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철학과 사회학의 연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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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철학과 사회학의 연장선"
  • 전민용
  • 승인 2021.02.1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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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시즌 2-2] 치과의사 출신, 단국대학교 건축학부 정태종 조교수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나와 치아교정을 주로 하는 치과의사로 평탄하게 살다가 남들보다 15년 늦게 건축 공부에 뛰어든 이가 있다. 한국에서 건축 공부를 하다 미국 사이악과 네델란드 델프트 공대에서 유학 후 건축 사무실을 하며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도 하더니 지금은 단국대 건축과 (조)교수와 건축으로 먹고 살고 있다. 최근에 『도시의 깊이』라는 건축에 대한 대중서도 냈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 정태종의 삶의 궤적과 인생관이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청했다. 

-전민용

 

정태종 교수
정태종 교수

- 치과의사와 건축, 뭔가 잘 연결이 안된다. 건축은 공학보다 예술에 가깝다고 보이는데 언제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나?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그림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핸드 드로잉은 나름 하지만 미술적 재능이 있는 거 같진 않다. 건축은 재능보다는 훈련이 필요한 직업이기도 하다. 음악은 고2 때 친구를 통해 라디오 음악방송을 들으며 음악에 대해 눈을 떴고 대학 시절 계속 클래식을 들었다.

네덜란드에서 건축 공부할 때 친구와 로테르담에서 자취를 했다. 기차 타러 지나는 길에 연주회장이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들이 와서 하는 공연인데도 학생은 2~3유로만 내면 됐다. 거의 매일 들르곤 했는데 학생은 거의 없었다. 오페라도 좋아해서 더 잘 감상하기 위해 기초적인 이태리어를 배우기도 했다. 말은 못하지만 이해할 정도는 된다. 건축은 이런 예술과 다른 한편으로 철학과 사회학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다.

- 『도시의 깊이』, 이 책을 읽으면서 도시, 건축, 예술, 철학, 여행, 인생이라는 키워드들로 요약이 되는 것 같았다. 하나씩 얘기를 나눠보자.
도시와 건축 얘기부터 풀어가 보자.

사실 내 전공은 건축 중에서 건축설계이고, 박사 논문은 그 부분에서도 건축계획 쪽이다. 특히 공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시각화하는 것인데 어떤 공간에 사람들이 잘 가고, 어디에는 안가고, 넓은 중앙 통로 놔두고 왜 구석으로 다니는지 등 공간구성의 원리나 문제를 분석해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이런 디테일한 공간구성을 모으면 건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되고, 하나하나의 건축이 모여 도시가 된다. 계획적인 신도시가 아니라면 건축이 모여서 마을,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쓸 때 출판사에서 요구한 것이 현대 건축 이야기를 잘 엮어서 도시의 관점까지 같이 넣었으면 했다. 건축이 모여 도시가 되듯이 이 책이 하나의 도시인 것처럼 구성하려고 했다.

- 건축이 독특한 것은 공학이면서 예술이라는 점일 것이다. 

강조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는데, 병원이나 공동 주택 같은 곳은 매우 기능적이라 엔지니어링이 강조된다. 미술관 같은 곳은 공간 자체를 통해 사람들이 체험하고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아트 쪽이 더 강조된다.

나라마다 보는 관점이 달라서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아트라고 생각한다. 아트스쿨, 디자인 스쿨에 아트도 있고 건축, 도시, 조경, 인테리어 등이 함께 있다. 유럽은 공과대학에 건축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로 구분돼 있지만, 아직도 공과대학에 많다. 나라마다 다르다.

- 예술이라고 보면 자격증이 있는 예술은 건축이 유일하지 않은가?

자격증이란 개념이, 제 박사논문에서도 다뤘는데, 건축사와 건축가란 개념이다. 
예전에는 화가처럼 건축가가 디자인하고 설계해서 건축주나 사람들이 좋아하면 건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안전이나 환경의 문제도 있고 해서 행정적으로 정부에서 규제를 하고, 건축법에 따라 문제가 있으면 책임져야 해서 ‘건축사’가 생겼다. 건축사라는 전문가와 건축가라는 예술가 두 개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젊은 층은 대부분 건축사를 한다. 그래야 건축설계를 하니까. 사회적으로 자리잡은 기성 건축가는 설계 디자인을하고 건축허가 등 건축행정은 건축사가 한다. 1~2세대 파워가 워낙 커서 건축사협회보다 건축가협회 영향력이 더 크다. 하지만 추세는 건축사로 옮겨가고 있다. 

- 책에서 현대 건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현상학적인 공간’ 같은 철학적인 표현들이 많은데, 철학과 건축을 접목하는 것이 현재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원래 포스트모더니즘도 건축에서부터 나왔다고 들었다.

현상학적이라는 게 빛이나 수공간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느낌을 주는지 같은 것인데 이런 현상학적 요소들을 많이 쓰는 안도 다다오나 스티븐홀 등을 공부하다보면 그 바탕에 깔린 철학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이 지금의 사회나 건축주가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적절하게 수용해서 디자인하는 것도 있지만 큰 틀에서 변화하고 있는 인간사회에 대한 철학적, 사회학적인 이론들이 당대의 전반적인 사회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근거이므로 건축이 이들 이론에 민감하게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고딕, 중세, 르네상스 등의 시대는 건축 중심으로 헤게모니를 만들어 냈던 시대다. 성당은 외형과 내부 성화나 장식들을 통해 권력의 공간으로 나타났고 사회시스템의 근간이 됐다. 근대로 오면서 건축이 그런 역할은 못하게 됐지만 헤게모니를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철학 이론의 건축화라는 개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프랑스 현대철학의 구조주의다. 1968년 이후 사회시스템에 많은 영향을 줬고 건축에도 큰 흐름으로 나타났다. 구조주의 경향은 1980~90년 대로 가면서 한계를 나타냈고, 사람들의 느낌과 체험을 중요시하는 현상학적 디자인이 등장했다. 요즘은 현상학적, 복잡계 건축이 대세다. 사람들도 좋아한다. 분위기 있고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주니까. 

- 책 초반부에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얘기가 인상적이다. 사실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구조주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으로 푸코는 후기구조주의자로 더 알려져 있다. 책 중반부에 폴드, 리좀, 잠재성 같은 들뢰즈의 개념들도 언급하던데 정작 들뢰즈를 얘기하지는 않더라.

푸코는 자신이 구조주의는 아니라고 하지만 방법론적으로 보면 초기에 구조주의적인 것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우린 철학 전공자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을 건축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용했는가를 공부한다. 푸코는 ‘말과 사물’ 이후로는 본인의 방법론으로 한다고 이야기하고, 계보학, 고고학 같은 자기만의 방법을 강조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푸코를 후기 구조주의로 분류하기도 한다.

사실 현대 건축은 들뢰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현대미술도 영향을 많이 받았고, 리좀, 잠재성, 주름 등 모두 들뢰즈에서 왔다. 이런 이야기를 자세히 하면 너무 무거워서,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출판사의 요구였다. 나름 쉽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그래도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전민용
전민용

- 좋아서 시작하지만 직업으로 하게 되면 재미라던지 즐거움이 반감되는 경우도 많다. 자신이 생각하는 건축과 치과 분야의 장단점도 알려달라. 

건축을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몰라도 건축을 어느 정도 잘 안다하는 단계까지 시간이 걸렸다. 
어려운 점은 스케일이 크고 혼자서 컨트롤 못한다는 것이다. 치과의사는 검사, 진단, 치료까지  스케일은 작지만 전체를 컨트롤 한다면, 건축은 내가 설계해도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다르게 간다. 규모가 커질수록 여러 조건들이 달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붙어 이해충돌을 겪는다. 디자인하는 일 보다 이런 걸 매니지먼트하는 일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요즘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으로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있다.

현재 개인적으로는 치과보다 건축에 집중하고 있다. 건축 공부 처음엔 앞으로 치과는 안할거야 했는데, 건축하면서 치과도 좋다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치과가 좋은 점도 확실히 있는 것 같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라가는 건 어느 분야나 힘들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치과가 건축보다 조금 수월했다. 치아교정 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 레벨로 올라가니까 환자들을 유형으로 분류 가능해지면서 치료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반면 공간의 제약이나 고정된 출퇴근이나 반복적인 일상 등은 단점이다. 
건축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건축가는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외국 프로젝트를 하면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그게 건축의 장점이다. 

- 쿠마 켄고 등의 책을 보면 전반적으로 건축 사무소들의 유지가 매우 어렵다. 명망이 있음에도 공모전에 계속 참여해야 하고, 세계 각지를 돌아다녀야 하고, 사무소 유지를 위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건축시장은 어떤가?

한국은 매우 치열하다. 건축하는 사람들은 치과의사를 부러워한다. 생존 경쟁이 심하다.
치과의사, 의사라는 전문가나 건축가, 건축사는 사회 속에서 비슷한 집단 생리가 있는 것 같다. 내부 구성원들이 적절하게 전체 파이를 나눠가져야 한다. 건축사로 만들어 놓고 파이를 주지 않으면 이 사람은 건축사란 집단을 상대로 파이를 빼앗는 상황이 된다. 치과의사끼리 저가로 환자 유인하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은 파이를 키우거나, 잘 나누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것이 잘 안된다. 

우리나라 건축가의 70~80%는 살기 힘드니까 공유오피스하고, 프로젝트 베이스로 협업하거나 한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대형 건축사는 큰 기업수준인데 이런 불평등에 의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일본도 힘들다고 하지만 오사카 쪽에 프로젝트 기회가 있어서 왔다갔다 했는데, 설계비가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건축가나 건축사 등 설계자들을 잘 모른다. 건축물에도 이름을 안 넣는 경우도 많다. 30~40대 젊은 건축사들의 좋은 작품들도 많다. 앞으로 이런 것들도 소개해주고 싶다.

-직접 디자인한 작품들이 있나? 

파주에 작은 것 하나 있고, 설계에 같이 참여한 것 등은 있지만 내 작품이라고 할 만한 건축은 아직 없다. 설계하고 공사한 것도 있지만 건축주 등의 사정에 의해 디자인과 다르게 완공돼서 내가 디자인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도 몇 개 있다. 몇 해 전부터 건축주들이 내 디자인을 이해해주고 진행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올해부터는 1년에 한두 개 나올 것 같다.

- 책에 보면 건축 여행을 많이 다녔다. 미국보다는 유럽이나 다른 곳이 많다.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하면서 주로 주말에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때 찍은 사진들이다. 미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대부분 잃어버렸고 내가 찍은 사진들만 쓴다는 원칙에 따라 유럽을 중심으로 책을 썼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로 프로젝트 하면서 비즈니스와 연결해서 여행한다. 일본, 대만, 중국 등은 일과 병행한 여행을 많이 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가족과 함께 한다. 여태까지 건축하고, 공부하고 혼자 다녔으니 보상으로 남들이 모르는 좋은 곳에 데려다 달라고 해서 보통 아내와 그렇게 같이 다닌다. 또 한 번 정도는 건축 분야 지인과 학생들과 건축 여행을 간다. 사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는 여행을 안했다. 비행기가 무서워서. 몇 백번 탔는데 이제 혹시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해서. 여행은 15년 이후에 다닌 것이다.

- (웃음) 겁이 많은 것 같다. 추모공간에 가서도 겁에 질려서 허둥지둥 도망쳐 나오고 터키에서는 개에도 물렸다.

겁 많아요. 처음엔 겁 없이 혼자도 다녔는데 지금은 그런 데 못 다닌다. 그동안 여러번 일들을 당했다. 나이 들면서 점점 안전한 여행을 하려고 한다. 

- 일종의 팁으로 가족들과 가기 좋은 여행지 몇 군데 추천한다면?

건축 관련해서는 대만이 좋다. 각 도시마다 가장 최신의 잘 된 디자인들이 많다. 틈 나는대로 가보려고 한다. 그 중에도 카오슝은 부산처럼 남쪽에서 가장 큰 도시다. 타이베이에서 KTX 같은 것을 타고 2시간인데 안전하고, 먹는 것도 좋고, 아트센터같은 좋은 건축물이 많다.

싱가폴은 가족들이랑 편하게 쉬고 놀 수 있는 곳이다. 마리나베이센즈 꼭대기에 있는 인피니트 풀이나 바로 뒤에 있는 식물원도 건축학적으로 좋은 곳이다. 해변도 좋고 곳곳에 좋은 현대 건축물들이 많다. 
스페인도 좋다. 책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스페인 경제가 어려워진 게 현대건축물을 너무 많이 만들어 어려워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가 워낙 유명하지만 다른 현대 건축물들도 많다. 의외로 마드리드는 수도지만 다른 도시에 비하면 볼거리는 없다. 하지만 마드리드를 꼭 가는 것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같은 보고 싶은 미술품들이 있어서다. 저녁때는 공짜라서 6시쯤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구경하다 해 지면 시내를 돌아다닌다. 

- 마무리로 하고 싶은 말은?

도시의 깊이는 같이 세미나하는 사람들, 건축학과 학생들과 많이 이야기했던 것들을 책으로 낸 것이다.
건축이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왜 좋은지’를 말하고 싶었다. 

 

*이번 인터뷰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Zoom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인터뷰 및 기사 작성 : 전민용

녹취록 작성 및 사진 편집 : 안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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