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합의와 새로운 전문직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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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합의와 새로운 전문직업성
  • 김경일
  • 승인 2020.09.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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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경일 논설위원

'의정합의'가 이루어졌다. 아직도 여러 갈등이 남아있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특히, 의정합의체를 구성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의사도' 포함한 사회적 합의체를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필자는 쉽지 않은 합의 속에서 또다시 시민을 배제하였다는 점이, 그리고 다시 이 공간에 시민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이 안타깝다. 

의료정책에서 의사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의료에서의 중요한 한 당사자일 뿐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을 이해할 수 있고, 추상적인 정치적 언어가 현실로 표현될 수 있어 논의를 풍부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협의체에서 다루게 될 사안들 ▲의대증원 ▲공공의대 신설 ▲첩약 급여화 ▲비대면진료 등 4대 정책 외에 ▲지역의료지원책 개발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구조개선 ▲의료전달체계 확립 등의 의료현안 등 의료체계 전반에 관한 문제를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에 대한 언급 없이 당사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의사와 정부 간의 협의로 풀어간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으며, 과연 시민들이 수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의사는 전문직이다. 전문직은 전문 지식을 근거로 직업 활동을 수행하는 집단이다. 20세기 초반, 의료 전문직은 고도의 지식, 높은 수준의 교육과 수련, 높은 도덕성, 직업 규범 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높은 자율성과 사회경제적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여겨졌다. 즉, 임상에서의 자율성뿐 아니라 전문직 독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의료체계 내에서의 자율성도 확보하고 권위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서구사회에서, 대중은 의학의 정당성, 의사의 특권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의료비는 지속해서 상승하였으나, 대중들의 건강증진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일반인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의학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성이 높아짐에 따라, 환사-의사 관계에 대한 변화 필요성이 높아졌다. 또한 국가의 간섭 증가, 제3자 지불방식의 확립으로 인한 보험회사의 개입, 병원의 성장 그리고 내부의 분화에 따른 이해관계의 다변화와 의료스캔들로 인한 도덕성의 훼손 등은 의사의 권위와 자율성을 침해하게 됐다.

서구 의료계는 이 상황을 위기로 규정, 새로운 전문직업성을 재정립함으로 극복하고자 하였다. 새로운 전문직업성은 환자, 또는 시민의 자율성을 높이 평가하고 그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이는 임상 현상에서 환자중심진료로 나타났으며, 자율규제기구에 비의료인의 참여 확대와 같은 의료권력의 분배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이러한 새로운 계약을 바탕으로 의사는 새롭게 전문직으로써의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국내에는 다소 다른 흐름이 있어 왔다. 의사 스스로 전문직업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하였다. 정부가 국민을 의식하여 의료정책을 만들고 집행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소외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들 역시 그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제도가 만들어지고 운영되도록 노력하지 못하였고, 단지 개인적으로 과실을 얻기 위한 소극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보여 왔었던 역사가 있었다. 새로운 전문직업성에 관한 논의가 있었으나, 깊이 있는 성찰에 기반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가 다른 나라의 전철을 따라가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고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상을 마련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에서 새로운 전문직업성이 출현한 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역시 임상과 의료체계 내에서 환자 그리고 시민의 자율성, 권리를 높이고 동반자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방향은 의사, 정부, 시민 모두가 만들어가야 할 과제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미 의정합의가 이뤄지고 의정합의체가 거론되었지만, 의사들 스스로가 자신의 주장이 자율성을 갖고 충분한 정보를 갖는 시민이 납득 할 만한 것인지 뒤돌아보길 바라며, 그 내용을 가지고 시민을 설득하고 함께 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를, 정부 역시 관련 논의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의사들과 시민 모두 건강해지는 길이 될 것이다.

이 글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편집자)

 

 

김경일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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