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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환자가 아니다[일상의 의료를 찾아서 9]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김해완
김해완 | 승인 2019.12.05 17:31

'어쩌다 보니' 본지와 인연을 맺게 된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김해완 씨는 지난 8월부터 격주로 『쿠바의 의료 실험 - 일상의 의학을 찾아서』를 연재를 시작했다.

김해완 씨는 아바나 의대를 다니면서, 의대생으로서 보고 또 경험한 쿠바 의료시스템을 '일상의 의학'이라 칭한다. 대단한 의료기술은 없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문제(병)을 해결하며, 병과 의료와 사람을 둘러싼 관계를 바꾼 쿠바의 의료시스템을 소개할 예정이다.

- 편집자 주

 

이웃들과 이야기하는 노인들 (제공 = 김해완)

아바나의 집들은 참 예측불가다.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은 뒤죽박죽 꼬여 있다. 이는 아바나의 만성적인 주거난 때문이다. 사람은 점점 더 몰리는데 집은 갈수록 부족해진다면, 해결책은 하나뿐이다. 기존의 집을 더 잘게 쪼개는 것! 결과적으로 단독주택 하나에도 구석마다 수많은 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쿠바의 의대생들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가정방문조사를 (‘뻬스끼사Pesquiza’라고 불린다) 실시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 낯선 풍경에 놀란다. 이 좁은 골목에 이렇게 많은 가구(家口)가 모여 있다고? 혹시 다용도실 뒷문은 아닐까?

노크를 해보면 정말로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온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거의 대부분 노인이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일하러 간 시간대라서 그렇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켜보지만, 호구 조사를 해보면 십중팔구 가족 내에서 노인의 비율이 청년보다 더 높다. 내가 사는 집만 해도 그렇다. 이 단독주택에는 2층의 나, 1층 이웃, 그리고 쿠바 집답게 꼽사리처럼 끼어있는 뒷집 이웃까지 이렇게 총 세 가구가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노인이 아닌 거주인은 나밖에 없다. 이 집 뿐이랴? 전 집에서도, 전전 집에서도, 쿠바에서 처음으로 혼자 살아본 아파트에서도 내가 상시적으로 교류를 했던 것은 모두 노인들이었다.

아바나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이 노인들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다. 통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4년에 60세 이상의 노인 인구는 쿠바 전체 인구의 17.8%를 차지했다. 그리고 만약 고령화 속도가 현재처럼 유지된다면, 이 수치는 2025년에는 26%를 찍고 2050년에는 30%에 육박할 것이다. (Álvarez Sintes, 『Medicina General Integral Volumen II』, 2014 참고) 그와 반대로 출산율은 바닥을 친 지 오래다. 2016년 쿠바 여성 1인 당 출산율은 1.72명으로, 낮은 순위로는 전 세계 10% 안에 들어간다. 80년대 초반부터 쿠바 출산율은 이미 2명 이하로 떨어졌었고 다시는 오르지 않았다. (World Bank 통계 참고) 쿠바인들은 이 그래프의 곡선 변화를 삶에서 피부로 느낀다. 길거리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보다, 그 옆에 앉아서 그 아이들을 지켜보는 노인들의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더 많아지고 있다.

가족이 탄 휠체어를 끌어주는 모습 (제공 = 김해완)

한마디로, 이 섬은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쿠바만의 문제가 아니다. 쿠바의 인구 변화는 전 세계와 궤도를 같이 하고 있다. 20세기에 폭발적으로 개체수를 늘린 호모 사피엔스 종은 21세기에 와서 ‘늙음’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맞이했다. 높은 실업률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 앞에서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젊은이들이 증가할수록 ‘청년의 시간’이 길어지고, 병원이 육신의 기능을 유지하는 더 정교한 기술을 발명할수록 ‘노년의 시간’ 또한 길어진다. 이 공백의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아이들의 모습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가장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선진국이다. 대형학살을 야기하는 사회적 위험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값비싼 의료 가격을 치를 수 있는 유복한 땅만이 역설적으로 ‘늙을 수 있는’ 셈이다. 쿠바는 선진국의 대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회지만, 강력한 치안과 수준 높은 의료라는 전제 조건만큼은 철저하게 이뤄냈다. 덕분에 쿠바도 함께 늙는 중이다.

이 통계에는 쿠바가 마주하고 있는 어두운 현실도 스며들어 있다. 유달리 청년층 인구 유출이 심하다는 것이다. 외국에 아무런 지인도 없고, 외국에 나갈 아무런 계기도 없는 청년들도 ‘나는 내가 언젠간 떠나리라는 것을 안다’고 말한다. 기회가 오기만 하면 곧바로 떠나겠다는 뜻이다. 이 인구 유출은 온 나라가 마비 상태였던 1990년대 특별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최악의 고비를 넘긴 현재에도 감소할 줄을 모른다. 90년대의 탈출이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면, 21세기의 이동은 이 나라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청춘의 절망적인 심정을 반영하고 있을 터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무리 복지 혜택을 높여도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쿠바 정부가 개혁을 꾀하더라도 고령화의 속도는 쉽게 늦춰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 놓고 속수무책으로 비관만 할 수는 없다. 이런 고령화에 대처하기 위해 쿠바에서는 꼰술또리오와 뽈리끌리니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 의료기관에서 노인들은 임산부와 신생아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환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임산부 및 신생아와 마찬가지로 정기적 방문 대상이다. 가족주치의는 동네에 있는 모든 임산부를 매일 찾아가거나 통화하면서 일상을 공유하는데, 동네 노인들과도 비슷한 방식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딱히 건강에 문제가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또 왕진을 가는 것이다.

또, 간호사는 환자의 생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의사가 적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집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특히 가파르다던가, 지난달에 아들과 싸운 후 계속 홀로 지낸다던가, 낙상을 입고 난 후 시장을 보러갈 수 없어서 영양 섭취가 부실하다는 것 따위의 디테일 말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노인들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마음 편하게 꼰술또리오에 연락할 수 있다. 꼰술또리오가 문을 닫은 시간이라면 24시간 가동되는 뽈리끌리니꼬에 연락을 취하면 된다.

결국 고령화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것은 쿠바 의료의 꽃, 일차 진료(Atención Primria) 시스템이다. 고령화의 풍경이 점점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갈수록, 가족주치의들은 이에 대응하는 의료 사회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데에도 힘쓴다. 노년층의 우울증 확산을 막기 위하여 노인정 활동을 지원하는 것, 아침마다 공원에서 열리는 태극권 무료 수업을 권장하는 것도 모두 이런 프로그램의 일부다.

길거리의 노인들 (제공 = 김해완)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문제가 해결되는가? 복지는 어디까지나 최악의 상황을 ‘차악’으로 만들기 위한 방어선일 뿐, 그 자체로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복지의 대상자는 생명을 와해시키는 일차적 폭력에서 벗어나지만, 실제로 그들이 삶에서 행복해지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그래서 사회가 늙어간다는 사실은 쿠바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답 없는 난관이다. ‘행복하게 늙는 법’이라는 질문에 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답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은 환자가 아니다. 노인은 고정된 정체성도 아니다. 누구도 처음부터 노인이 아니었으며, 누구도 노인이 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노인’이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삶의 한 구간을 지칭하는 단어다. 그리고 이 시간은 삶의 시작인 출생만큼이나 쉽지 않다. 노인들은 아기들처럼 심신이 섬약하고 타인의 관심을 필요로 하지만, 아기보다 더 고집이 세고 덜 귀엽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앞으로 아이들은 쑥쑥 자랄 것이지만, 노인의 생명력은 사그라들 수순만 남았다.

‘의(醫)’의 영역에는 겹치면서도 동일시될 수 없는 두 가지 부문이 존재한다. 바로 의료와 의학이다. 의료가 눈앞에서 당장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구하는 실질적인 기술이라면, 의학은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넓히는 지적 여정이다. 의학의 깊이와 넓이가 몸을 통해 표현되는 삶을 아우르지 못한다면, 눈부시게 발전된 의료 기술로도 우리는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령, 우리는 살기 위해 숨을 쉰다. 동시에 수십 조개의 세포도 호흡한다. 그때마다 산소 원자는 미토콘드리아의 막에 부착된 전자전달계 끝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호흡이 끝날 때 활성산소를 발생시킨다. 산화력이 천 배는 강한 활성산소는 온 몸을 돌아다니며 갉아먹고 결국 노화를 일으킨다. 들숨과 날숨 한 번에 생사(生死)가 교차한다. 여기서 의학적 이해를 결여한 의료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테크놀로지를 고안할 것이다.

길거리의 노인들 (제공 = 김해완)

그러나 삶을 이해하는 의학은 노화가 슬픈 까닭이 활성산소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꿰뚫어볼 것이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오랜 경주 끝에서, 갑자기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지금껏 이룩해 온 ‘자립’의 상태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상 관계에서 쓸모없어졌다는 느낌을 받으니 행복하기도 어렵다. 이 마지막 시험은 테크놀로지를 통해 지연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이를 건너뛸 수 없다.

이 통찰력은 테크놀로지에 뒤쳐진 쿠바 같은 곳에서 더 예민하게 살아있다. 쿠바 의학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노인을 치료하는 목적은 수명 연장이 아니라, 그들이 독립적인 삶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그리고 노인의 새로운 자립은 주위 사람들의 배려를 필요로 한다. 사실 쿠바의 의료 사회 프로그램은 물자 부족, 인력 부족, 의지 부족의 이유로 유명무실할 때가 잦다.

그러나 시스템의 빈 구멍은 쿠바의 끈끈한 동네 커뮤니티와 가족관계에 의해 메워진다. 이웃들이 매일 습관적으로 소통하는 환경에서는 고독사가 일어날 수 없고, 노부모를 방치하는 자식들을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노인 1인 가구가 생기기 어렵다. 육체적 능력이 저하될수록 관계 맺는 능력으로 보상받는 것이다. 손자가 마당에 할아버지를 앉히고 정성껏 면도해주는 따뜻한 장면은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것은 모두 노인들이 독립적인 어른의 시간에서 부드럽게 ‘아웃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손길이다. 교통수단부터 식수 문제까지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는 쿠바이지만, 늙음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이중 삼중으로 형성되어 있다.

길거리의 노인들 (제공 = 김해완)
손녀와 함께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 (제공 = 김해완)

의학을 공부할수록 신체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며, 또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늙음과 병듦은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생명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건강은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병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삶을 지배하고 또 긍정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해야 할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를 ‘위대한 건강’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21세기, 인간의 평균 수명은 늘어났으나 ‘위대한 건강’을 달성하는 것은 더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아바나 주택가에서 작게 쪼개진 공간마다 앉아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날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점점 쪼그라드는 삶의 가능성 속에서 젊은이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그와 더불어 점점 더 적은 아이들이 태어나니, 과도한 인구밀도로 숨 막혔던 집은 한결 여유롭다. 그러나 노인들만 남을 이 세계가 과연 살기 쉬울 것인가? 행복할 것인가? 인구 증가와 고령화라는 동시적 변화는 삶의 지도를 흔들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 시대를 조용히 통과하고 있는 쿠바의 전략에서 뭔가를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술이 아닌 통찰을 말이다.

길거리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 (제공 = 김해완)

 

김해완(쿠바 아바나 의대)

 

김해완  godhks12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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