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으로 중대재해법 무력화시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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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으로 중대재해법 무력화시키나?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1.07.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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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오늘(12일) 논평 “정부 시행령 제정안, 입법 취지 후퇴시켜” 규탄
직업성 질병범위 축소‧2인1조 작업 조치 누락‧안전보건 관리 외주화 명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가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통과 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제공=참여연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가 지난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통과 후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제공=참여연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정안(이하 시행령안)」이 법안의 원래 취지를 후퇴시킨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늘(12일) 정부가 시행령안을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내용이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중독 위주로 한정하면서 법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축소하고 ▲2인 1조 작업‧신호수 투입 의무화 누락시키고 ▲안전보건 관리상의 조치를 외부 민간기관에 외주화 여지를 남기는 등 시민사회가 요구한 핵심을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같은 날 참여연대는 논평을 내고 시행령안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을 무력화하려는 정부를 규탄하는 한편, 중대재해처벌법에 노동‧시민사회 의견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여연대는 시행령안에서 제시하는 직업성 질병 기준이 지나치게 협소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더라고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로 규정하는데, 정부는 산재보험법이 규정하는 13개 직업성 질병 중 급성중독 위주의 일부 항목만 적용 대상으로 한정했다”며 “이로 인해 직업성 질병에 대부분을 차지하며, 과로사의 주원인이기도 한 뇌‧심혈관계 질환, 직업성 암, 근골격계 질환 등이 모두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사실상 직업성 질병으로 인한 중대재해 처벌을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즉, 택배 배송 중 과로로 쓰러져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직업성 암에 걸려도 ‘죽지만 않으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 

또 시행령안에 노동시민사회가 강력히 요구해 온 핵심 안전 조치인 ‘2인 1조 작업‧신호수 투입 의무화’ 등이 누락되고,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는 모호한 규정만 담긴 데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참여연대는 “산업현장에서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혼자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2인 1조 근무가 필수이고, 크레인이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거나 차가 지나갈 때 위험신호를 해주는 신호수가 꼭 필요하다”면서 “구의역 김군, 발전소에서 일했던 김용균 님, 평택항에서 일했던 이선호 님 모두 혼자서 작업하다 숨졌는데, 만일 이들이 2인 1조로 일했더라면, 신호수 노동자가 있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극이었다”고 규탄했다.

이어 참여연대는 ‘안전보건 점검 업무를 고용노동부장관이 지정한 민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정부 시행령안은 ‘죽음의 외주화’를 존치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맹비난했다.

참여연대는 “시행령안에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가 반기별로 1회 이상 안전보건과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를 이행했는지 검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안전보건 예산과 인력배치 등을 관리하게끔 규정하면서도, 관리상의 조치를 외부 민간기관에 외주화하는 길을 열어뒀다”면서 “위탁 계약을 맺으면 ‘을’이 되는 민간기관이 ‘갑’인 사업주가 안전보건 관계법령 위반 여부를 철저히 점검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그렇게 되면 민간기관이 ‘갑’의 눈치를 보고 위반사항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거나 위반사항이 없다는 식의 점검보고서를 작성하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해도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있다”며 “산업안전보건법과 관련된 안전보건 관리업무의 외주화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실효성이 떨어졌다고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안전보건 관리의 외주화라는 잘못된 방식을 답습하면 안된다”고 비판했다.

끝으로 참여연대는 “매년 2천 명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는 참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올 초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시행령을 제대로 제정할 차례”라며 “수없이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고 마음 아픈 죽음을 멈춰야 한다는 노동시민사회의 절박한 목소리에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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