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지네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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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 지네발란
  • 유은경
  • 승인 2020.09.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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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야기- 서른 다섯 번째

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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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잎은 이름 그대로 지네발을 닮았다. 줄기 사이로 드문드문 뿌리가 뻗어 나와 바위나 나무를 단단히 붙잡고 있다. 제주와 남쪽지방 일부에 사는 곳이 알려져 있는 멸종위기 2급 식물이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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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먼 길을 달리고 산길을 헉헉거리며 겨우 올라 커다란 바위를 올려다보며 내뱉은 한마디다. 숨을 곳을 찾는 대신 납작하게 엎드려 온몸으로 바위를 껴안은 그 미련한 선택에 존경을 넘어 경외심이 스멀거린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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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을 한가운데 품고 노란 꽃부리를 거느리고 있는 1센티도 채 되지 않는 꽃! 사는 곳에 어울리지 않게 기품이 넘친다. 일 년 중 제일 더울 때에 이런 곳에서 그 품위를 유지하려니 정말이지 가성비가 형편없지 않은가.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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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는 대체 얼마나 뜨거운 걸까. 빗물 대신 햇살에 발 담구고 어김없이 때맞추어 꽃을 피우는 아뜩하리만치 소름 돋는 그 고집을 누가 무엇이 꺾으랴. 그 잘났다는 인간들도 어김없이 찾아와 고개 숙이게 만드는 ‘지네발란’만의 포스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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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고르느라 뒤적이는 지금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던 그 시간이 선명하다. 땀이 흘러들어 눈은 쓰라렸고 안경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자주 뿌예졌다. 발을 제대로 디디기도 어려워 후들거렸고, 맞닥뜨린 한여름 기운을 온몸이 기억하고 있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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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힘겨웠지만 그 척박한 바위에는 반짝이는 별처럼 해맑은 얼굴로 피어있는 꽃들이 있다. 더 많은 자생지가 발견돼 새로운 곳에서 꽃들의 가장 화려한 한때와 눈 맞추는 기쁨이 있기를 바래본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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