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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직업, 의사[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6]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김해완 | 승인 2019.10.21 16:24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콘쑬또리오에서 일하는 가족주치의의 모습(제공 = 김해완)

꼰술또리오. 노의사가 심각하고 무거운 얼굴로 환자를 상담을 하고 있다. 오전에 이곳을 방문한 13번째 환자다. 떠나기 전, 환자는 의사 옆에 서 있던 의대생에게 자랑스럽게 한마디 던진다. “이 의사 선생님은 최근 20년 간 이 동네 꼰술또리오를 거쳐 간 가족주치의 중에서 단연 최고에요” 환자가 나가자마자, 의사는 잠시 문을 닫으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서랍에서 라이터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연기를 깊게 머금는다. 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세상에,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공공장소는 물론이고 모든 의료 기관은 금연 구역이다. 대놓고 불법 현장을, 그것도 의사의 불법 행위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쿠바 의료 시스템을 쿠바 밖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역시 얼이 빠질 것이다. 주민들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건강한 삶을 촉진시켜야 할 가족주치의가, 모범이 되기는커녕 진료소에서 담배를 핀단 말인가? 이런 불량의사는 당장 해고돼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바깥의 시선이다. 20년 간 이 꼰술또리오를 이용한 환자의 증언에 의하면 이 의사는 ‘최고로 헌신적인 의사’였다.

이 해프닝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외부인의 짧은 상상력과 쿠바의 실제 의료 현장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장과 시스템은 동일하지 않다. 시스템은 한 번 정착돼 버리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비인격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동일한 방식으로, 기계적으로 굴러간다. 반면, 현장이라는 개념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품는다. 사람은 기계 부품이 될 수 없다. 시스템에 의해 역할을 부여받고 또 그 역할에 적응해 살아갈지언정, 누구든 시스템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사각지대와 만나게 되며, 또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고 싶은 속내의 욕망을 없앨 수도 없다. 이 잡음은 역설적으로 그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신호다. 현장을 책임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흡연하는 헌신적인 의사’라는 희한한 캐릭터 역시, 모순으로 삐걱거리는 시스템을 어떻게든 살아 움직이게 하려는 인간적인 노력 속에서 탄생한다.

따라서, 현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부인의 시선과 그들의 이야기를 쫓아가야 한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의사다. 특히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주치의들이다. 이곳의 주치의들은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학습하는 의사의 상(想)과 많이 다르다. 맡고 있는 임무도 다르지만 그 임무를 수행하면서 공통적으로 갖추게 되는 인간적인 자질, 즉 캐릭터가 다르다. 그 캐릭터란 바로 ‘일상을 간섭하는 오지랖’이다.

콘쑬또리오와 오스삐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사들(제공 = 김해완)
콘쑬또리오와 오스삐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의사들(제공 = 김해완)

의사의 일차적 임무는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그런데 쿠바에서는 병을 사회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병과 삶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발생한 병의 서사를 쫓아가다 보면 라이프스타일의 문제, 가족의 문제, 커뮤니티의 문제, 사회 및 국가의 문제까지 연결된다. 가령, 까를로스 아저씨가 겪는 당뇨병에는 400년 간 쿠바 땅에 존재했었던 식민지 시절부터 실패한 근대 설탕 사업까지의 시간이 통째로 녹아있다. 물론 의사가 메스를 들 수 있는 영역은 국가 정책이 아니라 환자의 삶이다. 그러므로 의사들은 환자들의 일상에 개입해야만 한다. ‘당뇨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까를로스 아저씨의 개인적 습관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 있는 가족 관계, 커뮤니티 관계, 사회관계까지 치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지랖을 부려도 아주 크게 부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시스템이 의도한 바다. 그리고 시스템 내부의 현장은, 늘 그렇듯이 의도치 않은 난관이 의도했던 본 목적을 압도한다. 해가 갈수록 SNS의 관료주의는 심해져가고, 해외 미션을 위해 의사들이 대거 빠져나간 탓에 국내 의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 수는 늘어간다.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의 무게는 오롯이 의사들의 두 어깨에 놓인다. 거대한 의료 철학을 관료주의를 뚫고 전 국민을 상대로 실행하려면 의사는 슈퍼맨에 가까운 존재가 돼야만 한다. 6년의 의대 생활과 3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한 명의 독립적인 의사로 우뚝 섰을 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동네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는 생활이다. 언제까지? 은퇴할 때까지.

우선 의사는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주민들은 당신이 어디 사는지 다 알고 있다. 집 주소뿐만 아니라 전화번호도 공유된다.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서 당신을 찾기 위해서다. 응급 상황과 일상의 경계가 대체 어디까지인지 의문이 들 테지만 말이다. 만약 당신이 가족주치의라면 새벽 5시에 혈압을 좀 재달라고 문 두드리는 이웃집 할아버지를 맞이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한 숨도 못 자고 병원 당직을 마치고 나오는 새벽길에 다짜고짜 처방전을 써달라고 불러 세우는 아줌마를 만나더라도 덤덤할 것이다. 그 뿐인가? 꼰술또리오에서는 환자들의 끝없는 신세한탄과 불평을 들어야 한다. (의사가 일부러 오지랖을 부리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개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나면 쿠바 의사들이 어째서 병원 밖에서도 흰 가운을 입고 다니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흰 옷에는 권위 의식과 봉사 정신이 함께 깃들어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 언제든지 대접받으려는 마음과, 길거리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러 세우더라도 언제든지 대답해주겠다는 태도인 것이다.

의사는 공무원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 80%의 직업군이 국가 소속인 쿠바에서 공무원이 아닌 자가 누가 있겠느냐마는, 의사 공무원의 경우 주 임무가 ‘필사’라는 게 문제다. 의사가 관료 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종이의 양은 엄청나다. 그리고 컴퓨터가 없는 쿠바에서는 모두 손으로 써야만 한다. 가족주치의가 임산부를 담당할 경우에는 심지어 동일한 진료기록을 두 부씩 써서 한 부는 뽈리끌리니꼬에 제출해야 한다. 환자 보는 시간보다 보고서 쓰는 시간이 더 길다는 농담은 사실 진담이다. 한 가족주치의는 각각의 꼰술또리오에 컴퓨터와 프린터가 놓이는 날이야말로 쿠바 의료계에도 희망이 생길 거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의사는 교육자도 돼야 한다. 꼰술또리오든, 뽈리끌리니꼬든, 오스삐딸이든 의사가 가는 곳 주변에는 항상 의대생들이 우글거린다. 모든 병원과 의대가 국가 소속인 쿠바에서는 의대생이 공부하는 곳과 의사가 일하는 곳이 따로 나뉘지 않는다. 병원이 학교이고, 학교가 곧 병원이다. 당신이 의사 가운을 입었고 젊은이가 의대 교복을 입고 있다면, 당신들은 이미 운명을 함께 해야 하는 ‘동지’다. 당신은 이 미래의 의사가 요청하는 대로 가르침을 제공해야만 한다.

콘쑬또리오에 보관돼 있는 진료기록 (제공 = 김해완)

이 상황에 화룡점정을 찍는 사실이 있다면, 이 슈퍼맨들이 돈을 못 번다는 것이다. 의사가 개인 클리닉을 여는 것은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돼 있으나, 국가가 의사들에게 주는 월급은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물론 쿠바의 다른 전문직들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쿠바의 현재 물가를 반영해보았을 때는 여전히 한 가족의 생활비로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쿠바의 의사들은 낮에는 병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택시 운전사로 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런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의사가 된다. 체 게바라의 카리스마가 빛바랜 과거의 기억이 되고, 인터넷으로 타국 의사의 평균 월급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21세기에도 매년 약 5천 명의 쿠바 젊은이들이 의(醫)의 길에 오르고 있다. 이 놀라운 지속성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걸까?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이들의 공통적인 동기는 바로 명예일 것이다. 현재 쿠바에서 의사는 대체 불가능한 최고의 명예직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안팎으로 쿠바를 지탱하고 보살피는 존재들이다. 근거리에서 만인의 불행을 돌보는 것은 물론이요, 외국으로 미션을 떠나서 당장 수입이 없는 쿠바에 가장 많은 외화벌이를 해주고 있다. 그래서 의사들은 존경받는다.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이 이 고된 가시밭길을 갈 이유가 사라진다. 이처럼 쿠바는 지난 반세기 동안 수많은 의무, 간소한 혜택, 그리고 이 간극을 보상해주는 존경을 통해 ‘겸손하고 명예로운 의사’의 상(想)을 완성시켜왔다.

무한한 존경과 함께 쿠바 의사들은 언제나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이런 고용안정성 때문에 쿠바 의사들은 시스템에 안주해 불성실의 늪에 빠진다는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불성실함은 국가의 ‘노동 착취’에서 탈출하는 의사들 나름의 요령이기도 하다. 이런 시스템 속에서 과하게 성실하기까지 했다가는 의사의 건강부터 끝장날 것이기 때문이다. 착취라는 단어가 여기서 과연 적확한 용법일까? 이 시스템 속에서 부당하게 이윤을 취하는 자는 없다. 의사들의 노고는 고스란히 국민 모두의 혜택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의사 또한 노동자라고 한다면, 이들의 노동 강도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부담스러운 강도는 시스템 전체에도 부담이 된다. 시스템은 결국 그 속에 사는 사람의 욕망과 실천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만약 사회적 명예가 더 이상 쿠바의 젊은 의사를 재생산하는 동기가 되지 못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시스템 또한 정지될 것이다.

여하튼, 쿠바 의사의 새로운 캐릭터는 우리의 상상력의 지평을 확 넓혀준다. 여러 질문이 가능하다. 의사란 누구인가? 치료란 무엇인가? 의사-환자의 관계는 삶 속에서 어느 정도까지 깊어질 수 있을까? 그러나 내가 이들에게서 배운 가장 값진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의사는 우선 자기 자신부터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자질은 지구력이다. 병과 삶의 문제를 매달고 끝없이 밀려오는 환자들을 성심성의껏 돌보기 위해서는, 환자 이전에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체력과 심력과 요령부터 키워야 한다.

콘쑬또리오에서 일하는 가족주치의의 모습(제공 = 김해완)
길거리에서 동네 주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의사(제공 = 김해완)

그 요령이란 병원에서 환자 몰래 피우는 담배 한 개비가 되기도 한다.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묻은 할머니 의사는 스트레스가 한결 풀린 개운한 얼굴로, 그러나 여전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며 나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졸업한 후에는 우선 환자들에게 좋은 의사가 돼야 하겠지만, 의사의 일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너만의 방법도 발명해야 한다고.

아, 30년간 꼰술또리오를 지킨 이 여의사에게 과연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영화 『극한직업』에서 주인공 형사는 “너 누구야!”라고 외치는 범죄자에게 “나는 대한민국 자영업자, 닭 집 사장”이라는 멘트를 날렸다. 만약 이 영화를 쿠바에서 찍는다면 대사는 이렇게 바뀌어야 하리라. “나는 꼰술또리오 가족주치의다!”

단언컨대, 이들이 쿠바 최강의 인간들이다.

 

김해완 (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godhks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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