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빨갱이 대통령 루즈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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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빨갱이 대통령 루즈벨트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7.01.0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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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과 격조있는 지도자를 만들어 보자.

 

"저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는 수백만 가정을 봅니다. 재앙의 장막이 매일 그들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처한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줄 교육과 자신의 여가를 얻지 못하고 있는 수백만 가정을 봅니다. 농산물과 공산품을 살 수 없고, 가난 때문에 노동과 생산을 할 수 없는 수백만 가정을 봅니다. 국민의 3분의 1이 형편없는 의식주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봅니다."

대통령은 4년이나 집권했는데도 크게 나아지지 않은 경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수없이 많은 위원회와 개혁입법을 통해 경제부흥을 꾀하고, 급조된 기구를 통해 일자리창출에 나서고, 빈민 구제에 노력했지만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대통령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갔다. 보수적인 대법원은 번번이 개혁입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려 발목을 잡았고, 소득세를 누진적으로 물리자 부자들의 반발은 물론 전통적인 자유주의 진영의 지지층까지 돌아섰다.

그러나 대통령은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호소한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오직 두려움뿐입니다.'

대통령은 진정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정이 좋아지지 않자 대통령 직속인 재벌개혁위원회를 설치했다. 6개월 동안 치열한 논의를 거쳐 세금으로 재벌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제가 파탄지경 임에도 자본과 전쟁을 했다.

저항은 거셌지만 부자들에 대한 조세를 강화했다. 대통령은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보살피지 않는 부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경제의 어려움이 생겼다고 보았다.

부자에게서 세금을 걷어 국가부흥계획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하고자 했다. 기본적인 형태의 누진적 소득세였지만 부자들의 반감은 거칠게 사나웠다.

일부 기업들은 계열사 구조를 단순화한 후에는 배당을 하지 않아 대통령의 정책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대통령은 집요했다. 배당을 하지 않고 내부에 유보하는 이익에 대해 중과세하는 법안을 마련할 정도였다.

이 법안은 지나치게 기업의 의사결정을 규제한다는 비판 때문에 곧 폐지되었지만, 기업의 불법적 행위를 용납 않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충분히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우리 정치 잣대로 본다면 이런 대통령은 분명 빨갱이다. 이 빨갱이 대통령은? 바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은 루즈벨트 대통령이다.

루즈벨트의 조세를 통한 재벌해체 정책은 큰 효과를 거두었다. 당시 미국의 기업집단은 현재 우리나라의 삼성그룹만큼 복잡한 피라미드식 형태를 띠고 있었다. 루즈벨트는 계열사 배당금에 대한 차등과세로 많은 기업의 출자를 해소하도록 유도했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이 법 때문에 미국에는 한국의 재벌과 같은 복잡한 구조를 가진 기업을 찾아볼 수 없다.

요즈음 한국 정치인들의 기준에서 보면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본에게 전쟁을 선언하는 행위는 정치적 자살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압도적 지지로 재선한다. 그 뒤 3선, 4선에도 성공하여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루즈벨트의 합리성을 선택했다. 재선 후 루즈벨트는 위헌 판결로 경제부흥 정책을 방해했던 대법원의 구조를 바꾸려고 했으나, 이것이 3권 분립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여론이 반발했다.

이를 보면 미국인들이 분별력을 갖고 루즈벨트를 지지했음을 알 수 있다. 파시즘과 공산주의와 대치하면서 대공황의 고통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원했던 것이고, 루즈벨트는 그 길을 제시한 것이다.

부유한 집안 출신인 루즈벨트는 부자를 비난하는 대신 부자들에게 역할을 요구했다. 국민 다수가 구매력을 회복하지 못하면 부자들이 돈을 벌 기회도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반 서민의 입장에서 서민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한 대통령을 미국인들은 사랑했던 것이다.

그래도 미국이 강한 것은 루즈벨트의 합리성을 선택한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 최고의 갑부들이 부시의 상속세 인하를 미국의 가치에 어긋난다며 적극 반대하고 어마한 재산 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는 모습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지도자란 국민의 열망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참여정부를 이 시점에서 보면 스스로 합리적이라기 보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정부라고 평가하고 싶다.

신자유주의를 줄기차게 신봉하며 좌파라고 불러달라고 한 것은 차라리 코미디 한편이다.

요란한 정치적 수사 보다 확고한 의지와 실천력을 가진, 오기와 독선이 아닌 국민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순전히 국민의 몫이다.

올해는 혜안을 지닌, 격조있는 빨갱이 대통령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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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홍 2007-01-02 14:13:31
새해 벽두부터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정말 올해 대선에서 국민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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