2006.10.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게는 어렸을 적부터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떠올릴 수 있다기 보다는 어떤 이미지이거나 재구성된 상황이거나 혹은 꿈속에 어느 낯선 곳이었거나. 심리학에서는 이걸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뭐 우선 그냥 그곳이라고 해두자 나의 그곳. 그곳에서는 가슴이 막 부풀어 올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으며, 눈물이 나려고 하거나 마구 술이 마시고 싶어진다.

아마도 그곳은 나의 이곳이 아니기 때문일 텐데, 술을 배우기 훨씬 전부터 그런 일이 벌어지곤 했으니, 그때는 -아마 사춘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겠지- 집 뒤 산동네 골목을 달려 멀리 건너편 산자락을 한참 바라보거나 큰길을 따라 엄마 심부름을 가는 양 주먹을 쥐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음박질을 쳤을 것이다.

지금도 가끔 고즈넉한 시간, 요즘처럼 저녁놀이 잘 익어 한강 서편자락이 활활 불이라도 타오를 것 같은 날이면 하나둘 켜지는 타인의 아파트 베란다를 바라보거나, 골목을 오르는 길에 피어오르는 김찌찌게 냄새와 옅은 형광등 불빛을 엿보기라도 하면 금새 숨이 가빠지곤 한다.

이젠 좀 주책스럽다고 할 수도 있으련만, 어떤 날은 좀처럼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워 한참을 동네를 떠돌기도 한다.

어머니는 미국물건, 아니 미제물건들을 참 좋아하셨다.

지금도 집에 가면 누구네가 가져오셨다면서 두툼한 미제 베이컨이나 소세지 다발을 내놓으시거나, 양이 많아 한국에서는 사라진 450mm탄산음료를 박스채 내주시곤 한다.

어렸을적엔 아버지가 씨레이션 박스를 가져오셔서 잔치를 벌였던 기억도 난다. 까만 통조림을 들고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채 열심히 따개를 돌려보면 달콤한 후르츠 칵테일이 나오기도 했고, 느끼하지만 고소한 참치가 나오기도 하고.

미국, 아니 정확히 미제물건은 어머니 아버지의 환타지일 뿐만 아니라 내게도 당시 맛볼 수 없던 후르츠의 달콤함과 영 국산과는 달랐던 초콜릿향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내가 대학에 들어갈 즈음, 이미 대학은 좀 진지한 학생들치고 미국좋다는 말은 무식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고, 반미의 성지란 말이 자랑스럽다는 말과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오던 때였다.

미국의 식민지이거나 반식민지로 한국사회를 이해하는 대학생에게 미제물건이나 코카콜라는 달콤했던 유년의 기억은 반성하고 분석해야할 대상들이었다.

그러나 내 유년의 미국이란 것이 신식국독자나 반제반독점피디나 이런 암호로 해독될 것들이 아니지 않았을까.
어쩌면 씨레이션 상자에서 나오는 은은한 페인트향이나 입가심용까지 챙겨놓은 민트 껌의 향기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건 저녁밥 짓는 냄새 가득한 어느 골목 형광등 불빛 가녀린 따뜻한 창문처럼 남겨져있는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추억에 버무려져버린 미제물건과 미국은 미국산 제품이나 미국 그자체라기 보다 추레한 현실을 잠시 잊혀주게 해줄 위안같은게 아니었을까.

열흘간의 일정으로 다녀온 그곳은 그래서 내가 증오하던 미국을 더욱 닮아가고 있을뿐, 아련한 민트 향을 품은 추억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었다.

항상 가을같은 하늘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예의바른 백인 마을도 불편하기 짝이없었고, 베이컨과 맥주가 가득한 수퍼마킷에서도 카운터를 보는 남미청년들의 우울한 표정이 더 눈에 밟혔고, 뉴욕 구둣가게에서 불친절한 백인 아저씨의 불쾌한 인종차별도, 마약을 팔던 흑인 청년과의 마주침도 내게 나의 그곳에 대한 동경의 현실을 깨주는데 한몫했을 뿐이었다.

아마도 형광등 불빛이 아름다운 것은 골목길에서 창문을 바라볼때 뿐이었을 것이다.
담장너머 초라한 밥상을 마주한 어느 가난한 가족저녁상에 끼어앉아 추억따위나 지껄이고 있다면 참, 세상 편하게 살아온 놈일테니까 말이다.

나의 그곳, 담장 너머 미국땅을 한번은 꼭 밟아볼 날이 있을까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만난 건 거만하고 고달픈 시절을 살고 있는, 나의 그곳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이었다.

어느 시인이 ‘별빛은 따뜻하다’라고 말한 건 저 별에 갈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나에게 자신의 그곳은 살아가는데 위안을 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있던 인연들이 나의 그곳을 더욱 풍성히 살찌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김형성(건치 서경지부 사업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