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합이론 100년 역사의 비평적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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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합이론 100년 역사의 비평적 탐방
  • 김혜성
  • 승인 2003.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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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합이론 대하기

교합이론 대하기

학교 때는 물론이거니와 치과의사가 된 후에도 교합, 혹은 교합이론은  늘상 남아있는 숙제 같은 느낌이다. 모처럼 공부해보겠다고 펼친 보철학 책도 꼭 4, 5장쯤 있는 교합쪽에서 막혀 그냥 덮어버린 기억도 여러 번이다.

몇번의 세미나도 들으며 중요한 개념을 익혀보기도 하지만 매일의 일상진료에선 거의 써먹지 않는 낯선 개념들을 항상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정교한 교합은 소위 대가들의 일이라고 다시 한번 숙제로 넘겨버리고 만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극단적 예를 들어 single crown을 수복하는 데에도 condyler guidance 나 anterior guidance를 고려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fully adjustable articulator 등이 동원돼야 하는 걸까? 혹은 원래는 그렇게 해야 하는데, 시간이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semi-adjustable articulator 정도는 써야 하고, 그래서 맨날 똑딱이 교합기에 의존하는 대부분 개업의들은 교과서적 진료를 못한다는 가책을 느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합기나 face-bow 등의 여러가지 기재는 구강 외에서 제작하는 보철물과 관련된 정보를 최대한 얻기 위해서일 뿐이다. 말하자면 총의치나 full-mouth 수복처럼 수복물 제작을 위한 참고점들을 구강내(혹은 model)에서 거의 찾을 수 없을 때에는 가능한 여러가지 수단들을 통해 그 참고점들을 구강 외로 옮겨야 되지만, single crown의 경우는 간단한 모델상에서도 쉽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옆 치아에 맞춰서 환자가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cusp height 나 교두 각도등을 맞춰주면 되는, 이 간단하고 빠른 길을 두고 굳이 복잡한 미로와 용어들을 헤치는 고생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비단 필자만의 의견이 아니다. 2000년, 보철학계에서 소위 대가중의 한명인 Becker 와 Kaiser 등은 다음과 같이 교합수복의 최신가이드를 정리한 바 있다(표1 참조).

“쉽고 간단한 수복물의 경우는, 혹은 구치부 교합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정도의 수복물은 그냥 환자의 현재 상태(MIP)에 맞춰서 수복해 주라, 또 구강 내에서 참고점을 얻지 못한 처지라면 할 수 없이 구강 외에서 참고점들을 얻어야 하니 condyle을 잘 조절해서 CR에 의지하라.”

이 얼마나 지극히 상식적이고 매일의 일상진료와 맥이 통하는 부분인가?
하지만 과거의 문헌들을 찾어보면 교합이론 전체가 쉽고 큰 상식의 길을 두고 어렵고 힘든 미로를 헤치고 온 느낌이 적지 않다. 그래서 특히 많은 개업의들이 느끼는 교합이론과 매일의 일상진료의 불일치는 교과서적 진료를 못하는 개업의들의 탓이 아니라, 과도한 이론의 늪을 정리하지 못한 대가들의 탓이 크다는 것이 필자의 느낌이다.

또한 이미 전체적으론 상식의 길이 합의되었음에도, 아직 개업의들에게까진 그 상식의 정도가 전달되지 못하고, 과거의 편견적 이론에 의지하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교합이론의 역사

이 시리즈는 교합이론에 대한 약 100여 년의 역사적 문헌들을 리뷰하고 정리해 보는 것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교합학에는 1920년대 이후부터 크게 두가지 일관된 흐름이 존재해 왔으며, 현재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교합학 문헌들은 그 두가지 흐름을 전제로 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에도 의미있는 교합학 지식와 그렇지 않는 역사속 용어들을 구분해 내려야 할 것이다. 치과보철의 역사가 총의치만 존재하던 19세기 말에서 21세기 임플란트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보철적 관심에서 시작한 교합이론의 지식들은 역사적 구분없이 뭉뚱그려져, 마치 컴퓨터 시대에도 주판지식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그 모두를 알아야 되는 것으로 오해되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자는 몇가지 Landmark 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시대구분을 하여 정리하려 한다(표2).

19세기 후반∼1920년 후반
이 시기에는 교합에 관한 모든 관심과 목적이 “어떻게 총의치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까”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Casting technique이 없었던 당시 치과보철이라 함은 치아가 전혀 없는 환자에게 해주는 의치가 모두였다. 때문에 교합이론의 목적 역시 어떤 위치에 어떤 각도로 어떤 커브를 주어 몇 도 정도의 도치를 배열하는 것이 의치의 안정성에 도움을 줄까 하는 물음에 대한 해답 찾기였을 뿐이다.

Bonwills triangle, Curve of Spee, Monsons curve 등이 당시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자 이론들이다. 이 시기에 Balanced Occluson은 총의치에 적합한 교합이라는 consensus를 획득한다.

1920년대 후반∼1950년대 후반
이 시기는 Gnathology 학파와 PMS(Pankey-Mann-Schyler)이 논쟁을 벌이던 시기이다.
1920년대 후반 casting technique이 소개돼 치과보철의 영역이 자연치아에로 옮겨옴에 따라, 교합이론이 부딛친 첫번째 질문은 “총의치를 대상으로 해서 합의한 Balanced Occlusion이 자연치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였다.

“총의치가 자연치를 대신한 저작의 보조용구에 불과하다면, 총의치의 교합이 자연치의 그것을 모방할 수 있을까”(자연치-> 총의치) 하는 방식으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 자연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실제 교합이론의 발달은 총의치의 교합을 자연치로의 적용(총의치->자연치)이라는 전도된 과정을 밟았던 것이다. 이 전도된 역사가 사실 교합학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가져왔다고 해도 상당부분 진실일 것이다.

Gnathology 는 balanced occlusion 을 자연치의 교합수복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하자면 보편적인 ideal occlusion 이라고 주장한 반면, PMS는 그 두 대상의 차이점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긴 논쟁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960년대 초반∼1990년대 초반
이 시기는 그간의 임상경험과 이론적 축적으로 자연치에는 Balanced occlusion이 부적합하다는 것이 판명되고 난 후 자연치에 어울리는 교합의 형태를 찾아 체계화한 시기였다.
DAmico, Williamson 등의 공헌으로 mutually protective occlusion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교합형태로 자리잡게 되지만 실제 그 임상적 사용에서 group function도 하나의 대안으로 사용되게 된다.

또한 Celenza, Dawson 등의 공헌으로 Gnathology에 의해 시작되었던 CR 에서 적절한 condyle의 위치가 fossa에서의 RUM(rearmost, uppermost, midmost)에서 전상방(anteriorly superiorly)로 수정돼 미국 치과보철학계에 공식승인을 얻게 된다.

생역학과의 fusion
임플란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치과수복의 많은 관심이 임플란트로 이동함에 따라, 교합학의관심 역시 임플란트 교합으로 옮겨지게 된다.

이 시기의 질문은 “어떻게 임플란트 보철물의 힘을 분산하여 임플란트에 가해지는 하중을 적정 수준내로 제어해 임플란트의 실패를 막을 것인갚로 요약된다.
따라서 현대의 교합학은 임플란트 위에서의 하중, 힘의 분산, 그에 따른 임플란트 주위골의 반응에 주목하는 생역학(Biomechanics)과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Reference
1. Becker CM, Kaiser DA, Schwalm C. Mandibular centricity: centric relation. J Prosthet.Dent 2000;83(2):15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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