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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이 정말 의사라고?[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8]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김해완 | 승인 2019.11.18 15:10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의대생들 (제공 = 김해완)

“장래희망이 정말 의사라고?” 이런 제목의 포스팅이 언젠가 페이스북에 공유된 적이 있었다. 포스팅의 내용은 질문의 연속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공부해도 충분치 않다는 사실에 지치다 못해 화가 날 걸?’ ‘다른 전공생들이 대충 공부해서 90점 맞을 동안 넌 70점도 못 받을 때 분통이 터지지 않을까?’ ‘남들은 주말마다 청춘을 불태우며 파티를 하는데, 넌 방에 틀어박힌 채 책과 씨름하다가 통탄하는 기분이 어떨 것 같아?’

이 포스팅 밑으로 깔깔 웃는 쿠바 의대생들의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렸다. 나 역시 웃음이 터졌다. 이 질문이 내포하는 쿠바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바뿐만 아니라 지구상 어디에서든 의대생은 잠을 가장 적게 자는 학생들이다. 잠은 책에 반납하고 주말은 시험에 반납한 채 좀비처럼 공부하는 게 이들의 특기다. 그러나 이들의 괴로움은 보통 희생정신과 연결되지 않는다. 의사라는 직업이 특권과 자본으로 코드화돼 있기 때문이다.

의대생 시절 아무리 고생을 했다 하더라도, 이들이 일단 학교를 졸업하고 흰 가운을 입은 후에는 많은 돈을 벌 것이다. 게다가 의대는 비싼 등록금 탓에 처음부터 돈이 없으면 다니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이 친구들의 고생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투자 아닌가? 선택받은 친구들의 어리광 아닌가? 사회 특권층이 재생산되는 장소가 바로 의대 아닌가? 이처럼 연민과 공감보다는 부러움과 비판 섞인 시선이 먼저 작동하게 된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의대생들 (제공 = 김해완)

그렇지만 쿠바에 오는 순간, 이 익숙한 ‘SKY 캐슬’ 정서는 해체된다. 의료의 사회적 배치가 완전히 다른 까닭이다. 쿠바에서는 등록금이라는 개념이 없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이 무료이고, 이는 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쿠바 의사들은 딱히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덩달아 주어지는 특권도 없다. 있는 건 끝도 없는 일거리뿐이다.

이곳에서 의사는 주치의이자, 상담사이자, 교육자이자, 대모‧대부이자, 해결사다. 그럴수록 의사를 향한 주민들의 존경심과 의존도는 높아지지만 월급은 그렇지 않다. 이 엘리트들은 택시 기사보다 더 적은 돈을 만진다. 쿠바에서 의사는 모두 국가 소속이기 때문에 월급의 액수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이 의사의 삶이다. 따라서 의대생이 된다는 것은 ‘셀프 투자’는커녕, 공인된 가시밭길인 셈이다.

쿠바 정부는 이 고난의 행군을 이어갈 일꾼들을 배출하기 위해서 열심히 프로모션을 한다. 만인에게 봉사하는 고귀한 직업, 의사가 되어라! 흰 가운을 입고 사람을 살리는 당신이 바로 영웅이다! 그리하여, 만 18살, 의대 지원서를 들고 고민하는 쿠바의 젊은이들은 페이스북 포스팅이 나열한 질문을 그대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난 정말로 의사가 되고 싶을까…? 저 생고생을 의대 생활 6년 동안, 그 후로 또 평생 할 자신이 있을까…?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학생들이 ‘시(Sí, 스페인어로 ‘그렇다’는 뜻)’라고 답한다. 쿠바에서는 의대는 모든 대학을 통틀어서 가장 규모가 크다. 이곳에는 매 년 약 오천 명의 의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당장 부족한 의사 숫자를 충원할 만큼은 아니지만, 원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는 쿠바 의료시스템과 의사의 보수가 낮다는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것은 분명 선방한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의대생들 (제공 = 김해완)

이 성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희생과 봉사,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국가의 프로모션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올해 의대에 들어온 신입생들은 2000년생이다. 이들에게 혁명이란, 2000년생 한국 젊은이에게 한국 전쟁이 그렇듯이 빛바래고 실감나지 않는 생경한 과거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통해 전승된 기억은 아직까지 작동하고 있다.

이는 가치의 영구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젊은이들이 ‘개인의 영욕’을 달리 추구할 길이 사실상 막혀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에 더 크게 빚지고 있다. 경제학자가 되든 빵집 주인이 되든 어차피 비슷한 월급에 비슷한 삶을 살게 된다면, 이왕 사람들에게 존경이라도 받는 의학의 길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어렵게 사는 환경에서는 역설적으로 힘든 길을 가는데 그렇게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하여, 의대생은 쿠바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의대생이 될 수 있다. 아바나 길거리에 넘쳐나는 것이 의대생과 간호대생이다. 흰 셔츠에 파란 바지의 교복을 입었으면 의대생이고, 비슷한 교복 디자인에 바지 색깔이 갈색이라면 간호대생이다. 일반적으로 교복 착용은 고등학교까지 적용되지만 의대와 간호대는 여기서 유일하게 예외다.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짊어지게 될 책임과 의무를 학생 시절부터 각인시키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밖에서 본 대형 강의실 풍경 (제공 = 김해완)

그렇지만 일관된 풍경에 속지 말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이나 반항의 동물이기도 하다. 왁자지껄한 쿠바 의대생들이 모두 천사 같은 나이팅게일일 리는 없다! 저 동일한 교복 아래에 얼마나 다양한 인간군상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아니, 교복만 해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자태가 참 다양하다. 뻣뻣한 교복을 조금이라도 달라붙게 고쳐 입으려는 어린 의대생들과, 이를 단속하려는 학교 사이의 싸움이 끊이질 않는다. 학생들의 내면에서도 이와 비슷한 싸움이 벌어진다. 사회가 깔아놓은 포석 위에서 살아가지만, 이들도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계산한다. 그리고 그 계산에 따라서 유형이 갈린다.

첫 번째 유형은 ‘폼생폼사형’와 ‘현실도피형’이다. 전자는 단지 의대생이라는 타이틀이 멋져 보여서 입학한 케이스다. 후자는 대학은 가야겠는데 무엇을 공부해야겠는지 모르겠거나, 원했던 전공 입학에 모두 실패한 후에야 마지막 선택지로 의대에 오는 경우다. 이런 실속 없는 경우가 가능한 이유는 의대 입학 조건이 지나치게 너그럽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70점을 넘긴 학생들은 모두 받아준다. 원래는 쿠바에서도 95점 이상의 점수를 받은 소수의 학생들만 의대 입학이 가능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의료 인력의 수요는 증가하는 반면 의대에 진학하려는 학생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이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학 기준이 낮아졌다.

기준 완화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입학이 쉽다고 해서 공부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를 이용해서 의대에 편승한 친구들은 1학년을 넘기지 못한다. 첫 해에 낙제하는 학생의 숫자는 입학생의 삼분의 일 가까이 된다. 만약 개인적으로 의학에 큰 뜻이 없는데도 낙제하지 않은 학생이라면, 가족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 쿠바에서는 신세대보다 부모 세대의 교육열이 더 높다. 이들은 대학 교육이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과거를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자식이 의사가 된다는 것은 가족의 크나큰 경사다. 큰돈을 벌 수 없다 해도 ‘배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므로.

소규모로 이뤄지는 워크샵은 작은 교실에서 한다 (제공 = 김해완)

개중에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야심만만한 친구들도 있다. 쿠바의 젊은이라면 누구든 외국으로 떠나는 삶을 한 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쿠바가 90년대 최악의 위기를 극복한 지금, 관광업의 부흥으로 인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쿠바 사회 내부에서 외국과의 접촉면이 커진 것이다.

따라서 야심 많은 쿠바 청년이라면 외국행을 거의 유일한 인생역전의 기회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험에서 ‘의사’ 타이틀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보험이다. 이들도 외국에서 의사의 생활수준이 쿠바보다 월등히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료 자격증을 재등록하는 과정이 쉽지 않겠지만, 일단 외국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인생역전도 꿈속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는 이런 신세대들이 국가 시스템에 기생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누가 삶을 바꿔보겠다는 개인의 의지를 막겠는가?

마지막 유형은, 당연한 말이겠지만, 의학을 사랑해서 의대에 온 케이스다. 수능을 거의 만점을 받았음에도 이들은 굳이 누구든지 입학할 수 있는 의대에 왔다. 의사의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 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학에 매력을 느낀다고 이 친구들은 고백한다. 쿠바에서 의학이란 만인에게 열려있되 아무나 수영할 수는 없는 지성의 바다다.

그리고 의사란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의사 자격증이 생계의 어려움을 막아내는 방패가 되어주지는 못하겠지만, 거꾸로 어떤 외압도 그들로부터 의학이라는 지식과 타인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앗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의사는 직업이기 이전에 존재의 방식인 것이다.

교재를 빌리기 위해서 줄 서서 기다리는 의대생들. 교재 역시 100% 국가에서 제공한다. (제공 = 김해완)

‘나는 의학이 좋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십대 후반의 앳된 얼굴 속에는 30년째 가족주치의로 근무하는 내 꼰술또리오 의사의 주름진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녀는 적은 월급 때문에 식당 웨이터로 일하는 자식들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단단한 힘이 느껴진다.

마지막 유형에 해당하는 의대생들이 바로 그녀의 뒤를 이어 미래의 쿠바 의료를 이끌어나가게 될 것이다. 혹은, 다른 계산을 품고 공부를 시작한 의대생들도 6년 동안의 배움 속에서 이 사랑을 익히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쿠바 의대생들을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로 ‘다양성’을 택하겠다. 진로의 선택지가 다양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의대에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이 의사로 거듭나는 방식 또한 성격만큼이나 다양하다. 의대 시험은 어렵긴 해도 절대평가이고, 경쟁이 없다. 단지 자신과의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공부하는 게 제일 잘 맞는지, 어떤 의사가 될 수 있는지 조금씩 깨달아간다. 물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의대의 수준이 낮아져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의사들은 튼튼한 학습능력과 강한 책임감을 익혀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의대 교수들은 꼬장꼬장한 얼굴로 미래의 동료들을 훈련시키는데 최선을 다한다. 이 청년들이 놀기 좋아하는 쿠바인의 본성(?)을 거스르면서 책상 앞에 붙어있을 수 있도록, 시험과 잔소리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서로를 지지고 볶고 배신하고 또 믿으며, 그렇게 의학은 세대를 이어 계속된다.

발칙한 질문으로 시작했던 페이스북 포스팅은 어떻게 끝날까? 실제 쿠바 의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훈훈하게 결말을 낸다.

“나는 신이 아니다. 단지 환자들을 만나며 매일 조금 더 똑똑해지기 위해, 강해지기 위해, 또 배우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이 끝없는 배움과 성장을 향한 의지가 바로 의사가 장래희망이라는 참된 의미인지도 모른다. 그런 학생들이 많아질수록 이 나라의 의학이 가는 길도 밝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 길은 어둡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팻말이 의대 앞에 서있다. (제공 = 김해완)

 

김해완 (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godhks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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