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빌러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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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빌러비드
  • 장현주
  • 승인 2006.11.18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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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모리슨, 들녘

 

이 소설은 미국판 전설의 고향, 흑인들의 '한'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환상적인 줄거리들이 포함되어있는데, 토니 모리슨이 어찌나 절묘하게 버무려내었는지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다. 사실 그 이상이다.

엄마손에 억울하게 목잘려죽은 아기 귀신 '빌러비드'가 어느날 문득 물속에서 솟아나와 소녀의 모습으로 엄마에게 돌아가는 그 장면이 빠져있다면 이 소설은 앙꼬없는 찐빵이 되었을 것만 같다.

정말 잘 쓴다는 건 이런 소설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각설하고...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미국방송이나 영화에서 되풀이되는 흑인들의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절제하고 책임감 없고, 종종 범죄에 연루되는..

흑인 노예란 일종의 사유물로 취급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이었고 한 인종을 정신적으로 찢어놓았던가하는 것은 이 책을 보고 비로소 안듯하다.

노예제하의 흑인들은 가족이란 개념을 가지지 못한다. 노예여성들은 진정한 의미의 어머니가 될 수 없고, 어린 노예에게는 엄마도 아빠도 형제도 없다.

소설속에 이런 에피소드가 나온다.

비로소 젖을 떼고 어렴풋이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한 어린 주인공은 언니와 함께 들판에서 일하는 어른 노예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언니에게 묻는다. 어떤게 엄마냐고.. 엄마인줄 어떻게 알지? 그러자 언니는 일하는 노예중 한명을 가리키며 머리수건을 쓴 사람이 엄마라고 말해준다. 머리수건을 따라 시선을 옮겨보지만 사실 그녀는 머리수건 밑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녀를 낳자마자 엄마는 일을 해야 했고 그녀는 젖먹이는 전담노예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자 형제들은 성년이 되기전에 전부 팔려갔거나 달아나다 잡혀서 죽임을 당했거나 선물로 보내졌다. 어느날 엄마(라고 추정되는 사람)가 그녀를 한켠으로 조용히 끌고가서 자기 몸에 새겨진 낙인을 보여준다. 동그란 원안에 십자가무늬가 새겨져 있는... 나중에 당신이 죽거들랑 이 무늬를 보고 엄마인줄 알라고.. 어미는 탈주를 준비하고 있었던 게다. 철모르는 아이가 나도 엄마와 같은 무늬를 갖고 싶다고 말하자 어미는 단 하나남은 제 핏줄인 딸래미의 뺨을 때린다.

소설속에서 흑인여성의 모성애는 위험한 것으로 나온다. 아이에게 집착하는 주인공에게 모두들 너무 애정을 주지 말라고 얘기한다. 아이가 죽거나 팔려가면 어떻게 견디려고 하느냐고. 다음 아이를 위해서라도 애정을 다 쏟아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노예에게는 제대로된 결혼도 남편도 아내도 없다. 성년이 될때까지 제곁에서 지켜볼수 있는 아이도 없고 배우자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도 없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관계들. 그저 욕망이 생길때 욕망을 채우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사랑을 유보해야했던 삶들. 어마어마한 한의 무게.

우리세대가 일제시대를 겪지 않고도 일본인에 대한 증오를 물려받고, 우리가 사는 시대가 조선시대가 아님에도 본능적으로 충효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것처럼, 모든 민족들은 세대를 거쳐 그들의 피에 새긴 교훈들을 전달해 왔을 것이다. 백인은 믿을게 못된다. 여자는 있을때 따먹어라. 아이는 짐이다. 이처럼. 아마도 가장 저급한 형태로.

다음세대에 전해질 우리시대의 교훈은 아마도 이런 것이겠지. 돈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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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ugi 2006-11-24 10:32:26
서글프네요. 뜬금없이 예전에 손석춘 한겨레논설위원 강연에서 들었던 프랑스에 대한 비유가 생각나네요. 그들은 왕의 목을 잘랐던 역사가 있다고...
'진보'나 '극복'이란게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

ㅏㅛㅓ 2006-11-20 10:39:43
끝문장이 가슴에 와 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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