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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쿠바 여행기 『왜 체 게바라인가?』22. 쿠바의 체 게바라와 우리의 김산 그리고 혁명의 미래
송필경 | 승인 2019.07.29 14:33

벌이 꽃을 다치지 않고 꽃에서 꿀을 얻는 것이
벌이 지닌 가장 가치 있는 본능이라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지닌 가장 가치 있는 본능은 무엇일까?

나는 배려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 힘 없는 사람에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배려 말이다.
붓다의 자비, 공자의 어질음(仁), 예수의 사랑도 본질적으로는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배려하라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배려란 단순히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선행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이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회 환경을 개선하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배려가 사회 제도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가장 짧은 시일 안에 이루는 수단이 혁명 아닐까?

이런 점에서 경제 착취에 몹시 신음했던 대다수 인류에게 착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배려의 이론 근거를 마련한 마르크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은 고마움을 나타내야 마땅하다.

고 신영복 선생께서 『혁명의 진정성과 상상력의 생환을 위하여』이란 글에서 하신 말씀이다.

『혁명의 시기인 20세기가 지나고, 바야흐로 '이후'와 '해체'를 모색하는 탈주의 시대에 다시 혁명의 기억에 접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꾸로 가는 귀성여행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탈주를 위한 탐구여행인가.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 여행이 아니라, 혁명이란 무엇이었으며 오늘의 혁명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이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에 대한 올바른 독법은 거대 담론의 극적 도식을 해체하고 그 속에 묻혀 있는 인간의 진정성에 접속하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과 건너편을 사고하는 일이며 공고한 현실의 벽과 어둠을 넘어 별을 바라보는 성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베트남에서 쿠바의 혁명가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호세 마르티의 존재를 알았다.
또한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호찌민의 이름을 딴 호찌민 초등학교가 쿠바에 있다는 것을 쿠바에서 알았다.
혁명의 진정성에 접속해 본 나라끼리 이심전심으로 서로 존중하고 존경심을 나누었으리라.
기껏 맥아더 동상을 애지중지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무척 힘들 것이다.

혁명의 성자들, 쿠바의 국부 호세 마르티와 베트남의 국부 호찌민(제공 = 송필경)

"게으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질이 고약하지도 않은 사람이 가난하게 산다면 그곳에는 불의가 있다."

나는 이번 연재 글을 통해 호세 마르티의 이 말씀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 까닭은 혁명 이론이나 거대 담론에 관한 내 지식이 얕아서 그렇겠지만 나에게는 이 말씀 보다 더 명확하게 혁명의 진정성을 잘 표현한 말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미국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의 사회주의 예방 의학자이자 공중보건정책 교수인 빈센트 나바로(Vicente Navarro; 1937〜)는 “민중의 건강 증진은 건강한 사회 건설을 통해 실현된다.”고 했다.

유신이 마지막 위세를 떨치던 70년대 말 나는 나바로 교수의 글을 통해 쿠바의 의료제도가 혁명적이며 이상적이라고 어렴풋이 알았다.

나는 1987년 ‘610항쟁’ 이후 의료민주화를 요구하는 '건치(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활동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건강한 의료제도에 관심을 가졌다.

그 가운데 관심을 가장 가질 수밖에 없는 제도는 인간의 얼굴을 한 쿠바 의료제도였다. 올바른 의료 제도 확립은 교육 제도 확립과 더불어 국가가 국민에게 마땅히 해야 할 배려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 사람이 쓴 쿠바 의료제도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책을 보지 못했다. 번역 책은 많이 있다. 전문가들이 전문가들끼리만 논의하는 논문은 있는지는 몰라도 대중이 무릎을 탁치며 ‘옳아, 이런 게 참된 의료제도구나!’라며 감탄할만한 책을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요시다 타로(吉田太郞; 1961〜)는 일본 농업관료로 쿠바에 유기농업을 배우러 갔다. 쿠바 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유기 농업보다 교육과 의료의 혁명적 제도에 감탄했다.

“암치료에서 심장이식까지, 의료비 전부 무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비 전부 무료!”

그는 체류를 1년 반 가량 연장하여 쿠바의 교육과 의료를 파악한 뒤 『교육천국 쿠바를 가다』와 『의료천국 쿠바를 가다』를 썼다. 아마 쿠바 교육과 의료 문제에 관해서 내가 국내에서 접한  책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상세하다. 일본의 농업 관료를 통해 쿠바의 교육과 의료 실체를 알아야 한다는 우리 현실에 서글픔을 떨칠 수 없었다.

언젠가 쿠바의 겉모습이라도 보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기회가 왔다. 2018년 3월 베트남 기행을 할 때 동행한 손호철 교수께서 7월에 쿠바에 같이 가자고 제안 하셔 두 말 않고 승낙했다.
약 4개월간 시간이 있어 쿠바에 관한 여러 책을 구해 사전 공부를 시작했다.

다음 글은 쿠바를 다녀 온 뒤 후 2018년 8월 초 내 페이스북에 쓴 글을 발췌하고 약간 수정했다. 나는 이 글에서 쿠바 의료 실상을 대강 압축하려고 했다.

『<돈 없으면 목숨을 포기해야 하는 한국 의료 제도>
쿠바 가기 얼마 전, 미혼모가 고시촌에서 아이를 기르다가 아이가 죽은 사건을 언론에서 보았다. 아이는 선천적 기형을 안고 태어났고, 기형에 합당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 했고, 분유 값조차 마련할 수 없는 생활고가 겹쳐 아이는 결국 영양실조로 죽은 것 같았다.
국민 소득 3만불, 의사 평균 월 소득이 1천3백만 원으로 추정하는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임신 2개월부터 8개월까지 쿠바에 있었고 산부인과를 신랑이 신부 찾듯 다녔다. 내 생각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쿠바 정부는 임산부를 철저히 관리했다.
일단 임신을 하면 마을진료소(Consultorio; 콘술또리오)에서 임산부 카드를 작성하고 임산부 관리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된다. 가장 감동 받는 프로그램은 심리 상담이었다. 쿠바 임산부들은 반드시 남편과 같이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 임신은 계획한 것인지, 임신으로 인해 심리적 고통은 없는지 등에 대해 심리 상담 받은 후, 담당 의사가 더 이상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사인을 하고 나서야 마을진료소에서 다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마을진료소 산부인과 의사는 매번 임신 상태를 손으로 체크한 다음 각 시기에 필요한 검사를 위해 임산부를 검사기구가 있는 병원으로 보낸다. 임신 몇 주에는 어느 지역 어느 병원으로 가서 초음파를 하고 임신 몇 주에는 어느 병원으로 가서 기형아 검사를 하는 식이다.
마을진료소는 심지어 임산부 집을 방문해서 주거환경까지 기록해 간다. 햇볕이 잘 드는지, 필요한 영양제는 잘 먹고 있는지, 가족들이 임산부를 잘 돕고 있는지를 꼼꼼히 체크한다.…"
(<또 하나의 혁명 쿠바 일차의료; 린다 화이트포드, 로렌스 브렌치 지음, 최명철 외 옮김 메이데이 2010>의 추천의 글에서)

정호현 독립영화감독 증언이다. 정 감독은 쿠바에 가서 쿠바 문화를 체험하러 들렀다가 10살 아래 쿠바 남성과 결혼했다.

쿠바에서는 임신하면 의무적으로 마을진료소를 찾아야 한다. 정 감독이 처음 진료소를 찾아갔을 때 달랑 하나뿐인 너덜너덜한 침대에 누워 허접한 환경에서 일하는 의사까지 의심했다. 그러나 곧바로 기우라는 걸 깨달았다.

국민 소득 5천불 가량, 의사 월급이 우리 돈으로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인 쿠바의 의료 제도다.

쿠바의 유아사망률은 최고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미국보다 낮다. 가난한 쿠바인 평균 수명은 아주 잘사는 미국인과 비슷하다고 한다.

나는 월급쟁이 공중보건의 3년을 빼고 33년을 돈 버는 치과의사 생활을 했다. 퇴근하면서 ‘오늘은 얼마를 벌었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의사들은 진료비가 비싼 비보험 진료를 좋아한다. 치과의사인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환자들은 비싼 진료비를 내는 대신 의사들의 친절을 문제 삼는 적이 꽤 많다.

과장이 심할지는 모르겠지만, 백화점 종업원이 돈 많은 고객에게 갑질 당하는 뉴스를 보면 솔직히 동병상련을 느낀다.

소비자들은 많은 돈을 내기 때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에게 친절을 강하게 요구한다. 음식점 직원이나, 백화점 직원이나, 관광버스 기사나, 식당 주인이나, 의사나, 변호사도 돈 앞에서는 똑같은 처지에 놓인다.

오해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친절을 요구하는 것이 나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우리 관광 전세 버스에는 노래를 못 부르게 되어있다. 승객들이 술 취하다 보면 노래를 하니 못하니 하며 기사의 친절 문제로 승강이 하는 경우가 있다. 눈치 빠른 친구는 기사에게 슬쩍 팁을 준다. 그러면 전세 계약 시간을 넘어 밤늦게까지 버스에서 흥청망청 놀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할 때다. 전세 버스에서 물 이외는 음료나 음식을 금지했다. 먹고 마시면 쓰레기가 남거나 실내에 흘릴 수 있다. 운전기사가 그걸 치울 의무가 없다. 버스 청소하는 시간은 하루 8시간 노동시간에 포함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2시간 마다 꼭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해야 하고 저녁에도 규정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가 승객에게 편의를 봐준다거나 그에 따른 친절을 제공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의 본문을 안전 운전에 맞추기 때문이라 했다.

의료 행위도 넓게 보면 이와 같다 할 수 있다. (친절의 함정에 대해 앞으로 쿠바 의료 제도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여러분에게 이야기하겠다.)

친절도 좋지만 본질적인 의료 행위는 <배려>다. 우리 의료 제도에서는 돈 많은 환자에게 친절하기는 쉽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또 그렇게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의사도 인간인 이상 가난한 환자에게 친절하기란 만만치 않다. 시쳇말로 하면 친절은 옵션이다.

그러나 정 감독의 사례가 보여 주듯 <배려>가 의료 제도 자체가 되면, 가난한 사람도 부자와 똑같은 시스템에서 똑같은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의료에서 <배려>의 핵심은 무상이다. 무상의료란 제도에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쿠바 의사들은 도덕적 자부심과 윤리적 수준이 매우 높다. 월급을 많이 받아야 우리 돈으로 10만 원 정도인데도 말이다.
쿠바 의사들이 쿠바 일반 노동자 수준의 월급을 받으면서도 양심을 지키는 근원적인 동기는 의과대학 졸업할 때까지 무상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의과대학에서는 기숙사비는 물론 무료이고 용돈까지 받는다고 한다.

쿠바에서 국가는 ‘평등을 배려’하는 교육 제도로 의사를 만들고, 무상으로 교육 받은 의사는 ‘평등에 바탕 한 배려’의 의료를 국민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재인 케어’는 고가의 비보험 진료를 보험화 하겠다는 정책이다. 초안이 아직은 거칠고 우리 의료 형편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정책의 본질은 친절보다 배려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대부분 개업 의사들은 비싼 비보험 진료를 값싸고 보험화 하려는 정책에 목숨 걸고 반대 투쟁을 선언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빨갱이로 몰고 가고 있다.

나는 ‘배려’하는 의료의 분위기를 엿보기 위해 쿠바에 갔다. 아주 더 많이 공부하여 우리 실정에 맞는 정교한 의료 제도를 우리 사회에 제시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쿠바의 라틴 아메리카 의과대학은 1998년 해군기지를 개조해 만든 학교로 외국인에게도 개방을 해서 무상교육을 하고 있다. 이 학교를 설립한 1998년도에는 쿠바 경제가 곤두박질 칠 때였다. 그런데도 쿠바 정부는 국방비를 줄여 의료예산을 늘렸다.』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Escuela Latinoamericana de Medicina, ELAM)(제공 = 송필경)


해군 기지를 폐쇄하고 의과대학을 만들었다. 제3세계 학생에게도 개방하여 무료로 교육하고 있다. 

“사람의 생명이 금전보다도 가치가 있고 부드러움과 배려심만 있으면 생명은 구할 수 있다.”
이는 쿠바 혁명 정부가 내건 의료철학이다.

“돈이 인간보다 가치 있는 시대가 된다면 유감이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요. 저는 병이 아니라 인간을 진찰하고 있는 거예요.”

쿠바 혁명 정부의 의료교육제도는 극히 평범한 젊은이를 이런 의사로 키워냈다.
상업의료에 물든 한국 의사라면 이런 철학을 과격한 빨갱이 이론이라 몰아 부칠 것이다.

2018년 7월 쿠바 기행 목적은 체류 기간이 열흘이어서 의료에 대해서 알기 보다는 쿠바 혁명의 분위기를 맛보기 위해서였다. 손호철 교수께서 전문가답게 쿠바 섬에 남아 있는 혁명의 흔적을 열흘 안에 최대한 집어넣은 일정을 짰다.

쿠바를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쿠바를 가난하고, 폐쇄되고, 독재에 신음하는 국가라고 한다. 모든 견해를 미국산 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이다. 물질의 부만 숭상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렌즈의 시각 말이다.

교육과 의료와 주택 문제에 있어서 쿠바는 현 세계에서 복지가 가장 발달한 북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못지않다. 사실 북유럽은 제3세계 식민지를 착취해서 부를 축적했거나 자원이 풍부해 경제 사정이 넉넉한 나라들이다. 이에 비해 쿠바는 노예 식민 경험으로 오래 동안 착취를 당했고 혁명 전에는 미국의 자본에 수탈당했고 천연자원이 많이 없는데다 산업 기반 시설도 전무했다. 오직 설탕 생산으로 지탱해 온 가난한 나라다.

가난한 쿠바 민중, 그러나 그들의 표정에 낙관이 보였다.(제공 = 송필경)

 

그런 가난한 나라 쿠바에서 돈 없어도 교육 받을 수 있고, 돈 없어도 건강을 지킬 수 있고, 돈 없어도 집을 지닐 수 있다.
웬만히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을 어떻게 쿠바는 실현했을까?
그 실현의 도구는 ‘1959년 혁명’이었다!

쿠바 혁명을 이삼십 대 젊은이들이 전광석화처럼 이룬 것 같이 생각하기 쉽다. 혁명 정부 출범 당시 피델은 33세, 체는 31세였는데 이들은 혁명 세력의 최연장자들이었다.

콜럼버스는 지리상으로 쿠바를 발견했다. ‘국부’ 호세 마르티는 억압과 착취와 불평등이 만연한 쿠바 땅에 근원적인 혁명의 필요성을 발견했다.
1959년 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는 한 세기 앞선 선배 호세 마르티를 따른 충실한 후배였을 뿐이다.

스포츠 선수가 올림픽에서 우승하려면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할까? 피겨 스케이트 김연아는 한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1만 번 이상 반복한다고 한다. 공중 회전하기 위해 점프할 때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모든 근육이 동시에 긴장하며 혼연일체 하여 힘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3바퀴 이상 공중 회전한 뒤에 집중한 모든 근육의 긴장을 풀어 부드럽게 내려서야 할 것이다.

개인이 목표를 성취하려면 뛰어난 재능과 엄청난 땀이 필요할진데 한 사회나 국가가 혁명을 통해 제도 개혁을 완성하려면 어떤 재능과 힘이 필요할까?

이삼성 교수의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9』를 보자

『… 우리는  잠깐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 가지 역사 해석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인들이 프랑스와 미국의 식민주의와 군사력에 대항할 수 있는 혁명적 헌신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분석태도를 취한다.

한 흐름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식민주의적 지배와 봉건적 질서라는 사회 역사적 모순, 프랑스와 미국 식민주의 억압성, 그리고 식민주의 세력이 비호한 베트남 내 매판적 지배집단의 반민중성을 강조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자생한 혁명 지도자집단과 민중 사이에 진정한 연대가 존재했음을 주목한다. 이 흐름을 대표하는 것이 가브리엘 콜크(Gabriel Kollko)의 베트남전쟁 인식이다.

다른 흐름은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베트남공산주의가 성공을 거둔 이유를 호찌민을 비롯한 혁명지도자집단이 주도한 조직과 이데올로기적 조작에서 찾는다.
혁명 엘리트가 농민 대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동원해냈는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는 것이다. 마이클 헌트(Michael Hunt) 같은 이들의 베트남전쟁 서술이 후자의 관점을 취하는 예이다.

전자의 경우는 혁명지도집단의 조직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중동원의 능력 못지 않게 민중 자신들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을 강조하는 것이며, 후자는 민중의 피동성과 혁명 엘리트 집단의 조직과 동원 능력을 부각시킨다.』

이 글에서 프랑스를 스페인으로 베트남을 쿠바로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는 역사 관점이 될 수 있으리라.
혁명의 양 날개는 각성한 민중의 자발적 헌신과 혁명 엘리트들이 민중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지도력이라 할 수 있다.
혁명의 성공 조건은 민중은 혁명 엘리트의 지도력에 신뢰를 하고, 혁명 엘리트들은 민중의 염원을 결코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혁명이란 정치권력의 단순한 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중 삶에 근원적인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419 의거와 610항쟁은 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촛불 혁명? 아직 글쎄가 아닐까 …

쿠바 역사에서 혁명 엘리트를 두 사람 꼽으라면 호세 마르티와 피델 카스트로다.
이들의 백인 부모는 스페인계 이민자였다. 식민지 쿠바에서 차별받을 일이 없었다. 총명하기 짝이 없는 이들은 마음먹기 따라 안락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 어릴 때부터 혁명 운동에 뛰어들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을 연민으로 바라보며 혁명을 통하여 제도적 배려를 하고자 하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사심 없었고 인류애에 순수했던 호세 마르티의 사상은 쿠바 민중에게 혁명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키는 영감이 끊임없이 솟아난 원천이었다.
쿠바 민중은 호세 마르티를 가슴에 새겼기 때문에 혁명에 헌신한 것이 아닐까.

피델 카스트로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늘 가난하고 힘없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본능적인 연민을 지니고 있었다. 호세 마르티를 닮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을 실행함으로써 쿠바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까닭은 그 해가 호세 마르티 탄생 100주년이었기 때문이다. 약 6년 뒤 1959년 피델은 기어코 혁명을 이루었다.

아르헨티나 태생인 체 게바라 역시 머리가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고,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공통점이 있다. 체는 대학생 때 오토바이로 남미 여러 나라를 일주하며 원주민과 민중의 비참한 현실에 한없는 연민을 느꼈다.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못 본체 외면하고 의사로써 현실에 안주했다면 세속적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추었는데도 말이다.

1959년 쿠바 혁명이란 수레를 피델 카스트로가 이끌 때 민중은 자발적으로 수레 뒤를 힘껏 밀었다. 민중의 자발적 헌신은 호세 마르티 사상이란 밑거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민중의 열망을 한 치도 낭비하지 않았다.
토지 개혁을 통해 집 문제를 해결했고, 무상 교육을 통해 교육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무상 교육을 통해 배출한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은 의사들을 통하여 무상 의료를 실시했다.

지금 인류의 능력으로 완전한 사회 제도, 다시 말해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을까?
쿠바 혁명이 성공적이라 해도 쿠바를 유토피아 사회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혁명과업을 일사분란하게 추진하기 위해 쿠바는 숨 막히는 관료제로 흘러 ‘미국식 자유’를 제한했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세계 경제 질서를 완강하게 이끌고 있는 미국과 완전히 담을 쌓으니 경제 저발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생활필수품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래고 낡은 거리에도 창조의 정신이 보였다.(제공 = 송필경)

 

어제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가 될 수 있는 게 인류 역사였다. 오늘의 낙관이 내일의 비관이 되기도 한다.
피델은 현명하게도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한 체 게바라의 정신을 미래 혁명의 횃불로 삼았다. 아직도 진행하는 쿠바 혁명은 과거 현재 미래가 어울린 삼위일체였다. 과거는 호세 마르티가 현재는 피델 카스트로가 미래는 체 게바라가 맡았다. 혁명의 실제 권력을 현재인 피델이 독식하지 않았다. 세계 혁명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이 체 게바라를 통하여 미래를 꿈꾼 덕분에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에게 무상 교육, 무상 의료란 제도적 배려를 흔들림 없이 확립할 수 있었다.

쿠바 혁명의 삼위일체: 호세 마르티,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제공 = 송필경)


과거, 현재, 미래의 인물이 한 몸이었다. 

세상은 체 게바라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체 게바라에게 혁명의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영감을 얻었다.
현실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 사람은 피델 카스트로였다. 49년간 집권하면서 혁명의 확실한 결과물을 역사에 남겼다.
1959년 쿠바 혁명을 보면 체 게바라 없이 피델 카스트로의 지도력만으로도 혁명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쿠바에 가기 전에는 체 게바라를 피델의 악세서리인 줄 알았다.

쿠바 혁명 정부가 미국과 단절한 대신 소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쿠바에 소련 미사일을 배치하려하자 미국은 소련과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로 미사일 배치를 저지했다. 소련은 미국과 비밀 협상을 통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철회했다. 소련 처사를 피델 카스트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체 게바라는 소련 역시 또 다른 제국주의란 걸 깨달으면서 반발했다.

체 게바라는 소련에 기댄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떠나 아프리카 콩고에 혁명의 불씨를 지피고자 했다. 떠나면서 피델에게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란 마지막 편지 구절을 남겼고, 피델은 이 구절을 미래를 위한 혁명 표어로 만들었다.

피델은 체가 미래에 던진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체의 상상력을 소중히 간직했다. 인류의 집권 역사에서 1인자가 2인자를 존중을 넘어 숭상한 예가 있었던가. 2인자는 언제나 견제나 제거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는데.

혁명의 성자 호찌민에게는 체 게바라 같은 동지가 없었다. 훌륭한 많은 후배가 있었지만 통일 이후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동지 말이다. 그럼 면에서는 피델은 행복했다.

우리는 우리 땅 한반도에서 아직도 정의와 평등은 고사하고 민족의 독립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직까지 좌절의 연속이다. 미국 트럼프의 의도에 가슴을 졸이고, 일본 아베의 적반하장에 몸서리를 쳐야 한다.

나는 마에스트라 산맥에서 게릴라 투쟁 흔적을 보며 지리산의 사령관 이현상을 떠올렸다.
여기 체 게바라의 기념관을 나서면서 우리 1930년대 혁명가 김산의 비운이 떠올랐다.
체 게바라처럼 스스로 손으로 기록을 남기지 못했지만, 미국 작가 님 웨일즈가 알려준 드넓은 붉은 대륙 한 귀퉁이에서 홀로 애절한 아리랑을 부른 김산 말이다.

님 웨일즈가 기록한 김산의 생애를 보면 우리 스스로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도 체 게바라 못지않게 꿈을 꾼 위대한 기개를 지닌 혁명가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다음은 님 웨일즈가 기록한 김산의 육성이다.

『나의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나라의 역사도 또한 실패의 역사였을 뿐이다. 나는 오로지 하나의 승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 자신에 대한 승리만을.
그러나 이 작은 하나의 승리는 나의 삶을 계속 지탱해갈 수 있는 신념을 나에게 주기에 족하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삶이 경험한 패배와 비극은 나를 절망시키지 않고 나에게 힘을 주었다. 이제 나에게는 청운의 환상이 모두 깨져버렸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인간에 대한 신념은 버리고 있지 않다. 아직도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신념은 버리지 않고 있다.

나는 살면서 늘 실패만 했을 뿐이다. 우리나라 역사도 그러하다. 내 승리는 단 하나다. 나 자신에게 승리했다. 이 작은 승리 하나는 나에게 삶을 이어갈 신념을 주기에 충분했다. 살면서 경험한 패배와 비극에도 다행스럽게 나는 절망 않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 내 환상은 거의 남지 않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역사를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않고 있다.』

김산은 중국 공산당의 오해를 받아 공산당에게 처형당했다.
체 게바라가 콩고에서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경험한 실패는 우리 김산의 실패와 다르지 않다.

체 게바라가 꿈꾼 세상과 김산이 꿈꾼 세상의 바탕에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미래의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체 게바라처럼 될 거야.”라는 가치를 심었다.
김산의 ‘인간에 대한 믿음’이 우리 역사의 소중한 가치가 될 때 우리도 미래에는 천박한 물질만능의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언젠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건설하리라.

김산(본명 장지락)과 체 게바라. 김산은 체 게바라 못지않은 이상을 품은 비운의 혁명가였다. 우리는 이분을 우리 역사에서 어서 빨리 제대로 대접하여야 한다. (제공 = 송필경)

체 게바라의 기념관을 떠나 미국이 피그스 만(Bay of Pigs)이라 부르는 히론 해변(Playa Giron)으로 갔다.
히론 해변 마을 어귀에 입간판이 있다. 가이드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히론, 라틴 아메리카에서 당한 ‘양키’ 제국주의의 첫 패배”

‘양키yanqui’란 단어에 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양키’란 미국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우리가 중국인을 낮잡아 ‘짱꼴라’라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하늘 같이 우르르 본 중국인을 ‘짱꼴라’라 불렀다가는 당시 국가보안법이었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온 집안이 망하는 꼴을 봤을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양키’를 쓰지 못한다. 양키란 말을 공식적으로 썼다간 조중동에게 어떤 모함을 받을지 뻔하지 않는가.

양키에게 승리를 맛본 쿠바, 이 하나만으로도 쿠바 역사는 자존심을 세웠으리라.(제공 = 송필경)

 

조선시대에 중국의 짱꼴라란 측면을 보면서 우리 주체를 세웠다면…
지금 남한 사회에서 미국의 양키란 측면을 보면서 우리 주체를 세운다면…
숭미(崇美)가 아니라 어쩌면 승미(勝美)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1961년 4월 미국 CIA가 미국으로 도망친 쿠바 망명인을 훈련시켜 이 해변을 침공했지만 혁명군과 주민들은 합심하여 이들을 섬멸했다.
우리와 다른 가치로 미국을 ‘양키’라 부르며 저항한 쿠바 역사에 나는 진심으로 경의를 바친다.

쿠바인들은 미국에 저항한 대가로 무척 고통을 받았고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가 자존심을 팔아 얻은 물질적 풍요 때문에 현재의 정신적 타락을 걱정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만이 아니다.
점점 심해지는 강자의 갑질과 약자의 소외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가난한 나라 쿠바에게  우월감을 느낄 자격이 있는가라고 나는 반문하고 싶다.

우리 일행은 히론 해변 호텔에 묵었다.
저녁 먹을 무렵 시커먼 구름이 갑자기 하늘을 뒤덮더니 기어코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갔다. 시커먼 구름이 물러나니 찬란한 한 쌍 무지개가 동쪽 하늘에 반원을 그렸다.

(제공 = 송필경)

내가 음악 듣기위해 이어폰을 꼽으면 항상 첫 곡이 토스티 작곡의 ‘이상(理想; Ideale)’이다.
그 노래를 부른 많은 가수 가운데 내가 듣기에 감미로운 호세 카레라스를 가장 좋아한다.
찬란한 무지개를 보니 호세 카레라스 ‘이상’의 음률이 가슴속에서 나도 모르게 솟아났다.

『너를 따랐네, 평화의 무지개 하늘을 비추듯이
너를 따랐네, 어둠 깃든 밤에 비치는 빛과 같이

너를 느꼈네, 광명과 공기와 향기로운 꽃 속에
나의 외로운 방은 가득했네, 너의 찬란함 속에

너의 음성에 나는 황홀했었네, 오랫동안 꿈속에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십자기를 나는 잊었었네

오라 이상이여, 잠깐 다시 와서 미소 지어라
그러면 나에게 새로운 서광이 다시금 비쳐오리

새로운 서광 비치리
오라 이상이여, 오라, 오라』

비록 짧은 여정이었지만 나는 쿠바에서 이상적인 혁명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만났다.
호세 마르티!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그리고 쿠바의 인민!

쿠바 아바나에서 미국 샬롯 공항과 LA 공항을 거쳐 인천 공항까지 귀국길이 약 26시간 걸렸다. 쿠바 올 때 긴 항공 시간과 쿠바에서 장기간 버스 탑승으로 누적한 피로 때문에 오히려 잠을 설쳤다. 또한 비행기 좌석의 불편함이란…. 이어폰을 달고 있었고 덕분에 호세 카레라스의 이상을 반복해서 들었다. 얼마간 멀뚱한 정신으로, 쿠바의 혁명 이상이 우리사회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끊임없이 떠올렸다.

《오라, 이상이여, 오라, 오라.
;Torna, caro ideale, torna, torna》

이제 두서없는 쿠바 탐방기를 마치겠다.

송필경  sp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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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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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구 2019-07-30 15:08:32

    "게으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질이 고약하지도 않은 사람이 가난하게 산다면 그곳에는 불의가 있다."
    지금까지 본 불의에 대한 설명 가운데 가장 명확하게 와닿는군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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