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톨게이트 노동자 의료지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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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톨게이트 노동자 의료지원 후기
  • 김선주
  • 승인 2019.09.18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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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선주 사무팀장

톨게이트 요급수납노동자들은 원래 한국도로공사의 정규직이었지만, IMF 이후 지난 2000년대 들어서면서 외주화가 시작됐고 이명박 정권 때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에 요급수납노동자들은 2013년 소송을 냈고, 법원은 1·2심 모두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지난 7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한국도로공사는 수납업무 전담 자회사인 '한국도로공사서비스'를 출범시켰고, 노동자 6천5백여 명 중 5천여 명이 이 자회사로 옮겼다. 자회사로 가길 거부한 1천5백여 명은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경부고속도로 서울톨게이트 캐노피 위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던 지난 8월 29일 대법원은 그간 한국도로공사가 톨게이트 요급수납노동자들을 불법 파견해 왔으며, 사측에 '직접 고용'의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한국도로공사 이강래 사장은 지난 9일 재판에서 승소한 일부 노동자만 직접 고용하겠며,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도 모자라 1·2심에 계류중인 1천1백여 명과는 소송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의 선언을 정면으로 무시한 처사였다.

이에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이강래 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에 돌입, 해고노동자 1천5백명의 직접 고용을 촉구했다. 그러자 지난 10일 경찰은 강제해산 시도에 나섰고, 대다수 40~50대 여성인 노동자들은 이에 저항하며 '상의탈의'로 맞섰다. 이 농성은 오늘(18일)로 10일 째를 맞이했다.

녹색병원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는 지난 7월부터 서울 톨게이트 의료지원을 진행해 왔다. 이들은 이강래 사장의 발표 후 점거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지원을 이어갔다. 이에 본지는 지난 추석 연휴에 의료지원에 참여한 대구·경북 인의협 김선주 사무팀장의 글을 소개한다.

- 편집자

한국도로공사 김천 본사 앞 (제공=김선주)

처음 톨게이트 비정규직 노동자 분들의 투쟁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지난 7월, 녹색병원과 인의협 선생님들의 서울 톨게이트 의료지원 후기를 통해서였습니다. 서울 선생님들이 여름 내내 거의 1~2주에 한 번씩 서울 톨게이트 현장 의료지원을 가셨던지라 그만큼 의료적 지원이 많이 필요 하구나 생각하며 의무감 비슷한 느낌으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던 딱 그만큼의 관심만 가지고 있었던 듯합니다.

그러다 8월 KBS 1TV에서 방영된  『거리의 만찬』방송을 보게 되었고, 방송에서의 스토리텔링의 힘 덕분인지 이후 톨게이트 노동자들 분들의 소식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소식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8월 29일 대법원 판결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기뻤는지요. 1심, 2심 법원도 아닌 ‘대법원’의 판결이었던지라 이 판결로 모든 것이 다 해결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이 김천으로 와서 점거 농성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응? 이게 무슨 일이람?’ 다시 열심히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대법원의 취지대로 1,500여명 다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노조와 우선 승소한 사람들만 직접고용 하지만, 정규직이 되어도 본래 톨게이트 업무가 아닌 관리업무를 주고, 현재 진행 중인 1,100여명에 대해서는 재판결과를 이후 보고 판단할 것이며 공사에서 제안한 안으로 안 할 거면 징계를 내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법원 판례대로 안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공사의 안에 같이 화가 났습니다.

인의협 회원이 다친 노동자를 진료하고 있다. (제공=김선주)
타박상을 입은 노동자의 무릎(제공=김선주)

이미 경찰들과의 몇몇 충돌로 구급차에 실려 가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의료지원 요청이 있었고, 명절 연휴 전날 선생님들과 첫 번째 의료지원을 가게 되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딱 들어온 것은 한국도로공사의 큰 건물과 그 큰 건물을 에워싸고 있는 경찰버스였습니다. 경찰버스가 이만큼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지원 나온 경찰이 많다는 것이기에 등줄기에서부터 바짝 긴장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1층 로비를 빽빽하게 채운 경찰들만 보이는 정문으로는 아예 들어갈 수도 없었고, 후문 입구 역시 경찰들의 방패와 폴리스 라인으로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보건의료단체 활동가로 의사선생님들을 지원을 이유로 다른 연대오신 분들에게 경찰들이 ‘절대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폴리스 라인 안 2층 로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후문입구를 포함해 거의 사(四)면을 에워싼 남색의 경찰 벽들과 대비되는 주황색과 청록색 조끼를 입고 색색의 각양각색의 돗자리에 앉아서 쉬고 계시는 노조원분들의 모습이었는데요,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에 냉방이 잘 안되는지 공기가 습하고 답답한 느낌이었습니다.
 
임시로 마련된 진료실 공간에서 바로 진료를 진행했었는데요, 진료가 진행되는 2시간 넘는 시간동안 잠시도 쉴 틈 없이 70여분 정도 진료를 보았습니다.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허리, 어깨, 무릎 등에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으셨고, 팔과 다리에 피멍이 들거나 충돌 과정에서의 충격으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시는 분들, 또 물품 반입이 어려운지라 평소 복용하시던 혈압약이나 당뇨약 등을 농성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충분히 챙겨오지 못해서 걱정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셨습니다.

명절연휴 마지막 날 오전, 다시 의료요청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진료에서 나름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모자라는 약이 생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오셨던지라 두 번째 방문에는 그전의 진료를 참고해 의약품을 더 많이 구비해 찾아갔습니다. 잠자리 상황이 여의치 않은 곳이고 로비 찬 바닥에서 며칠 동안 주무셔서 그런지 감기에 걸리신 분들도 좀 계셨고 여전히 어깨, 등, 허리의 통증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으셨습니다. 

진료 중간 중간 낯익은 분들이 몇몇 분들이 계셨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제가 알만한 분이 있었나? 아니면 닮은 분인가? 생각해보니 앞의 『거리의 만찬』에서 보았던, 진행자들과 같이 웃고 가족들 얘기에 눈물도 흘리던 그 얼굴들 이었습니다. 진료소에서 선생님들께 진료를 받으시고 고맙다고 인사하시며 나가시던 모습과 TV속에서의 모습이 잠시 오버랩 돼 씁쓸한 마음이 올라와 속으로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인의협 회원이 다친 노동자를 진료하고 있다. (제공=김선주)
인의협 회원이 다친 노동자를 진료하고 있다. (제공=김선주)
인의협 회원이 다친 노동자를 진료하고 있다. (제공=김선주)

두 번째 의료지원을 마치고 나오려고 경찰 벽 뒤에 서니 경찰분이 저희가 의료지원으로 온 건지 모르고 물으시더라고요. “이번에 나가시면 다시 못 들어오시는데 나가시겠습니까?”라고. 그 말에 약간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과 의료지원으로 다시 들어 올 수 있는 상황이면 다시 들어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뭔가 경계가 이만큼이나 그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현장을 빠져나오는 길, 한창 문화제가 진행 중이어서 엠프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던데, 정문 쪽으로 나오니 그 소리조차 잘 들리지도 않고, 건너편 아파트 단지에 켜진 불 보다 더 많은 형광등 불빛으로 한국도로공사 건물은 빛이 나고 있고, 어떤 아주머니는 앞에서 개 산책을 시키며 지나가시고, 한국도로공사 입구 길가에 투쟁 현수막들마저 없었다면 이곳을 잘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지나가겠다 싶은 생각이 드니 서글퍼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김천 한국도로공사 농성장에는 약 200여 분의 노동자들이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관 밖에서 같이 연대하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별일 없이 더 아프시지 마시고 건강하게 투쟁 이어 나가시라고, 힘들게 얻어낸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그 공약대로 이행하라고 같이 목소리 높여 부르며, 톨게이트 노동자분들의 기사들을 검색하다 본, 제 마음을 울컥울컥하게 만든 투쟁사로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온갖 회유, 협박, 강요를 뚫고 직접고용 결의를 하며 지금까지 가열차게 싸워왔습니다. 거기에 또 법원 판결 받아와라 해서 법원 판결까지 받았고요. 그렇게 해서 왔더니 304명만, 그것도 직접고용은 하되 우리가 했던 업무가 아니라 다른 업무를 주겠다는 거예요.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고,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고, 또 다른 협박이고 폭행이죠. 여기(한국도로공사 본사)에 들어와 있는 310명은 끝까지 이곳을 사수할 것이고, 추석도 여기서 보낼 겁니다. 안에서 버틸 수 있게 밖에서 힘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직접고용을 위해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제일 앞에서 싸우고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요, 우리가 제일 앞에서 싸울 테니 끝까지 밀어주시고 손잡아 주시면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박순향 부지부장

*본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으며, 원작자의 동의를 얻어 뉴스민에도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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