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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선아! 만나서 반가웠고 보고 싶다!”건치, 故송학선 원장 1주기 추도식…가족‧친우 함께 추억 깃든 사진 보며 기억 나눠
안은선 기자 | 승인 2019.09.26 19:01
지난 25일 ‘숲과나눔’에서 『故 송학선 1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1년 전에도 그랬듯, 많은 이들이 “건치의 초석을 다진 진정한 한량” 故송학선 원장을 그리워하며 한 자리에 모였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공동대표 김기현 홍수연 이하 건치)는 지난 25일 오후 8시 서울 양재역 ‘숲과나눔’에서 『그를 그리는 사진이야기 故콩밝 송학선 1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故송학선 원장의 부인인 문혜영 여사를 비롯해 송 원장과 초창기 건치 활동을 함께 한 김옥희·이희원·송필경 원장, 그를 따르던 후배들이 참여했다. 또 6월민주포럼 양길승 대표, 환경재단 최열 대표, 임옥상 화백, 가톨릭대 이시재 명예교수 등이 자리했다.

본지 김철신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은 故송학선 원장이 생전 보였던 모습처럼 유쾌하면서 또 진지하게 펼쳐졌다.

먼저 건치 홍수연 공동대표가 인사말에 나서 “건치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학선 형이 나온 사진과 영상을 보는데 정말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치를 하면서 학선 형은 항상 어른인 거 같고 굉장히 어른인 것 같았는데 말이다”라며 “먼저 간 선배는 그렇게 그 젊은 채 멈춰버리지만, 남아서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끼리 모여 고인을 추억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건치 홍수연 공동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이어 故송학선 원장과 깊고 오랜 교류를 이어온 친우들이 나와 그와 그와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故송학선 원장이 건치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 회장일 때 처음 만났다는 6월민주포럼 양길승 대표는 “정말 멋진, 멋지게 사는 사람을 만났다”고 운을 떼면서 “그렇게 노래를 좋아해서 한 자리에서 열곡씩 불러대는 사람은 처음이었고, 하고 싶은 게 많고, 또 잘 했다. 그리고 선물도 참 잘했는데, 모감주나무로 염주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마지막 떠날 때도 사진전을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직접 그린 부채도 나눠주고 갔다”고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오늘 집을 나서면서 그와 나눴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딱 한 벌 있는 청바지를 입었다”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정말 학선아, 만나서 반가웠고 고마웠다. 그리고 그립다”고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6월민주포럼 양길승 대표가 故송학선 원장을 회고하고 있다.

또 가톨릭대 이시재 명예교수는 故송학선 원장을 환경운동의 아이덴티티, 비타협주의자, 예인(藝人)으로 기억했다. 그는 “송 원장은 환경운동연합을 만드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아이덴티티 그 자체였다. 운동 측면에서 보면 그는 비타협주의자였다. 원칙에서 물러섬이 없었다”며 “그는 과천환경운동연합을 세우고 유지하는 일을 했는데 사무실부터 자잘한 일 전반을 도맡아했다. 환경운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감사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송 원장과 즐거운 일도 많았다. 이집트, 그리스, 터키, 일본 니이가타 등을 함께 여행했는데, 항상 아침 일찍 사라져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 송 원장이었다. 올해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경치 좋은 곳에 서니 송 원장이 생각났다. 같이 왔으면 좋았을텐데 하고 말이다”라며 “ 송 원장은 한시를 짓고 해석할 뿐 아니라 한글 시를 한시로 바꾸기까지 했다. 70세, 80세까지 살았으면 그의 재능이 더욱 원숙하게 꽃 피웠을텐데 그 전에 먼저 가서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다.

이 교수는 “좋은 시를 보면, 뽕짝을 들으면, 좋은 경치를 보면 송학선이 생각나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故송학선 원장이 자신의 주치의였다는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은 그를  추억하며 그를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웰 다잉(Well-dying)의 전형이었다고 봤다. 그는 “송학선 원장이 삶을 마무리하기 전에 사진전을 열고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또 많은 사람이 와서 덕담을 나누며 삶을 마치는 걸 보면서 웰 다잉의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했다”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삶을 생각하면, 송 원장의 모습은 인상 깊었고 남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기억하고 이어가며 좀 더 의미있게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故송학선, 생전이나 떠났을 때나 자유로운 영혼

이희원 원장은 故송학선 원장과 대학시절부터 친구이자 동지로 지냈다. 이 원장은 학생운동 시절 송 원장과의 일화를 풀어냈다.

이희원 원장은 학생운동 시절 송 원장과의 일화를 풀어냈다.

그는 1973년 서울대 문리대 반유신 시위와 이후 치과대에서도 시위를 준비하던 일을 언급했다. 이 원장은 “본과 1학년 때 송학선‧한영철‧유영재‧김광수 선생이 우리집 근처에 모여 선언문을 썼는데 거사 직전 이 일이 탄로나 나는 사전에 잡혀들어갔고, 시위 후 한영철‧송학선 선생이 구속됐다”면서 “나와 한영철 선생은 잡혔을 때 비장하고 분노했던 반면에 송학선 선생은 그 엄혹한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웃으면서도, 굽힘이 없고 냉정하게 대처했던 모습이 생각난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송학선 선생은 대학 때부터 가깝게 지냈고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함께 운동해 온 친구로, 아직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텐데 일찍 떠나보내 아쉽다”면서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잘 살았던 것 같다. 다음 세상에서도 여전히 훨훨 날아다니며 잘 살리라 본다. 우리 머릿속에, 추억 속에, 건치 역사에도 길이 남을 거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임옥상 화백은 송 원장을 그리며 문혜영 여사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는 “송학선 선생은 치과의사이자 예인이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게 아니라 못하는 게 없었다. 뭔갈 이룰 만큼의 재능과 열정, 재산도 있었다”면서 “송 선생의 한시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그 중에 ‘이 봄이 가기 전에 벗들과 술을 마셔야 하는데 안타깝다’는 구절이 있었다. 참 잘 먹었던 거 같은데 계속 송 선생은 무언가 고팠던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떤 때는 네가 에에~하며 말하는 게 지겹고 그랬는데, 벌써 네가 죽은 지 1년이 됐다는 게 영 믿겨지지 않는다”며 “학선아 그립다”고 말을 맺었다.

"죽을 놈이 왜 아름다운 것만 눈에 보여"

송 원장을 그리는 친우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문혜영 여사가 나서 송 원장이 생전 찍은 사진과 문 여사가 찍은 그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과 추억 이야기를 이어갔다.

문혜영 여사는 송 원장이 생전 찍은 사진과 그의 사진을 넘기며 사진에 얽힌 추억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문 여사는 “갈 것 같지 않던 세월이 흘러 벌써 1년이 지났다. 나는 그냥 저냥 혼자 놀고 혼자 지내고 혼자 밥 먹고 열심히 지냈다”면서 “생전 남편은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틈만나면 컴퓨터로 뭔갈 했다. 거기에 뭐가 있냐고 핀잔을 준 적도 있었는데, 남편이 죽고 저걸 어쩌나 고민만하다 결국 작정하고 컴퓨터를 열어봤다”고 운을 뗏다.

그렇게 열어 본 컴퓨터 안에는 송 원장이 치과의사다운 꼼꼼함으로 폴더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둔 사진 파일들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문 여사는 “본인의 일생이 그 안에 담겨 있었는데, 여행 사진 뿐 아니라 건치 후배들의 얼굴, 1991년 건치 울릉도 진료봉사 사진과 아이들의 모습 등, 남편과 일궈왔던 젊은 시절이 모두 그 속에 있었다. 요상한 물건이라 생각해 한참을 감회와 추억에 젖어서 봤다”면서, 이탈리아 돌로미테 알프스 사진을 보여줬다.

그는 “말기암 선고를 받고 큰 아들 내외의 제안으로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었다. 그리고 그 눈 속에 송학선을 던지고 오자란 생각으로 올해 6월과 8월 다시 돌로미테 알프스에 갔다”면서 “그런데 가는 곳마다 남편이 한 말이 생각나고, 산을 보며 남편이 ‘죽을 놈이 왜 아름다운 것만 눈에 보여’하며 계속 사진을 찍었던 모습이 생각났다. 보내러 갔는데 오히려 불러낸 꼴이 됐다”고 살짝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사진을 보면서 이 곳이 어디였는지 이름은 기억날까 했는데,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기억이 났다. 거기서 남편이 뭘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말이다”라고 사진을 설명하며 그와의 추억을 풀어냈다.

한편, 故송학선 원장은 1987년 6월 항쟁 직후 생겨난 건치의 전신인 청년치과의사회 초대회장을 맡아 건치의 창립을 주도한 인물로 건치의 기틀을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지난 2017년 5월 담도세포암이란 희귀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지난해 9월 8일 본지에 약 3년 간 연재해 온 한시와 사진을 엮어 『콩밝 송학선의 한시 산책』을 출간하고 출판 기념회를 열어 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인 9월 25일 가족과 친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6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故송학선 원장이 찍은 여행 사진과 문혜영 여사가 찍은 송 원장의 사진을 함께 올린다.

문혜영 여사가 찍은 故송학선 원장의 생전 모습 (제공 = 문혜영)
문혜영 여사가 찍은 故송학선 원장의 생전 모습. 귀를 덮는 모자를 즐겨 썼다고 한다. (제공 = 문혜영)
눈 덮인 일본 니이가타의 전경. 수묵화 같은 게 특징이다. (제공 = 문혜영)
문명교류연구소 여행으로 간 '시리아'의 원형극장. 여기서 송 원장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제공 = 문혜영)
티벳 여행 가는 길에 찍은 사진. 송 원장은 이러한 삼각 구도를 즐겼다고 한다. (제공 = 문혜영)
티벳 알롱창포강의 모습. 문혜영 여사는 이곳을 낙원같았다고 표현했다. (제공 = 문혜영)
말기암 판정 후 간 이탈리아 여행에서 찍은 사진. 송 원장 사진의 특징 중 하나는 풍광과 나무를 함께 찍는 것이라 한다. (제공 = 문혜영)
약수암에서 투병 생활 중 찍었다는 사진. 마지막까지도 송 원장의 손엔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제공=문혜영)
시리아 여인들 사진을 찍기 위해 미끼처럼(?) 문 여사가 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제공 = 문혜영)
터키 노아의 방주 박물관 앞에서 찍은 세 자매의 모습. 문 여사가 좋아하는 사진 중 하나라고 한다. (제공 = 문혜영)
나체로 지중해 앞에 서서 해를 맞이하는 여인 사진. 문혜영 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한다. (제공 = 문혜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소에토에서 찍은 축구하는 소년의 사진.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망 같은 걸 뭉쳐서 축구하는 모습을 보며 송 원장은 마음을 많이 아파했다고 한다. 이 사진은 건치 사무실에 걸려있기도 하다. (제공 = 문혜영)
1991년 건치 울릉도 진료 봉사 사진. (제공 = 문혜영)
1991년 건치 울릉도 진료 봉사 사진. (제공 = 문혜영)

안은선 기자  gleam0604@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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