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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도 지옥도 아닌[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1]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김해완 | 승인 2019.08.06 18:01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가 올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키로 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올해 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가 있다. 해외에 살면서부터 한국 드라마와 담을 쌓고 살던 나였건만, 아는 동생의 강력한 추천으로 결국 보고 말았다. 그 작품은 바로 JTBC의 『스카이 캐슬』이다. 역시, 명성대로였다. 너무나 한국적이어서 더욱 더 소름 돋았던 살벌한 입시 현장은 참 오랜만에 고국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드라마를 감상하는 나의 관점 포인트는 또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서울 의대’라는 존재였다. 캐슬에 사는 가족들 모두가 자신의 아이들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리는데, 하필이면 그 성공의 전당이 법대도 공대도 아닌 의대다. 의대가 뭐라고, 그리고 의사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설정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의(醫)’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직업은 정말로 사회적 명예(그리고 돈)을 뜻하니까. 그렇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이것들이 당연하게 보일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장소는 ‘서울 의대’가 아닌 아바나 의대이기 때문이다.

아바나 의대 교실 모습 (제공=김해완)

현재 나는 쿠바에 있는 아바나 의과 대학교(La Universidad de la Ciencia Médica de la Habana)의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곳의 친구들은 세상 여느 의대생들과 다를 바 없이 의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공부를 한다. 그러나 그 풍경은 한국과 사뭇 다르다. 졸업은 어렵지만 입학만큼은 어떤 전공보다도 커트라인이 낮기에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절대 평가를 따르기에 학우들 사이에는 경쟁 심리가 없다. 의사들마저도 자신이 학창 시절 때 몇 번이나 낙제할 뻔 했었는지 자의식 없이 자랑할 정도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망고 나무 밑에 느긋하게 누워 있는 동급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국인의 본능과 함께 순간적으로 ‘예서 엄마’에 빙의된다. 잔소리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놈의 자식들, 공부 좀 해라! 그렇지만 나 또한 이 친구들의 인성이 ‘예서’보다 훨씬 낫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어쩌다가 이 희한한 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10년 전, 나는 한국에서 다니던 고등학교를 중퇴를 했다. 그리고 대중지성 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들어가서 5년 간 공동체 생활과 인문학을 함께 배웠다. 아, 그렇지만 엄청난 고뇌 끝에 이런 결단을 내렸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학교 공부가 너무 지루했고, 그에 비해 연구실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느꼈을 따름이었다.

5년 전에 뉴욕에 갔을 때도 역시 가벼운 마음이었다. 연구실은 그 당시 ‘길 위에서 공부하자’는 모토와 함께 학인들을 여행을 보내는 Moving Vision Quest(이하 MVQ)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뉴욕에 MVQ 베이스캠프를 꾸려보라는 제안을 하셨다. ‘헬조선’을 탈출해보고 싶은 마음은 여느 청년들과 다를 것 없었던 나는 덥석 기회를 받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생고생을 했다. 하지만 뉴욕 사람들 틈에서 삼 년을 구르고 나자, 그 시간의 끝자락에서는 내 진로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무시무시한 도시는 제 아무리 인종, 문화, 언어가 달라도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공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이 공감의 연결고리, 즉 사람의 몸과 마음에 대한 탐구와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내가 쿠바에서 의학을 선택하게 된 것에는 바로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뉴욕에서 쿠바로 건너온 것도 역시 MVQ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원래는 이곳에서 남미 문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는데, 막상 쿠바에 오자 마음이 바뀌었다.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기술이 있어야 구체적인 현장을 가질 수 있고, 현장이 있어야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탐구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 쿠바 의학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이 번뜩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 기술이라면 역시 의술이지! 그렇게 나는 우여곡절 끝에 20대 후반에 늦깎이 학생으로 아바나 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학교를 떠나 있었던 지난 10년의 세월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매일 쪽지 시험에 허덕이면서 이과 공부의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Calixto Garcia 병원(제공=김해완)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의료 기술이 발전되지도 않는 나라에서 유학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돈 낭비라는 의견이 한 쪽이라면, 의료 복지가 잘 돼 있는 나라에서 더 훌륭한 의료를 배울 수 있다는 의견은 또 다른 쪽이다. 이것은 쿠바라는 나라에 대한 엇갈린 외부의 평가를 그대로 반영한다.

쿠바는 사회주의 국가다. 그것도 미국의 영향력 앞에서 ‘노(No)’라고 말하며 고립무원의 상태를 버텨내고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나라다. 그리고 쿠바의 이런 특수한 상황은 사람들 사이에 여러 오해와 논쟁을 야기해왔다.

가령, 이곳에서 의료 시스템과 의료 교육은 100% 무료다. (의대 내에 경쟁 구도가 없고, 의사들에게 권위 의식이 없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쿠바는 제한된 자본으로도 신약 개발을 멈추지 않고, 사회적 인프라가 빈약한 시골 구석구석까지 의사를 보내고 있다. 또 매년 수천 명의 의사를 배출해 내면서 이들을 전 세계 방방곡곡으로 의료 미션을 보낸다. 그곳에서 그들은 미국 의사보다 훨씬 낫다는 명성을 얻는 중이다.

GDP가 필리핀보다 더 낮고 경제 봉쇄가 반세기 넘게 지속되고 있는 나라에서, 이런 사회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놀랍게도 그렇다. 누구는 이를 두고 ‘의료 천국’이라고 부른다. 쿠바가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나라지만, 의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국민들의 삶의 질은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료 무료’를 ‘의료 천국’과 직결시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상상력이다. 이 순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한국의 의료 서비스가 공짜’인 상황을 연상한다. 쾌적한 환경, 부족하지 않은 의약품, 늘 구비돼 있는 최신 기계…….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이 중 아무것도 쿠바에서 찾을 수 없다.

의료가 사회화된다는 것, 그것도 자본이 부족한 나라에서 의료가 사회화된다는 것은 ‘의료’라는 개념과 행위를 둘러싼 모든 배치가 통째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이곳에는 서비스라는 개념이 없다. 환자는 돈을 낸다는 이유를 들어 의사에게 서비스 정신을 요구할 수 없고, 의사 역시 환자를 서비스를 판매해야 하는 고객으로 취급할 수 없다.

이것의 장점은 의사-환자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관료주의 경향이 강해지고 또 효율성이 사라진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예약 시간에 맞춰가도 병원에 사람이 많으면 3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요, 의사가 자리를 비우면 다음날이나 다다음날에 병원을 재방문해야 하는 상황도 흔하다.

약을 타기 위해 약국에서 대기하는 사람들 (제공=김해완)

사정이 이렇다 보니, 쿠바 의료는 상대적으로 허술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치료에 섬세함이 떨어지고, 처방전을 받아도 약국에 약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아 임플란트를 하려고 해도 재료가 없어서 그냥 발치만 한다. 의료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고사하고, 경제난과 인프라 부족 때문에 현상 유지를 하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쿠바의 사회주의 노선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사실들을 근거로 내세워 쿠바를 ‘의료 지옥’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약도 없는 상황을 ‘국민을 위한 의료’라고 부르겠는가? 당신이라면 당신 자식을, 혹은 당신 부모님을 쿠바에서 치료 받게 하겠는가?

나는 이 둘 중 어느 쪽에도 손을 들지 않는다. 양쪽 다 쿠바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로망에 눈이 가려졌다면, 후자는 비방에 눈이 멀었다.) 쿠바 의료는 특별하다. 그러나 이 특별함의 기원은 테크놀로지의 수준도 아니고,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쿠바 의료의 힘은 그들이 지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일상에서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꿨다는 사실에 있다.

일상이란 무엇일까? 참 대단할 것 없으나,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도록 문제가 끊이질 않는 현장이다. 이런 문제들에는 당연히 몸의 병과 마음의 병도 포함된다. 쿠바의 의학은 이런 만인의 현장과 밀착돼 있다. 불치병을 치료해내는 대단한 의료 기술은 없지만, 그 대신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는 실용적인 노하우가 가득하다. 또, 테크놀로지가 허술한 만큼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관계에 직접 개입한다.

참 낯선 풍경이다. 모두가 장수를 기원하며 생명 공학의 발전을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시대에, 의료 관광을 유치하려고 각국이 촌각을 다투며 경쟁하는 글로벌 사회에, 이 작은 섬나라는 모든 트렌드에 무심한 채 낮은 자세로 일상의 병들을 치료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실천을 가능케 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관계, 이것이 돈도 기술도 부족한 쿠바 의료가 지니고 있는 대체불가능한 자원이다.

Calixto Garcia 병원 (제공=김해완)

나는 이런 쿠바의 의료를 ‘일상의 의학’이라고 부른다. 내가 의대생으로서 경험하고 있는 쿠바의 의료 시스템은 천국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옥도 아니다. 이곳에는 단지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 일상은 사소한 문제 앞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이 한복판에 삶이 있다. 병(病)과 사(死)가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삶의 질곡이라면, 병을 넘어서리라는 예감도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찰도 모두 ‘첨단 의학’에 맡겨버리는 우리야말로 오히려 삶을 100%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한 자들이 아닐까? 드라마 속 스카이 캐슬이 집보다 못한 감옥처럼 느껴지는 것은 역시 그곳에 소박한 일상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캐슬’이 아닌 아바나의 낡은 집에서 오래된 교과서로 의학을 공부할 수 있는 나의 행운에 감사한다. (물론 시장에 물건이 동날 때마다 입을 쭉 내밀고 또 다시 쿠바의 상황에 대해 불평하긴 한다. 이 또한 일상의 일부다!) 앞으로 『건치신문』에서 이 일상의 의학을 차근차근 소개해보려고 한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바의 이야기가 과연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나로서는 즐거운 모험이다. 독자분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 됐으면 좋겠다.

아바나의 관광 명소 '말레꼰' (제공=김해완)
아바나의 관광 명소 '말레꼰' (제공=김해완)

*본 연재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해완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godhks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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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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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정 2019-08-09 10:11:24

    사람냄새 물씬나는 글이네요,,
    쿠바가 그런 나라군요,,
    기대합니다~^^   삭제

    • kapkim 2019-08-08 17:44:23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체험기이네요. 연재 기대합니다. 임승수님의 글을 타고 들어와 읽게 되었습니다   삭제

      • 이병도 2019-08-06 20:00:42

        기대됩니다. 앞으로 연재 내용이.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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