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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쿠바' 어쩌다 보니 '의대생'[인터뷰] 아바나 의대 2학년 김해완 씨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8.06 17:51

1993년 생 김해완 씨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반년 뒤, 관습적인 공부와 그 목표가 무엇인지 동의할 수 없어 학교를 버리고 교과서를 버리고 책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규범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는 대안학교를 다녔지만, 결국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이를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공부라고 한다.

학교를 나와 남산강학원이란 인문학 공동체에서 5년 동안 생활하며 읽고, 쓰고, 연구실에서 공동주거를 하며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법을 익혔다. 가장 좋아하는 공부도 그곳에서 실컷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14년 남산강학원과 감이당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여행하는’ 것을 취지로 한 Moving Vision Quest(이하 MVQ)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하여 연구실에 오래 있었으면서 나이도 어리고 게다가 백수인 그가 깃대를 들고 뉴욕으로 건너가 게스트 하우스를 꾸리는 일을 맡게 됐다.

원래는 남미문학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스페인어도 안 되고, 해서 프로젝트 목적에 충실하게 비자 유지를 위해 뉴욕 커뮤티니 칼리지 국제학부에 등록, 게스트 하우스를 꾸려 나가며 3년 반 동안 뉴욕 이민자들과 빈민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시선으로 미국이란 곳을 보게됐다.

쿠바에 가게 된 것은 정말 순전히 ‘어쩌다 보니’. 쿠바 아바나 의대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더더욱. 생각해 보지 못한 전개였다고 한다. 본지도 ‘어쩌다 보니’ 김해완 씨와 연이 닿아, 손을 잡고(라고 쓰고 덥석 물어)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키로 했다.

참고로 김해완 씨는 2011년 『다른 십대의 탄생』, 2013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2015년 『돈키호테』, 2018년 『뉴욕과 지성』등을 펴낸 베테랑 작가이기도 하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본지는 지난 5일 쿠바에서 일시 귀국한 김해완 씨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을 비롯해 김해완 씨를 연결해 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송필경 원장,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리병도 전 회장이 함께 자리해 쿠바와 쿠바 의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편집자

김해완 씨

학교를 떠나 진정한 공부를 시작했다

- 만나서 반가워요. 이력이 흥미로운데, 남산강학원엔 어떻게 들어가게 된 건가요?

해완 : 남산강학원 연구실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분의 딸이 저와 중학교 동창이에요. 그 분은 학부모로서 학교 활동에도 적극적이신 분이었는데,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그 분의 주선으로 남산강학원 고병권 선생님이 와서 니체 강의를 하게 됐어요. 고병권 선생님이 니체의 사상을 자신의 말로 풀어 쉽게 설명해 준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날 강연에서 공부를 왜 해야하는 지, 무지가 악이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귀에 들어왔어요.

그 이후로 남산강학원에서 하는 청소년 강좌를 듣게 됐고, 고미숙 선생님을 만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자퇴하기 전까지 학교 다니면서 책 읽고, 감상문 쓰고, 첨삭 받으며 그렇게 지냈죠.

공부를 가장 좋아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보니 대학을 가기 위해 치러야하는 정신적‧물질적 대가도 크고 타협도 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보이면서, 이런 공부가 과연 재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을 거부했다기 보다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작정했어요.

- 자퇴할 때 부모님의 반대나 걱정 같은 건 없었나요?

해완 : 반대하시진 않았지만 걱정은 많이 하셨어요. 자퇴한 후 고미숙 선생님과 인연을 이어가면서 연구실에서 읽고 쓰는 것을 배웠어요.

그러던 중 부모님이 귀농을 결정하시고, 하면서 연구실에 눌러 앉게 됐죠. 5년이나. 연구실에서는 공동주거 실험을 하고 있었고, 한 집에서 연구실 선생님이나 친구들, 여러 명이서 함께 생활했어요. 한 2~3년 정도를요.

- 남산강학원에서 읽고 쓰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주로 어떻게 공부 하나요?

해완 : 연구실에는 정말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와요. 청년부터 반평생을 전업주부로만 살아오신 분들, 대학에서 인문학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철학을 예로 들면, 원전을 주로 읽어요. 원전을 완전히 강독 하고, 자신의 적용점을 찾아낼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면서 그걸 글로 쓰고, 연구실에서 연차가 쌓인 강사 분의 첨삭을 받고 고쳐쓰는 식이에요.

지금 의학이라는 공부를 하는데도 그 때의 읽고 쓰던 그 경험이 많이 도움이 돼요. 보통 서양철학이라고 하면 서양철학사를 공부하고 해설을 읽고, 그 다음에 구체적인 것들을 하지만 연구실에서는 일단 몰라도 부딪히며 시작하는 게 공부였죠. 의학도 그랬어요. 일단 해보자.

- 의학을 공부하면서 재밌는 건 뭔가요?

해완 : 철학을 공부했었으니까, DNA에 빗댄 것들을 많이 들었고 익숙한데. 당시엔 사실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의대에 와서 DNA이 기능이랄지, 단백질이 간단한 선형 구조인데 접히면서 수많은 기능이 나온다는 것을 배웠을 때 ‘구조가 곧 기능’이라는 철학 용어들의 실제를 보게 되니,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이 연결되는 것이 신기했어요. 좀 더 일찍 공부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렇다면 어떻게 하다 쿠바에, 그리고 쿠바 의대에까지 들어가게 됐나요?

해완 : 감이당에서 ‘이타카 프로젝트’를 계획해 2014년 본격적으로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걸 하게 됐어요.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적합한 일자리가 없어 취직이 안되고, 백수가 너무 많다는 것에 착안해서 적게 벌어 적게 쓰고 자립할 수 있는, 좋은 삶의 방식의 하나를 화두로 삼아 ‘공부하며 여행하는’ MVQ 프로젝트를 하자, 연구실이 원래부터 쿠바에 관심이 많아서, 뉴욕에서 쿠바에 갔다가 한국으로 가는 코스를 생각해서, 뉴욕에 베이스 캠프처럼 게스트 하우스를 꾸리게 됐어요.

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제가 어리기도 하고, 백수(!)고 연구실에 오래있었던 사람이기도 해서 제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기로 했어요.

학생 신분으로 가야 비자 받기도 쉽고 해서, 뉴욕 커뮤티니 칼리지에 들어가서 남미문학을 공부해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어가 안돼서 일단 포기하고 1년 어학연수를 거쳐 국제학부에 들어갔어요. 순전히 비자 유지가 목적이었죠.

본지와 김해완 씨가 지난 5일 서울 한 식당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뉴욕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해완 : 첨단이 도시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위장(?)유학으로 다닌 커뮤니티 칼리지는, 국립으로 주로 이민자들이나 조금이라도 더 교육을 받기 위해 온 빈민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사람들과 함께 섞여 지내면서 본 뉴욕은 전혀 다른 곳이었어요.

투 잡도 아니고 쓰리 잡이 당연한,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어떤 친구는 미혼모이며, 낮에는 일을 하고 야간 수업을 들으러 오기도 했고, 뉴욕에 정착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마주쳤어요. 그런 삶의 조건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곳이었죠. 저는 연구실에서 학비를 내줬음에도 워낙 물가가 비싼 곳이라 알바를 해야만 했지만, 불평할 수 없었어요.

뉴욕에서 있던, 3년 반 동안 치과를 딱 한 번 갔어요. 의료비가 비싸니까 갈 엄두도 못 내고 아파도 참고, 참고 버티다가, 끝내는 1천불을 현찰로 들고 어둠의 경로(?)로 알게 된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았어요.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MVQ 연구실에서 쿠바에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서, 여기보다 낫겠지 하는 생각으로 덥석 가겠다고 했죠.

원래는 남미문학이 하고 싶었는데….

- 원래도 쿠바에 관심이 있었나요?

해완 : 아뇨.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었죠. 로망 같은 건 없었지만.

- 남미 문학이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요?

해완 : 사실 쿠바는 생각도 안했고, 멕시코, 콜롬비아, 칠레에 가고 싶었죠.

아무튼, 뉴욕에서 남미인 커뮤니티에서 살기도 했었고, 또 자본의 심장부 같은 뉴욕과 다른 역사와 배경을 가진 아바나에 가면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되겠다. 쿠바 살면서 하고 싶었던 남미문학이나 하자. 이런 생각으로 갔어요.

그런데 슈퍼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줄은 몰랐죠. (웃음) 그 정도로 쿠바 상황을 모르고 갔어요.

-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학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데….

해완 : 원래도 문학 관련 과에 입학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어요. 쿠바엔 ‘엘람’이라고 해서 국가장학생을 받는 제도가 있어서 6개월 어학연수를 마치고 분주하게 멕시코 가서 공증도 받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우리나라랑 쿠바는 수교국도 아닌데 ‘엘람’이 될 리가 없잖아요? 그걸 또 막판에 알게 돼서 다 뒤집혔죠. 게다가 쿠바정부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엘람의 형식도 많이 바뀌었구요. 전에는 100% 쿠바정부에서 학비 등을 지원하다가, 이제는 예를 들면 앙골라에서 쿠바에 돈을 지불하고 국가장학생을 보내는 식으로 ‘엘람’이 변했어요.

아무튼, 제가 원래 가려던 문학과는 커트라인이 높기도 했고, 엘람도 불가능해서 자비로,  대학에서 커트라인이 가장 낮은 의과대학에 지원하게 됐어요. 쿠바도 많이 달라져서, 외국인이 돈을 내면 거의 다 입학할 수 있도록 해 놓았어요. 고등학교 졸업장, 스페인어 시험 점수, 범죄 및 질병정보만 내면요.

아, 그리고 쿠바인도 의대 가기가 젤 쉬워요. 가장 많이 뽑기도 하구요.

- 그럼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뭐에요?

해완 : 경제봉쇄가 철폐되고 관광업이 뜨면서, 언어학과가 가장 인기에요. 들어가기도 어렵고, 커트라인도 높아요. 철학과나 심리학과, 언어학과 커트라인이 90점대 중후반이라면 의대는 70점입니다.

- 어쨌든 의대 공부를 시작했고, 하자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다면?

해완 : 17살에 자퇴하고, 뉴욕에 가기 전 5년 동안 연구실에서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철학을 알아야만 인생의 진리를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쿠바에 와서 지내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문학 공부가 좌절되면서, 구체적인 것을 공부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기술을 배우면 현장을 가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단순히 기술하면 의술이지란 생각으로 조금 맘 편하게 의대를 가게 됐어요.

- 쿠바의대 규모는 어떻게 되나요? 의대 공부는 또 어때요?

해완 : 아바나에만 의대학부가 5~6개 정도고, 아바나 의대 정원만 300명이에요. 뽑기도 많이 뽑고, 커트라인도 낮지만, 졸업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까 수업은 굉장히 깐깐하거든요. 절대평가이고, 300명 입학하면 20~30%정도만 보통 졸업해요. 3학년(본과)에 올라가서 임상 수업을 받으면 그 때 절반 정도가 그만 둬요.

의대 1학년부터 병원 콜을 들어가요. 수업 중에 뽈리끌리니꼬라고 동네 종합병원이나 꼰술또리오(consultorio)라는 진료소에 가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서 4시간 동안 참관하는 게 있어요.

- 엄청 빡(?)세네요. 쿠바에서 의사의 지위? 대우? 노동조건은 어떤가요?

해완 : 노동강도가 정말 세요. 꼰술또리오에서는 오전에만 진료하고 오후엔 무조건 가정의는 방문진료를 가고, 클리닉 히스토리를 작성해야 해요. 보통 하루에 할당되는 가정방문은 16건이고, 임산부가 있으면 거긴 매일 들러야 해요. 1일 1방문이 원칙이에요.

게다가 쿠바가 물자가 부족해서, 복사기도 없어서 클리닉 히스토리를 보관용까지 2장을 수기로 써야 해요. 그래서 왕진 갔다가 집에 가서 서류작업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월급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이 한국 돈으로 2만 원에서 3만 원 정도인데, 의사는 10만 원 정도로 가장 높고, 높은 만큼 노동 강도는 무시무시하죠.

(왼쪽) 건치 송필경 원장 (오른쪽) 건치 김철신 편집국장

- 감이 잘 안와서 그런데, 2~3만 원 봉급으로 생활이 가능한가요?

해완 : 사회주의 국가라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들은 무척 싸고, 기본적으로 집은 나오니까요. 다만 재정 상황에 따라 정부가 배급을 줄이거나 하는 게 있죠.

자급자족 할 수 있는 쌀은 10kg에 1천 원에 살 수 있지만, 수입품은 수입가 그대로 판매하기 때문에 식용유 같은 건 3천 원이에요. 버스비는 40~50원 정도지만 택시는 5~6천 원 나오는 게 보통이에요. 요금도 배로 뛰고.

사람이 정말 배급 빵만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라서, 예를 들면 정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밀가루를 빼돌려 빵을 만들어 파는 데 다 알면서도 눈감아 주는 게 있죠.

- 의사들도 그런 일을 하는 경우가 있나요?

해완 : 친구 어머니가 치과의사인데, 원칙상 교정도 쿠바는 무료거든요? 그런데 몰래 돈을 받고 진료 순서를 바꿔 준다던지, 좋은 재료로 해준다던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부패지수로 보면 의사들의 경우가 가장 낮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존경 받는 직업이에요. 꼭 진료를 잘해달라는 뜻이 아니라 그들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환자들이 빵이나 하다못해 커피라도 많이 들고와요. 명예직이죠.

- 그래서 의대가 그렇게 인기가 없군요.

해완 : 보통 의사가 되면 의무감만 있고 수입이 되진 않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만 하게 돼죠. 제가 만난 의사분들은 정말 겸손하셨어요.

- 쿠바 의대생들이 선호하는 과가 있나요?

해완 : 외과의사가 가장 인기가 많아요. 그 다음에 소아과, 산부인과 정도? 사실 어떤 의사가 돼도 월급에 차이가 없어서,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해요. 역시 의사라면 수술을 해야지. 하는 식이에요.

성형외과를 전공하고 싶어하는 친구는 딱 한 명 봤어요. 졸업하고 외국에 나갈 걸 생각하는 친구였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은 외과에 가고 싶어 해요.

게다가 무상교육 이니까, 동기부여가 안 되면 다른 과로 전과도 쉽게 해요. 몇몇 직종을 제외하고는 월급도 비슷하니까, 경쟁도 별로 없구요.

쿠바인들을 보면, 공부해서 졸업장이 사회‧경제적 지위와 연결되지 않으니까,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서 하는 거에요. 혹은 부모세대의 배움의 한 때문에? 사실 사설 레스토랑에서만 일해도 기본 150불 정도는 벌 수 있으니까요.

- 자본주의 의료의 핵심이 ‘친절’이라면 쿠바의 의료는 ‘기다림’이란 말이 있어요. 기다림이란 말을 불친절로 바꿀 수도 있지만….

해완 : 저는 아직 의사도 아니고 의대생이라서, 환자로서 쿠바의 의료를 경험하고 있어요.

가정의들을 통한 예방의학이 많이 인상 깊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 축농증이나 비염 때문에 상당히 고생을 했는데, 결국 한의원 가서 고쳤거든요.

우리나라에서는 좀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지만, 쿠바에서는 예방의학에 관심이 많고 연구도 많이 하고 있어요. 식생활이라던가 자기관리를 강조하는 한방의 취지와 연결고리가 많아요.

아, 불친절이라고 하면…. 서비스 개념이 없는 의료는 처음이라 재밌었어요. 뉴욕에 있을 때 치과를 못 간 건 돈이 없어서였지, 서비스를 받는 건 똑같거든요. 그런데 여긴 그런 친절한 서비스는 없죠.

사마귀가 나서 뽈리끌리니꼬 피부과에 갔을 때, 일부러 의대 교복을 입고 가서 좀 순서를 빨리 당겨달라고 했죠.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내일 오전 11시까지 오라고 하시는 거에요. 오 통하는군. 이라고 생각해, 다음 날 딱 맞춰서 11시에 가니 제 앞에 대기 환자가 15명이나 있는 거에요.

그 선생님은 제 예약시간을 잡아준 게 아니라, 나는 11시부터 있으니 그 때 오란 말이었어요. 대기 환자들도 모두 ‘11시에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더라구요. (웃음)

결국 오랜 기다림 끝에 절제술을 받았는데, 의약품이 부족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넌 외국인이니까 집에 항생제 있지? 그거 먹어”라고 하시더라구요. 또 그렇게 낫기를 기다렸죠.

- 유학생도 의료비가 무룐가요?

해완 : 아뇨. 영화 『식코』의 첫 장면이 미국인이 쿠바에서 무료로 진료를 받는 걸로 시작하는데, 그건 설정이 아니었을까 해요. 외국인에게 저렴할 뿐이지 공짜는 아니에요. 저는 1년에 쿠바 정부에 건강보험료를 60만 원씩 내요. 엘람으로 온 친구들은 한 30% 정도 내는 걸로 알고 있어요.

(왼쪽) 김해완 씨 (오른쪽) 건약 리병도 전 회장

의사로서의 길…아직 멀었지만
몸과 건강권에 대해 얘기하고파

- 쿠바도 세대 갈등 같은 게 있나요?

해완 :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너무 달라요. 쿠바 청년들과 이야기 하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만나는 건 주로 학생들이니까, 쿠바가 관광업에 투자하면서 그 혜택을 보고 자란 세대기도 하고, 전 세대보다는 개성 있고 다양하죠. 그래서 사실 쿠바를 떠난 젊은이들도 많아요. 전문직 쿠바인들이 불만이 많은 지점도 이런식으로 두뇌유출이 되기 때문이에요.

혁명도 알겠고, 혜택 받는 것도 알겠는데, 그것이 지금도 유효하냐 묻는 청년들이 많아요. 혁명세대와 격은 굴곡도 다르고, 쿠바도 짧은 시기에 많은 변화를 이룬 나라니까요.

특히 갈등이 나타나는 부분은 주거문제에요. 아바나를 예로 들면, 빈집이 없어요. 공급이 안되는 거죠. 청년들이 결혼을 해도, 집이 없어 부모 집에서 나올 수 없으니까 결혼을 안하던가,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던가.

가족중심 문화가 있어서, 전 세대가 모여살기 때문에 사생활도 없고. 그런 스트레스가 크죠. 그런데도 신기하게 극단적으로 폭발하거나 하진 않는 거 같아요. 갈등은 있지만 또 같이 살아요.

그래서 고작 쿠바에 산 지 2년 된 제가 버스 노선을 가장 많이, 잘 알아요. 가족중심이다 보니 국지적으로, 자기 사는 동네와 주변 정도만 아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수도에 가면 국적이 없다고 하는데, 아바나도 그런 편이긴 하지만 살면서 본 아바나는 하나의 거대한 시골같다는 느낌도 있어요.

- 쿠바 혁명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날씨가 따뜻했기 때문이란 설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다 있고, 겨울엔 자칫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겨울이 오기 전에 혁명이든 뭐든 끝내야 하니까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거죠. 갈등이 있어도 극단적이지 않은 건 겨울이 없어서 같네요.

앞으로, 졸업 후에는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요?

해완 : 의대를 택할 때가 자퇴할 때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사실 저는 의사보다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더 컸고, 뉴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과 다른 현실을 보면서 사람을 더 알고 싶었어요.

문학 공부 계획이 엎어지면서, 다시 고민하면서 문학은 아닌 거 같고 구체적인 걸 공부하고 싶어 의대를 가기로 결심한 거구요. 하고 싶은 건 되게 많은 데 의사로서 살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공부할 것도 많이 남았고.

다만, 공부하면서 몸에 대한 책을 쓰고 싶기도 하고 남산강학원 연구실에서 하는 것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몸에 대해, 건강권이란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같이 공부하고 싶어요.

또 만약에 임상 의사가 된다면, 대체의학 쪽으로 공부할 것 같아요.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이지만요. 클리닉으로 가서 많은 환자를 보고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사실 한국에 돌아가서 의사를 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구요.

- 의사 중에 혁명가들이 많아요. 체게바라 부터 닥터 노먼 베쑨이나, 프란츠 파농, 루쉰 등….  글로써 의학을 하는 사람이 이젠 없어요. 세계 최초라 할 수 있는 무상의료를 실현한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경험하고 또 그것을 글로 써내는 해완 씨의 앞날이 정말 기대되네요.

인문학의 시작이 자연과학을 해석하기 위해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학과 의학의 접목 지점은 명확하고,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을 거 같네요.

해완 : 감사합니다.

안은선 기자  gleam0604@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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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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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후진국? 2019-08-12 17:24:12

    Cuba has been ranked by UNECO as first on international mathematics and reading tests. (Global Politics. Oxford University Press 2016)   삭제

    • ㅇㅇ 2019-08-09 08:31:32

      교육후진국 쿠바에서 제일 낮은 과인 의과대에 커트라인 맞춰 들어간게 뉴스꺼리될일인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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