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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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하면서
  • 송필경
  • 승인 2020.11.11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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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송필경 논설위원
『왜 전태일인가』 첵표지(일부분).
『왜 전태일인가』 첵표지(일부분).

2001년, 나는 베트남진료단 일원으로 베트남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현지에서 본 우리가 저지른 학살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그 참상은 우리가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진실이었습니다.

내가 만난 것은 그뿐아니었습니다.
혹독한 전쟁을 직접 겪은 증언을 말씀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베트남 참전 군인으로 베트남에서 최고문인으로 추앙받는 탄 타오 시인이었습니다.

시인은 주옥같은 말씀을 하시고 난 뒤 마지막에 우리 진료단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증오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랑만이 남은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이제 당신과 나의 몫이 아닌가?"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자고 다정히 속삭이는 시인의 말씀은 마치 사자후처럼 내 심장에 벼락처럼 꽂혔습니다. 그 혼의 울림에서 나는 역사의 과오와 화해할 길을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윤리와 만나야 한다!”
구수정 선생이 통역한 시인의 증언 강연 녹취를 귀국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시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실한 만큼 품위가 있었고, 격조가 높았습니다.

나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고 복학한 셋째 형과 같은 대학교에 다니며 자취 생활을 2년 했습니다. 형에게 베트남전쟁에 들은 바가 많았습니다.

우리 진료단 대부분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그 이후 출생했습니다.
나는 형의 이야기와 베트남전쟁에 관련된 책과 자료를 모아 후배들에게 참고할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면서 내 나름대로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글쓰기 공부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끈하거나 수사학적인 재능이 능한 글을 쓸 재간은 없습니다. 하지만 탄 타오 시인 말씀 같은 진실한 글을 쓰고 싶어 많이 생각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동안 후배에게 보여줄 『제국주의 야만에 저항한 베트남전쟁』과 『나는 지난 밤 평화를 꿈 꾸었네』란 자료집을 내었습니다. 2013년에 『왜 호찌민인가』를 정식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베트남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베트남어로 번역돼 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8년 쿠바 의료에 관해 알기 위해 쿠바를 방문했습니다. 쿠바에서 체 게바라의 혁명 체취를 느끼고 『왜 체 게바라인가』 원고를 2년여에 걸쳐 썼습니다.

『왜 전태일인가』 책 뒷면 표지.
『왜 전태일인가』 책 뒷면 표지.

이번에는 『왜 전태일인가』를 출간했습니다.
4개월 동안 전태일에 관한 자료를 모아 읽고 나서 6개월 동안 책을 썼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읽으며 정리할 때마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착함(선)의 씨앗을 이렇게 많이 뿌려놓으셨을까…

누구보다 거친 환경에 살면서도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사회를 바라보는
지혜와 통찰은 어쩌면 그렇게 크고 깊을 수가 있을까…

그 분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들이 눈을 감을 때까지 도저히 잊지 못할 사랑을 주셨을까…

어린 여성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결단에 이르러서는 종교적인 숭고함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아름답고 숭고한 전태일 정신을 내 글 솜씨로 세상에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나는 전태일을 이렇게 본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글 가운데 내 판단이 부족하거나 어설프거나 잘못된 부분은 앞으로 여러분에게 질책을 받아, 나 자신이 이 사회에서 더욱 성숙하게 살아가는 발판으로 삼겠습니다.
내 허점에 많은 충고와 도움을 기다리겠습니다.

베트남진료에 결정적 도움을 주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전태일의 친구들’이 추진한 ‘전태일 살던 집’을 매입하는데 도움을 주신 건치 선생님들,
전태일을 기억하는 모든 건치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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