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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 배롱나무꽃 이야기- 열 다섯 번째
유은경 | 승인 2019.09.11 10:45

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백일 가까이 오랫동안 피고지는 화려한 꽃빛에 반한 것이 아니다. 30여년 전 3월 말, 아직 쌀쌀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역사기행 차 들른 충청도 어느 사찰 마당에서 벌거벗은 나무를 만났는데 사방으로 뻗어나간 가지들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궁금했으나 이름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고 그저 마당에 심고 싶다는 바램만 품은 채 기대서서 사진 한 장 찍고 돌아왔다.


이름 모를 나무의 노랗고 말간 수피가 얼마나 반들거리고 말끔하던지 마치 부잣집 막내아들 같아 보였다. 이름도 몰랐으니 추위에 약해 충청이북지방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 수 없었던 것.


여름 한복판에서 꽃을 피우는 더운 중국 남부지방출신이다. 고려 때 들어왔고 백일홍나무라 불리다가 배기롱나무, 배롱나무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붉은색, 보라색, 드물게 하얀색 꽃이 핀다.


나무를 멀리서만 바라보아도 충분히 멋있는 수형(樹形)과 빛깔이지만 오골오골한 꽃을 들여다보면 커다란 반전이 숨어있다. 작은 꽃송이가 모여 있다 생각되지만 한 송이가 생각보다 크다. 꽃자루가 긴 표면적 넓은 꽃잎과 암술은 하나지만 곤충을 유혹하는 수술은 암술머리를 한 가짜 수술까지 합해 30여 개가 되니 수정이 실패할 확률은 거의 없는 셈이다.  


배롱나무로 유명한 곳은 역사 깊은 사찰이나 성당, 그리고 옛 양반들이 후학을 가르치던 서원이나 머물던 서가, 그리고 정원들이다. 언제가도 정겨운 안동의 병산서원과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체화정, 작년에 다녀온 담양의 명옥헌과 화순 만연사, 그리고 왜관의 가실성당, 달성의 하목정과 도동서원, 그리고 신숭겸장군 유적지에서 담았다.


남쪽지방을 지나다 보면 배롱나무가 가로수인 길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지금은 과학의 힘을 빌려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꽃’을 품고 있는 ‘그 지역’만의 특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그 꽃’을 만나러 ‘그 곳’으로 떠나는 설레임은 아무래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올라온다. 하하! 쓸데없는 오지랖이려나.

유은경  gcnews@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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