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방치 성폭력 사건 입장문에 대한 첨삭 의견서
상태바
예방치 성폭력 사건 입장문에 대한 첨삭 의견서
  • 신순희
  • 승인 2020.07.01 17: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시론] 신순희 논설위원…대한예방치과·구강보건학회 성폭력 사건 입장문(2020.06.24)에 대한 첨삭 의견서

<<만약 학회에서 입장문에 대한 의견을 미리 물어보셨더라면, 저는 이렇게 답했을 것입니다.>>

1. ‘입장문’이 아니라 ‘사과문’이 맞습니다.

어차피 내용에 “안타깝고 유감이고 죄송스럽다”는 말을 넣을 거면 제목부터 솔직하고 정확하게 '사과문'이 맞습니다. 매일 논문을 읽고 쓰시는 교수님들이 대부분일텐데 어느 단어가 논리적인지 몰라서 그랬을 리는 없고, 언뜻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어정쩡한 ‘입장문’같은 단어를 쓰는 건 마치 한일합병을 사과하는 일본 총리처럼 몸은 뒤로 쑥 빼고 입으로만 억지춘향 하는 것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2. ‘피해자’에게 사과가 먼저입니다.

입장문 안에 사과의 의미가 포함된 단어가 3번 나오는데,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학회장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학회 행사의 일정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대처과정에서...부족하고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중 어디에도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 자체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위로하는 문장이 없습니다. 공식 사과의 대상이 학회 회원들이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내용 또한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에 관해서인데, 이는 사과의 대상과 내용 모두 우선순위가 틀렸습니다. 왜 피해자가 아닌 목격자에게 사과를 합니까? 백보를 양보하여 회원들 또한 사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쳐도 피해자가 먼저 아닐까요? 만약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는데 학교장이 피해자는 제쳐두고 다른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들에게만 폭력사건 처리를 매끄럽게 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한다면 이는 매우 어색함을 넘어 피해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공식사과의 최우선 대상은 피해자여야하고, 사과의 내용 또한 사건자체, 피해자체여야 합니다.

3. “최근 치과계 신문에 보도된”이라는 수식은 전혀 필요 없는 사족입니다.

보도가 되어서 비로소 알게 된 사건이거나, 너무 많은 사건 중에 구분하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표현은 전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이 표현을 쓴다면 다음과 같은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혹시 보도가 안됐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설마 입장문조차 안 나오고 덮였을까? 보도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사과하는 건가? 아니면 보도한 신문을 비난 혹은 원망하고 싶은 건가?”
어느 쪽이건 학회가 신문 보도를 엄청나게 의식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비난의 화살을 떠넘기는 듯한 이런 불필요한 수식 없이 해당 사건 자체를 언급하고 사과하는 것이 좀 더 진솔한 성찰의 자세입니다.

4. ‘2차 피해’에 대한 언급은 매우 반가우면서도 안타깝습니다.

성폭력 2차 피해란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또는 사건처리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신적, 사회적으로 재차 상처를 입는 것”을 말하며 한국 성폭력 상담소의 정의로는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에 의해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피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2차 피해의 여부는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하여 피해자가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 우리 모두 2차 피해/가해 가능성을 우려하고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점에서 해당 언급이 매우 반갑습니다. 건치신문은 모든 성폭력 사건의 취재, 보도마다 피해자의 의견청취와 보도허락을 필수로 해왔고 이번 사건에서도 당연히 그랬습니다.

피해자의 구제요청을 받고도 8개월가량 지나서야 피해자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는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는 학회의 처사가 참담하다고 표현한 학회 내부인사의 공개 의견표명을 읽어보면 어떤 행동이 2차 가해인지, 2차 피해를 누가 주고 있는지 좀 더 명확하게 판단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회 입장문도 공표 전에 피해자 의견청취와 공표 허락을 구하는 것이 2차 피해 예방에 좋습니다. 

5.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 오늘부터 회원보호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향후 회원들을 보호하는 학회가 되도록 새로 규정을 제정하고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학회의 각오를 적극 칭찬하고 지지합니다. 다만, 지금 현재 눈앞에서 울고 있는 회원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그 모든 각오와 대비는 아무 소용이 없는 수사일 뿐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훌륭한 자세이지만 잃을 뻔한 소가 돌아와 있는데도 다음번 도둑을 막겠다며 외양간 고치는 데만 몰두하고 소를 돌보지 않는 식이라면 그야말로 누구를 위한 처사인가라는 의문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바로 지금 눈앞의 피해 회원부터 보호를 좀 더 세심하게 실천해 주신다면 그 각오가 더욱 빛날 것입니다.
 

 

 

신순희(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이정옥 2020-07-06 14:43:05
동의하고 지지합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