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의사생활, 슬기로운 환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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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의사생활, 슬기로운 환자생활
  • 박준영
  • 승인 2020.09.28 1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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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스물 두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출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캡처)
(출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홈페이지 캡처)

살면서 요즘처럼 자주 병원을 들락거린 때도 없었다. 올 초 갑작스런(?) 조직 생활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로 결국 몸에 탈이 났다. 이명에 이어 이름도 생소한 메니에르 병이라는 진단까지 받아 약을 입에 달고 살게 된 것이다.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한 나에게 누군가 꽤 볼만한 드라마가 있으니 한번 봐 보라는 권유를 해주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얘기다.

드라마 속의 병원 수술 장면만 봐도 괜한 피로감이 밀려왔지만, 그래 1편만 보고 판단해 보자고 시작해 그만 최종 8부까지 정주행하고 말았다. 누가 드라마를 썼나 봤더니 그럼 그렇치, 나의 최애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우정 작가와 신현균 피디의 작품이었다.

이우정 작가는 이력이 독특하다. 김수현 작가처럼 정통 드라마 작가로 시작하지 않고 예능프로그램에서 히트작을 낸 뒤 드라마로 넘어온 특이한 케이스다. 작품도 혼자 쓰지 않고 작가들과 협업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구성방식을 드라마로 가져온 것이다. 이우정표 드라마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실없이 웃기다가 그 웃음을 눈물로 바꿔주는 기술이 탁월하다. 퍼즐처럼 흩어진 조각들을 극의 흐름과 함께 세밀하게 짜맞춰 마지막에 감동을 배가한다.

그의 작품엔 빌런이 존재하지 않는다. 얌체 같고 이기적인 캐릭터는 있지만 찐 악당은 아니다. 오히려 극의 막바지에 이런 사람도 선한 영향력 안으로 포용하는데 이는 극적 훈훈함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우정 작가의 또 하나 탁월한 점은 시대적 특징을 드러내는 음악을 극 상황과 조응해 똑 떨어지게 배치한다는 점이다. 영상과 음악이 맞물리면서 감정의 여백을 채워주고 참았던 호흡을 내쉬어주며 노래 속 가사로 인물의 심적 감정을 넌지시 전해준다.

대사의 감칠 맛은 물론 순간순간 기존의 가치가 전복되는 상황이 유발하는 웃음 코드, 그리고 갈등의 인물들의 화해를 통한 누선 자극은 그동안 예능 분야에서 갈고 닦았던 실력이 허명이 아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아쉽게도 8부작으로 끝나 다른 미니시리즈보다 훨씬 짧다. 등장하는 의사들은 마치 ‘히포크라테스의 현신’처럼 보여 어떤 장면은 현실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내가 접하는 의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작금의 일부 의사들의 모습과도 많은 괴리가 있다. ‘슬기로운 의사’들을 만나지 못할 바에 우리는 이제 ‘슬기로운 환자’로 거듭나야 한다. ‘슬기로운 환자생활’이라 해봐야 제 몸 건강 알뜰히 챙기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슬기로운 환자생활’만은 피할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박준영(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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