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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상사의 혁명적 영성"...전태일전태일 49주기 기념 강연회... 대구지역 전태일 열사 일가모임 '종친회' 기부금 전달식도 열려
이인문 기자 | 승인 2019.11.18 17:42
전태일 열사 49주기 기념 행사가 지난 13일 대구인권사무소에서 개최됐다.(=송필경 제공)

전태일 열사 49주기 기념 토크콘서트&초청강연회 '기억과 상상'이 지난 13일 대구인권사무소 교육센터에서 전태일의친구들(이사장 이재동)과 대구경북전문직단체협의회(회장 박미란), 두목회 공동주최로 개최됐다.

이날 강연회는 대구 호산고 강성규 교사(전교조 회원)의 사회로 제1부 토크콘서트와 제2부 초청강연회로 나뉘어 진행됐다. 제1부 토크콘서트의 초대손님으로는 전태일 열사의 대구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 은사 이희규 선생과 열사의 분신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삼동친목회 시절 친구 김영문 선생, 그리고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선생이 나와 열사의 생전 일화들을 소개했다.

이희규 선생은 청옥학교 시절 전태일 열사를 명랑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현재 미국과 서울에서 살고 있는 두 친구들과 함께 셋이서 삼총사로 불렸다며 오직 원(怨)은 가난이었고, 자신도 가난이 원이라 그 덕에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으며, 열사가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가게 된 이유도 모두 가난때문이었다고 전했다.

열사처럼 가난 때문에 전남 나주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 신원사에서 재단 보조로 일했던 김영문 선생은 지난 1970년 11월 13일 열사의 분신 순간을 생생히 기억했다. 당일 평화시장 3층에 삼동친목회 동지들 7,8명이 모여 근로기준법 책을 태울 계획으로 휘발유를 준비했는데 구호를 적은 현수막을 경찰들이 미리 들이닥쳐 빼앗아가버리자 그 때 열사가 분신을 결심한 것 같다고 증언했다.

"너희들 먼저 내려가라"며 10분 후 내려가겠다고 한 열사가 10분 뒤 자신의 이름을 불러 무심코 다가서던 순간 바로 불을 당겨버렸다고 한다. 일이 터지고, 허겁지겁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께 상황을 알리러 갔을 때 얼굴이 하얗게 질리시던 여사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토크콘서트 모습.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강성규 교사, 은사 이희규 선생, 친구 김영문 선생, 동생 전순옥 선생((=송필경 제공)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선생은 열사의 분신 후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증언했다. 당시 노동청과 중앙정보부, 회사 관계자들이 큰 여행가방에 만 원짜리 돈을 가득 담아왔는데,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가 남은 자식들을 모두 불러모아 그 돈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선생이 "그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고, 안 받으면 어떻게 되냐?"고 묻자 이소선 여사가 "돈을 받으면 학교도 잘 다니면서 어려움 없이 잘 살 수 있을 것이나 대신 받지 않으면 오빠의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답해, 전순옥 선생은 그나마 다니고 있던 야간학교를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전태일은 새로운 나라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내가 전체와 하나될 때는 오직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때"

제2부 강연회 연자로 초청된 '거리의 철학자'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수운과 만해와 전태일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란 강연을 통해 전태일 열사의 삶의 의미에 대해 밝혔다.

김상봉 교수는 일본 교토대학 오구라 기조 교수가 『조선사상전사』에서 언급한 한국 사상의 개성적 특징 중 '사상의 혁명적인 역할'과 '조선적 영성'에 주목해 "우리 역사에서는 철학과 종교를 아우르는 사상이 학문공동체 내의 담론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 정치를 이끄는 역할을 하며, 조선적 영성은 원효의 화쟁사상과 퇴계의 천일합일을 거쳐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으로 이어지는 '하늘과 인간이 같다'는 생각으로 오구라 기조 교수가 말하는 조선사상사의 저 두 가지 통시적 개성을 하나로 묶어서 이름 붙인다면, 그것은 혁명적 영성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조선적 영성이 ‘하늘과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뜻한다면, 그런 영성이란 단순한 이성의 일이 아니라 믿음의 일일 것"이라며 "소망의 주체인 전태일이나 최제우가 꿈꾼 나라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나라도 아니었고, 또한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입증된 나라가 아니었지만 그것은 개벽해야 할 세계, 창조해야 할 나라였던 것처럼 역사의 발전과 궁극의 유토피아는 과학적 법칙에 따른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김상봉 교수(=송필경 제공)

아울러 김 교수는 "혁명은 믿음에서 시작된다"면서 "그렇게 적에 대한 단순한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원수도 없고 전쟁도 없는 세계를 향한 간절한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이 땅의 민중항쟁이었다"며 "동학농민군의 경우 '사람을 죽이지 말고 동물을 죽이지 말라'며 폭력항쟁에도 엄연한 윤리가 있음을 분명히 했는데, 이처럼 무기를 들고 전쟁터로 나아가면서도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누구도 누구를 죽이지 않는 세상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기에 혁명의 윤리성이 중요하고, 믿음이 아닌 단순한 이성으로는 이 불일치를 견디지 못해 마르크스와 레닌,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냉혹한 폭력의 길을 걷거나 아니면 톨스토이에서 간디로 이어지는 속없는 평화주의 사이에서 기진맥진하게 된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동학에서 시작해 의병전쟁으로 이어졌던 무장투쟁이 무위로 돌아간 뒤 3.1운동의 평화적 저항으로 이전했으나 그것이 실패로 끝난 뒤에는 다시 새로운 무장투쟁이 출현했다. 하지만 이후의 무장투쟁은 새로운 항쟁의 윤리를 보여주지 못했고, 1928년 코민테른의 방침에 의해 신간회가 1931년 해체된 뒤로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해방 후까지 오랜 적대적 반목의 길을 걸으면서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다"면서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모든 적을 폭력으로 제거한 뒤 4.19에 이르러서야 오래 잠들어 있던 우리 역사 속의 혁명적 영성이 다시 깨어났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김 교수는 "폭력을 이기는 힘은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자각에서 나오며, 내가 전체와 하나라는 것은 증명할 수 없고 오로지 믿을 수 있을 뿐이다. 우주 내에서 하나의 모래알에 지나지 않는 내가 전체와 하나되고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만나게 할 수 있는 때는 오직 내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때 뿐이며,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때 '나는 나, 너는 너'의 고립과 단절이 지양되고 '너도 나'라는 서로 주체적인 삶의 지평이 열리게 된다"면서 "이것이 우리의 민중항쟁의 역사가 잉태해왔던 새로운 나라의 본질이며, 전태일은 이렇게 한 개인의 영혼 속에서 표현되고 실현되는 '사랑'을 완성한 사람으로 이러한 사랑으로 다스리는 새로운 나라를 향한 새로운 시작이었다"고 전태일 열사의 삶의 의미에 대해 피력했다.

끝으로 그는 "전태일 이후 이 땅의 항쟁의 역사는 모두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었으며 그 능선의 마지막 끝에 5.18이 있었다"며 "5.18은 동학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한 항쟁의 능선들이 하나로 만나 솟아오른 봉우리로서 항쟁 마지막 날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 전남 도청을 지킨 사람들은 모두 부활한 전태일이었던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오랜 강연을 마쳤다.

강연장 모습(=송필경 제공)

"전태일 삶의 철학적 의미 돌아봐"

"열사의 종친회에서도 기념관 설립 위한 기부금 전달"

이날 강연회에 참석했던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대구경북지부(이하 대경건치) 박준철 상임대표는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개최한 행사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면서 "열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분들을 모셔 은사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해주려고 했다는 등 그동안 잘 알 수 없었던 열사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강연을 통해 동학부터 5.18까지 우리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전태일 열사의 삶의 의미에 대해 철학적으로 짚어본 것도 매우 뜻깊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그는 "특히 대구 지역에 살고 있는 전태일 열사의 일가 모임인 종친회에서 직접 모금을 통해 주최측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정말 뜻밖이라 가슴이 뭉클했다"면서 "대구에서 전태일기념관을 설립한다고 하는 게 시민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하는 우려도 많았는데 이렇게 종친회까지 나서서 전태일 열사의 삶을 인정해주는 모습을 보니 지금의 대구전태일기념관 설립 운동이 현재 꽁꽁 얼어붙어 있는 보수적인 대구의 정서를 조금은 바꿔낼 수도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총 12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회에는 대경건치에서 박 대표 외에도 김효정, 송필경, 장기영 회원 등이 참석했다.

이인문 기자  gcnewsmoon@gunch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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