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우생학…불완전한 인간 긍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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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우생학…불완전한 인간 긍정해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0.01.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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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건치‧건치정책연 공동 열린강좌 개최…신영전 교수의 우생학 강연
서경건치와 건치정책연구회가 공동으로 지난 21일 신영전 교수 초청 '2020년 열린강좌'를 개최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서울‧경기지부(회장 김의동)과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회장 김경일)는 공동으로 ‘2020년 열린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21일 토즈 양재역점에서 열린 이번 세미나에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신영전 교수가 연자로 나서, 자신의 번역서 『일본이 우생사회가 될 때까지』를 바탕으로 우생학에 대해 강연했다.

먼저 신영전 교수는 자신을 ‘마이너리티(Minority)'라고 소개했다. 그는 예방의학, 건강정치학을 전공하고 현재 한양대 의대 보건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 2월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약 2년 간 활동하다 사퇴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마이너‘라고 소개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전공 때문이다.

그가 주로 개입하는 영역은 ‘취약계층 의료정책’으로 만성정신질환자, 만성중증질환자, 노인, 아동, 여성 등 취약계층을 다룬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슈는 항상 뒷전이고, 정책에 있어서도 ‘주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강연 주제인 ‘우생학’의 민낯을 전면으로 만나는 영역이기도 해서다. 신 교수는 “과거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연대회의를 비롯해 취약계층 등에 대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고위직의 사람들을 만나면 결국 ‘그런 사람들 도와줘서 뭐하냐’는 그들의 속내와 부딪히게 된다”면서 “이건 결국 우생학이다. 장애나 질병을 가진 사람, 노인은 가치가 떨어진다는 관점이다. 공식석상에서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취약계층에 대한 정치에선 곳곳에 깊게 뿌리내린 우생학을 마주한다”고 밝혔다.

조선에 직수입된 독일 나치의 우생학
아직 낙태죄‧장애 산전검사로 남아있어…

우생학’이란 단어는 19세기 후반 프란시스 갈톤이란 사람이 쓰기 시작했다. 우생학을 요약하자면 ‘우월한 인간과 그렇지 못한, 열등한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 개념을 유럽과 미국에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우생학을 바탕으로 1864년 우생법을 제정했고, 이는 흑인에 대한 차별, 혹독한 이민법으로 변화‧발전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생학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같은 ‘인종청소’를 가능케 한 논리로 작용했다.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서구문명 혹은 사상이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생학은 다양한 경로로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독일 베를린에서 학위를 받은 이갑수 씨는, 1933년 귀국하자마자 1931년 제정된 나치의 ‘유전병 방지법’을 번역‧소개했다. 당시 ‘유전병 방지법’은 6만 정신장애인을 ‘단종’하는 근거법령이 됐다.

신 교수는 “독일에서 우생학을 직수입한 이갑수는 귀국 후, ‘우생’이란 잡지를 간행하고 조선우생협회를 주도적으로 만들었다”면서 “해방 후 초대 보건부차관이 된 이갑수는 한센병이 감염병이란 걸 알면서도 유전병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위 미감아(未感兒)에 대한 강제단종의 근거를 제공키도 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해방 후에도 우생협회 설립과 ‘국민우생법’ 제정을 시도했다. 그는 말년까지도 이 법을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고까지 표현했다.

1949년 일본 나치 청년단을 모델로 한 ‘학도국단’과 국민교육헌장,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기반의 일민주의 이론적 틀을 만든 안호상 씨는 이갑수 씨와 같은 시절 함께 독일에서 유학한 사이였고, 이갑수는 1952년 하두철 씨가 쓴 『국민의학』의 추천사를 쓰기도 했는데, 이 책은 첫 장부터 ‘우생학’을 다루고 있는 등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생학’은 지금으로 치면 ‘4차산업혁명’과 같은 신학문으로써, 조선우생협회 발기인에는 윤치호, 여운형, 이광수, 조만식 등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신지식인들이 이름을 올렸다. 전체 발기인 85명 중 25명이 의사였다.

신영전 교수는 “이광수는 ‘민족개조론’이란 책을 펴내 이른바 좋은 유전자를 가진 선남선녀를 결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훗날 반성하긴 했지만 신채호도 ‘일본을 이기려면 튼튼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며 “지금 보면 이상하지만 당시 조선우생협회에서는 혈액형별 성격, 배우자 선택 문제, 산아제한 등을 주장했는데, 당시 최신 과학의 주류담론이 우생학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우생학의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는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규정한 「모자보건법」 제14조 1에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③의제1항의 경우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 등이다. 그러나 우생학을 우리보다 먼저 받아들인 서구나, 일본의 법에선 ‘우생학’ 혹은 우생학을 연상시키는 단어는 모두 삭제됐다.

신영전 교수는 “우생학이 서구 주류담론에서도 밀려나자 우생학은 ‘위생’이란 이름으로 ‘건강’이란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우리 곳곳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서 "좋은 구호처럼 당연히 쓰이고 있는 ‘건강은 국력’이란 말이 적극적 우생 담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일전쟁 전까지 일제는 우생법에 따라 조선민족은 열등하고 야만적이라며 산아제한을 했었으나, 1937년 이후 전쟁에 나갈 군인과 물자 생산을 위해 내선일체를 주창하며 ‘체력은 국력이다’란 구호로 출산을 장려했다. 그 구호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라며 “우생담론을 이긴 건 결국 전쟁, 국익이었다. 우생학은 과학을 표방하지만 사실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참고로 1939년 일본에서도 결혼10훈이란 것이 성행했는데, 그 중 일부 내용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으로 물론 우생학에 기초해 있다. 일례로 ▲나쁜 유전이 없는 사람을 선택하자 ▲서로 건강증명서를 주고받자 ▲낳고 기르자 국가를 위해 등이다. 이 때 ‘우량아 선발대회’가 탄생하기도 했다.

신영전 교수

신체적‧정신적 완벽한 상태의 ‘건강’, 허상
인간의 ‘불완전성’ 인정한 ‘온존’ 개념이 적합

신 교수는 패전 이후 나치의 우생학이 죄악으로 간주되면서 우생이란 이름은 사라졌지만, 내용적으로 이를 흡수한 게 오늘날의 ‘위생’, ‘공중’, ‘예방의학’이라고 주장키도 했다.

그는 “장애아에 대한 산전검사와 낙태는 당연시 되는데, 일본의 장애인 협회는 이 산전검사를 거부했다”며 “장애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장애인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고, 이는 자신들을 모욕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짚었다.

또 WHO에서 말하는 ‘건강’에 대한 정의 역시 ‘더욱 우월한 인간’을 지향하는 완벽한 존재에 대한 인간의 강박, 기준이하는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는 우생학의 관점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WHO의 건강에 대한 정의는 물론 진보성이 있지만, State of Complete, ‘완전한 상태’로 정의된 건강, 궁극적으로 추구할 완벽한 상태는 존재하지 않고 그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생명에 관한 긍정은 바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 교수는 ‘건강’이란 개념 대신 Well-Being, ‘온존(穩存)’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에 따르면 '온존'이란 생로병사를 포함한 인간의 본질적 불완성을 근간으로 각자의 삶의 위치에 따라 역량을 다르게 규정하고, 늙거나 장애가 있는 것을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을 뜻한다. 또 존재의 '바름'을 지향하며 다른 존재와 상호 호혜적 관계를 중시하고 인간중심주의, 생명중심주의를 넘어서 다른 존재의 착취를 통한 생존과 역량강화를 바르게 보지 않으며 생태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는“최근엔 인류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 때문에 멸종한다는 ‘인간세’라는 개념이 나왔는데, 나는 현 시대를 ‘우생세’라고 정의하고 싶다”면서 “이 시대가 인간이 더욱 ‘양질의 인간’이 되겠다고 발버둥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한 걸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리는 시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장애인, 이주민/난민, 일베, 여성혐오 등 사회 이슈의 근저를 이루는 게 바로, 양질의 인간이 되겠다, 혹은 있다는 ‘우생학’이라며, 이것은 가깝게 진료실 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자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인데, 질병이 있으면 불완전하고 장애가 있으면 쉽게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아주 친화성이 있는 개념이다”라며 “한국처럼 파시즘이 제대로 도래할 나라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측면이 있어 우생학에 대한 경각심이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미래 먹거리’로 포장된 우생학
과학‧유사과학 제동 걸 시민사회 역할 중요

특히 신 교수는 ‘우생학’이 신산업이라는, 미래 먹거리라는 이름표를 달고 국가가 밀어붙이는 ‘의료영리화 정책’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를 사퇴한 이유는 바로 영리유전자 검사인 ‘DTC’ 때문”이라며 “DTC를 통해 개인에게 20~30개의 유전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을 알려주는데, 그건 결국 좋은 유전자와 나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관련된 의료수요가 창출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전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유전자와 단일 질환이 1대1 매칭되는 게 아니고, 특정 질환이 발병하기 위해서는 ‘발현’이라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를 무시한 것”이라며 “그러나 시장에선 이미 ‘비만은 유전적 요소가 강하다’, ‘6가지 유전적 요소로 24종 체질분류 성공’이라며 광고하고, 미용실 같은 곳에서 공짜로 유전자 검사를 해주며 사람들을 유인‧알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일명 데이터3법까지 통과시켜서 이러한 건강정보를 기업에게 넘겨주기까지 하고 있다”며 “문제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 안전장치와 조직이 부재한 상태에서 관련 규제를 모두 풀어준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차의 속력을 결정하는 것은 구동력이 아니라 억제력이다. 즉, 브레이크가 좋아야만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이라며 “신사업 좋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흉기에 불과하다. 과학이 비대해지고 인류는 왜소해지는, AI니 로봇이니 하는 완벽에 대한 욕망으로 인간존재 자체를 없애는게 아니냐는 이 시대에 브레이크 역할을 할 시민단체의 역할은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월한 민족(사람)이 열등한 민족(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우생학의 논리는, 쉽게 사람이 동물이나 환경과 같은 다른 존재를 지배할 수 있는 우월한 존재라고 믿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환경과 상태를 파괴하는데 이르렀다”면서 “우월한 생은 없다. 불완전한 질병을 고친다는 권한을 가진 의료인들은 오랫동안 우생학을 지원해 왔다. 이제는 이를 극복한 사회정책을 설계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신 교수는 “우리안의 우생학에 대한 비판적이고 성찰적 검토를 통해, 이를 전복시키지 않으면 조직과 실천도 성공하기 어렵다”며 “우생학에 대한 비판자체가 의미가 있고 그걸 기반으로 조직과 실천을 만들어내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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