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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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어디?
  • 양정강
  • 승인 2020.09.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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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추석이 다가오는데 참으로 고약한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향 방문을 자제(自制)하란다. 한데 가고 싶어도 가본 일이 없는 `고향`을 생각하다 보니 몇 해 전 저녁모임이 떠오른다.

양정강 논설위원
양정강 논설위원

모임에서 연장자라고 건배사를 하게 되면 때와 분위기에 따라 모임의 ‘발전을 위하여’라고 간단히 마치기도 하고 몇 마디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그간 여러 차례 치른 건배사 중 하나는 수년전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한데 그 까닭은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교실 가족들로부터 받은 박수였기 때문이다. 건배사 마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큰 박수였다.

지난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면 꼰대 소리를 듣기 마련인데  술기운도 제법 돌아서인가 그만 70여 년의 일대기(一代記)를 읊어댔다.

“일찍이 1940년, 시인 윤동주 시비(詩碑)가 있고  소설 `토지`에도 나오는 간도(間島) 용정(龍井)에서 태어났는데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된 후 바로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청진에서 초등(국민)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하룻밤 사이에 월남(越南, 탈북)을 결정, 돌잡이 동생과 4명 가족이 `원산`을 거쳐 남북한 정부가 각각 수립한 직후인 1948년 9월 경계가 삼엄한 3.8선을 밤새 걸어 건넜다. 

연천에서 한탄강을 건너 먼동이 틀 즈음에서야 전문 안내인이 남쪽이니 이젠 안심하라며  `동두천`이라고 했다. 밤나무 아래서 주르륵 절로 흐른 눈물이 기억도 새롭다.

그날로 서울에 자리를 잡고는 일주일 만에 광희초등(국민)학교를 찾아갔다. 교장실에서 간단한 시험을 치르고는 장난이 심하다고 학교나 들어가라는 이모님 말을 들어 또래보다 한 살 어린데 그대로 3학년에 편입했다.

5학년이 되고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勃發), 9월 28일 서울 수복, 이듬해초 한겨울 1.4후퇴로 서울역에서 뚜껑 없는 기차로 종일 평택까지, 다음날 대구까지 이후 부산까지 피난길에 나섰다.

부산 `보수산`에 차린 나뭇가지에 칠판을 걸어 놓은 피난학교 편입, 이듬해 천막교사에서 졸업생 모두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 `의사`라고 답했다. 친구들은 군인, 과학자, 여학생은 나이팅게일, 피아니스트를 적어내던 시절이다.

1952년 중학교 입학, 정전 후 부산 피난생활을 접고 서울에서 중학교, 고교 졸업 후 치과대학, 대학원 세 학기 마치고 미국 머물기 5년, 연세의대 치과 전임강사 발령받고 귀국, 소아치과학 교실 초대 주임교수가 되어 오늘 여러분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찾아갈 고향이 따로 없다보니 제 고향은 바로 세동회(世童會, 연세치대 소아치과학 교실 모임)입니다.”

어디 가서 옛날 얘기 자주하다 보면 한 얘기 또 하곤 해서 부인으로부터 주의를 받는 처지에 순간 마지막 한마디가 떠올라 다행스럽게도 박수받는 건배사가 됐다.

지난 100년 세월 가운데 아버님은 60여 해, 어머님은 90여 년을 사셨는데 두만강, 한탄강, 한강, 다시 한강을 보따리만 이고 건너기도 한 부모님을 생각할 때마다 머리가 숙여진다. 부모님이 치른 소위 산전수전을 어려서 겪어서인가 전혀 상처를 모르고 자랐다.

수년 전부터 동생 둘과 셋이 철마다 만나서는 부잣집 자식소리는 몰라도 평생 경제적으로 궁핍한 적 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 모두 부모님, 조상 음덕이라고 되내곤 한다.

세상 뜨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는다는 버킷리스트(bucket list) 상단(上段)에 “함경도 청진, 집 뒤 야트막한 돌산에서 버려진 양철지붕 토막을 깔고 미끄럼 타던 곳을 찾아가 보고 싶다”고 적었다. 몇 년을 더 버텨야 될까?

추기(追記)
`국민학교`라고 치면 자동으로 `초등학교`로 바뀐다.
초등교육기관 명칭 변천사:
소학교(1895년)->보통학교(1906년)->소학교(1938년)->국민학교(1941년)->초등학교(1996년)

양정강(사람사랑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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