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과 기본소득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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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과 기본소득보장
  • 송필경
  • 승인 2021.02.1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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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1955년에 태어난 나는 돌이켜 보니, 사회가 어수선했다는 1961년 5.16 쿠데타부터 기억이 남아있다. 1960년대의 삶은 지금 생각해보면 딴 세상이었다. 

꼭지를 틀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물은 목욕탕에 가서야 구경할 수 있었지, 보일러 시설이 없었던 집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었다. 아침에 세수하려면 큰 대야의 물을 연탄 아궁이에 밤새 데워 식구 여러 명이 조금씩 사용하며 겨우 얼굴만 씻었을 뿐이었다. 여름 빼고 봄, 가을, 겨울에 집에서 샤워를 할 수 없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당시에는 뭔지를 몰랐다. 집 본채와 떨어진 구석에 있던,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았던 재래식 뒷간은 추운 겨울에 가기에는 몹시 힘든 일이었다. 뒷간이 다 차면 똥지게꾼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고 퍼갔다. 웬만한 동네에서 어제는 저 집, 오늘은 이 집 뒷간을 비우다 보면 그 냄새가 진동하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하루 두 끼 식사가 흔했다. 쇠고깃국은 1년에 한두 번 구경할 정도였고, 달걀후라이는 호화 반찬이었고, 흰 쌀밥은 제사 때나 먹는 식사였다. 멀건 콩나물국에 신 김치를 조금 넣어 죽을 만들거나 수제비를 넣은 것이 다반사였다. 1963년 희한하면서도 값싼 라면이 등장하면서 허기를 어느 정도 달랬던 기억이 난다.

가정집에 보일러가 들어오고, 수세식 화장실로 서서히 바뀐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였다. 혼식이 법으로 강제돼 아무리 돈 많은 집 학생이라도 도시락에 흰 쌀밥만 싸 오는 것을 금지, 반드시 보리를 섞은 혼식이라야 했다. 1970년대 후반에 가서야 이 강제가 풀렸다. 그때까지는 대부분 가난했고, 있는 집이라도 겉으로는 가난한 척했어야 했다.

지난달 30일 ‘기본소득대경포럼’에서 마련한 특별강연회는 줌을 이용한 온라인 강좌로 열렸다. ‘기본소득의 역사와 정책’을 주제로 진행한 대구가톨릭대학교 전강수 교수의 강의였다.

전 교수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등장한 주요한 배경을 ‘불평등 심화’로 꼽았다. 아래의 ‘소득 상위 10% 소득집중도의 추이’라는 강의 도표를 보면, 지난 1958년도에는 상위 10%의 소득이 15%였다. 골고루 못살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중반에는 상위 10% 소득이 20% 정도였다.

소득 상위 10% 소득집중도 추이
소득 상위 10% 소득집중도 추이

다시 말해 가난이라는 고통을 대부분 국민이 같이 느꼈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서로에게 소외감이나 위화감, 또는 박탈감이나 우월감을 가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도표에서 지난 2018년 ‘상위 10% 소득’은 50%에 달했다. 인터넷에서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상위 1% 소득이 전체 소득의 11%를 차지했고, 상위 0.1%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4.1%에 달했다고 한다. 이는 1천 명 중 1명의 소득이 나머지 999명의 평균 소득보다 무려 40배나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60년간 한국은 당시 끔찍이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일원으로 양적 팽창을 했다. 위 자료들을 보면 그동안 경제의 양적 성장도 놀랍지만, 그에 따른 경제의 불평등은 더 놀랍게 심화했다.

새파란 젊은이가 수억 내지 수십억하는 자동차로 거리를 질주하는 모습이 흔하지만, 같은 또래 젊은이가 지하철역에서 공사하다가 또는 발전소 컴컴한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몸이 짓이겨 지거나 머리와 몸채가 분리되는 죽음을 맞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 처참하게 죽은 젊은이가 남긴 가방에 컵라면이 들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은 현재의 불안을 보면서 자신이 경험한 과거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어렸을 적 내 기억에는 모두가 적게 가졌지만 ‘돈을 향한 희망’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지금은 돈이 풍족하게 넘치지만 그 돈을 상위 10%가 독점하고 있으니,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돈에 따른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헬조선’이라는 자괴감에 휩싸여 있다고 나는 본다.

그러니 2천 5백여 년 전 공자의 말씀이 떠오른다.

“적게 가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공평하게 가지지 못함을 두려워하라.
평등이 가난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어린 손녀 둘이 있는 나는 손녀들이 훅 자랄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 앞으로 내 노후를 지탱해줄 사람은 지금의 젊은이들이다.

그 젊은이들에게 ‘돈에 의한 공포’라는 ‘헬조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주는 게 아직 본격적인 노후에 접어들지 않은 내가 할 일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기본소득보장’이란 정책에 나는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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