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의료정책 맞선 연대 확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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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의료정책 맞선 연대 확장 필요
  • 전진한
  • 승인 2020.12.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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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의협 전진한 정책국장…신자유주의적 의료 정책과 사회 불평등에 맞선 보건의료인의 더 넓은 연대가 필요하다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상황은 신자유주의의 모순, 불평등과 빈곤, 취약한 사회안전망, 공공의료기관과 의료인력 부족 문제를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이하 사의련)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한다’에서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회(이하 민의련) 야마다 히데키 부회장은 주장했다. 그가 설명한 일본사회 문제는 몇몇 수치들만 달랐을 뿐, 한국사회가 노정하는 현실과 거의 유사했다.

한국과 일본은 비교적 방역에 성공한 것으로 여겨지다가 최근 방역상황이 가장 나빠지며 위기를 맞고 있다는 공통점도 보이는 나라들이다. 한국은 최근 하루 500여명의 확진자가 나오며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일본도 최근 2천 명 이상 역대 최고 확진자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최근 방역 위기(출처=ourworldindata.org)
한국과 일본의 최근 방역 위기(출처=ourworldindata.org)

환자 수 증가가 병상 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양국이 직면한 가장 직접적 위협일 것이다. 일본의사회 회장은 지난 25일 '전국 각지에서 의료체계가 붕괴위기에 직면했다'면서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수치와 달리 병상이 만상이 상태'라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도 최근 "의료체계는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발표했지만, 반대로 국립중앙의료원과 대한감염학회는 "약 일주일 후 병상이 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나라 모두 코로나 대비 병상 확보 미흡으로 위기를 초래하고 있으면서도 심각성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일일 확진자가 유럽처럼 수만에 이르는 나라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환자 증가로 빠르게 병상포화를 겪는다는 것은 의료체계가 취약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의료가 무너진 것은 공공병원을 축소하면서 민간병원 의존을 높여왔기 때문이다. 일본정부는 지난해 9월 전체 공립병원의 무려 29.1%에 달하는 424개 공립병원 통합재편 안을 발표했다고 한다. 올해 7월 코로나 환자를 치료한 637개 공립병원 중 72개가 이 통폐합 대상 명단에 올라 있다. 공공병원이 위축되면서 감염병 치료병상도 감소했다. 감염병 치료병상이 1996년 9,060병상에서 2018년 1,882병상으로 겨우 20%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일본 감염병 치료병상 감소(출처=민의련 발표자료)
일본 감염병 치료병상 감소(출처=민의련 발표자료)

 

이런 현실에서 일본 공공병원은 기관 수 기준 16%에 불과하지만 코로나19 환자의 70%를 공공병원이 치료하고 있다. 한국에서 병상 수 기준 10% 미만의 공공병원이 80%의 환자를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민의련에 따르면 일본 민간의료기관은 감염병 전담 치료병상이 없다. 민간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려면 일반 ICU나 병동 전체를 비워야 하는데 이로 인한 수익감소를 우려해 병상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윤추구가 제1 목적인 민간병원이 병상을 내놓지 않아 정부가 병상 확보에 실패하는 일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에서 지난 30년간 보건소가 통폐합된 것은 일본 공공보건의료 붕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전국보건소장회'에 따르면 1999년 840여개에 달하던 보건소는 2018년 480여개가 됐다. 37.5도 이상의 고열이 4일 연속으로 발생해야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황당한 기준의 PCR 검사 기준이 유지됐던 것은 일본에서 코로나19 검사의 약 70% 이뤄지는 보건소의 절대 숫자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보건소 수 변화 추이 (출처=일본 전국보건소장회 홈페이지 캡처)
일본 보건소 수 변화 추이 (출처=일본 전국보건소장회 홈페이지 캡처)

코로나19 치료를 담당할 공공의료인력 부족문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보건소 10개 중 하나는 1명의 의사가 2개 보건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의사 수 증원이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는데 일본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4명으로 한국(2.3명)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병상 당 활동 간호사도 일본과 한국이 각각 0.7명과 0.3명으로 OECD 평균 1.6명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민간중심 의료체계에서 인력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공공 의료인력을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공공의료를 위축시켜 위기를 초래해온 한국과 일본 정부는 그간 일시적 방역성공에 취해 자화자찬만 해왔다. 하지만 이 방역성공은 각국 국민들의 희생 위에 이룩된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위기대응을 위한 병상준비도, 거리두기 지속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정책도 내놓지 않고 개인 책임전가와 처벌강화에 의존해왔다. 시민들이 감염 자체보다 개인정보 신상털이와 비난과 처벌을 더 두려워한다는 점은 한국에서 방역성공의 주요 동력이 돼왔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어온 듯하다. 일본은 '감염은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라고 한다. 일본정부는 아베노마스크로 대표되는 무능한 정책으로 일관했을 뿐이지만 통제된 사회적 분위기 속 일본 국민 개인의 방역수칙 준수에 의존해 아슬아슬한 방역성공을 해왔다.

결국 이런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최근 방역 2단계로 상향했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서민들의 삶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탓이 클 것이다. 일본도 휴업노동자가 전년대비 274만명 증가하고 생활보호 신청자가 전년대비 25% 증가하는 등 심각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8월 자살자가 전년 대비 22.3% 증가했는데 주로 여성과 젊은층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 역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불평등과 빈곤을 방치한 채 방역수칙만 준수하라는 위험의 개인화 전략이 계속해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 위기에 공공병원 확충 예산 ‘0원’인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코로나 위기에 공공병원 확충 예산 ‘0원’인 정부를 규탄하는 시민사회단체

코로나19 위기는 생물학적 위기가 아니라 사회가 낳은 위기다. 민의련이 소개한 일본의 상황은 이러한 사실을 여지없이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였다. 이런 위기 속 사회적 의료기관으로서 민의련은 코로나19 환자진료에 앞장서고, 빈곤층을 무료·저액 진료하고, 제대로 된 사회정책을 촉구하는 한편,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한 운동의 진척을 모색하고 있다. 사의련·인의협이 걷고자 하는 길을 먼발치에서 함께 걷고 있었다.

공공병상 비중이 일본(27.2%)에 비해서도 크게 적은 한국은 비록 일본처럼 대규모의 직접적 공공의료 감축까지는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의 방치가 이어지고 있다. 내년도 공공병원 확충 예산 0원인 현실에 분노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정부는 차갑게 외면하고 있다. '아프면 3~4일 쉬라'면서도 상병수당과 유급병가를 도입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노동자 보호나 돌봄 대책, 충분한 보편적 재난지원 대책이 없거나 극히 부족하다. 

이런 일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며, 이를 변화시키기 위한 보건의료인의 국제적 연대와 부문을 넘어선 강한 연대운동이 필요하다. 이번 공동학술대회는 이런 과제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본 기고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전진한 (인의협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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