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편] 밴디다스, 아쉬운 영화
상태바
[영화한편] 밴디다스, 아쉬운 영화
  • 김용진
  • 승인 2006.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금융자본의 탐욕에 총을 든 여자강도들?

 

한미FTA로 인하여 지옥에서 사육된 미쳤을 지 모르는, 최소한 식량으로 쓰기에는 너무 문제가 많은 미국산 소고기가 의기양양하게 들어왔다.

이달 중순이면 식단에 오르게 되고, 대부분은 그것이 미국산 소고기인지도 모르고, 혹은 한우나 호주산으로 속으면서 먹게될 수도 있다.

십여 년이 지나면, 광우병의 폐해가 나타날 것이고, 이번 결정을 한 관리들과 대통령은 을사오적 못지 않은 지탄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대로 들어온 미친소들을 그대로 두어야 하는가?

그 소들이 있는 창고라도 불살라야 하지 않는가?

여기, 미국 금융자본의 탐욕과 학살에 총을 들고 저항한 여자들이 있다. 유럽유학 출신인 부자집 딸 사라(셀마 헤이엑), 가난한 농촌 처녀인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들이다.

제국주의 자본이 늘 그렇듯이, 공공성이 높은 기간산업을 공격한다.

미국 자본은 멕시코의 철도권을 따내고, 그것을 건설하기 위해서 부채가 많은 농민의 토지를 1센트와 종이쪽지와 총으로 강탈한다. 사라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은행 역시, 강탈되어 미국은행에 합병된다.

마리아와 사라는 미국 자본에 모든 것을 잃고, 의기투합하여, 쫓겨난 농민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또는 복수하기 위해 손을 잡는다. 그들의 입맞춤에, 혹은 미국자본의 부당함에 눈뜬 미국 남자 수사관도 그들에게 동참하고....

그렇다고 영화가 혁명적인 영화는 아니다. 민중의 고통에 대해 진지하지도, 미국금융자본의 강탈에 분노를 표하지도 않는다. 단지 그것은 섹시하고 발랄한 두 여자 강도의 무용담의 그럴싸한 배경일 뿐이다.

물론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은행강도는 성공하고 미국 금융자본가를 처단하는 것으로 끝난다. 예쁜 두 여자가 아니라면 이야기는 진부하고, 화면도 별로 화려하지 않다. 흥행에 별로 성공하지 못함이 당연하다.

차라리, 그 은행강도들이 미국 금융자본가와 그에 결탁한 멕시코 경찰의 총알세례를 받고 장렬하게 전사를 했다면, 더 흥행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그게 더 현실에 가까우니까. 이제는 그런 식의 무장봉기가 가능하지 않으니까, 두명의 영웅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 더 많은 민중들의 폭넓은 연대만이 그나마, 대항하려는 꿈이라도 꾸게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