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으로 왜곡된 ‘약값’ 공정가격 아냐”
상태바
“독점으로 왜곡된 ‘약값’ 공정가격 아냐”
  • 이인문 기자
  • 승인 2021.08.03 1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세넷 등, 온라인 간담회 ‘의약품 가격과 접근성’ 개최… 국영 제약회사 등 대안 모색
건세넷이 지난달 30일 온라인 간담회 '의약품 접근성과 공정가격'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시민건강연구소 조상근 회원과 경상대 배은영 교수.
건세넷이 지난달 30일 온라인 간담회 '의약품 접근성과 공정가격'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시민건강연구소 조상근 회원과 경상대 배은영 교수.

1회 치료에 5억 원이 넘게 드는 치료제 ‘킴리아’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고, 건강보험 급여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이 치료제를 국가가 혹은 보험자가 급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환자 단체는 이 치료제를 필요로 하는 환자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하루라도 빨리 급여화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18년 등재된 스핀라자주는 공식 가격이 한 바이얼당 92,359,131원이며, 허가된 용법 용량대로 사용할 경우 환자당 첫 해에 554,154,786원, 이듬해부터 매년 277,077,393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치료비용으로만 본다면 1회 치료제로 출시된 킴리아보다 더 비싼 약이라 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다. 1회 치료 비용이 무려 20억에 달하는 더 비싼 약, 척수성 근위축증에 사용하는 졸겐스마도 출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 약들을 급여화 해야 할까? 이 약들의 가격은 공정한가? 어떤 기준으로 이 약들을 평가할 것이며 급여화 한다면 어떤 조건으로 해야만 하는가?

건강세상네트워크(공동대표 현정희 조선남 이하 건세넷)가 지난달 30일 더 나은 의약품생산체제를 위한 시민사회연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국민중건강운동 등의 단체들과 함께 온라인 기획간담회 ‘아파트 값보다 비싼 20억짜리 의약품, 무엇이 공정한 가격인가?’를 개최했다.

건세넷 김재천 운영위원의 사회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주발제자로 나선 경상대학교 약학대학 배은영 교수는 “WHO에 따르면 공정가격은 기업의 연구개발 동기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약을 필요로 하는 개인 혹은 사회가 부담 가능한 가격”이라며 “최근 등장한 초고가 약들은 대부분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환자 수가 적은 경우 연구‧개발 비용 등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실제 그 약을 생산하는데 소요되는 비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설정하는 것이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문제는 개별 약의 연구개발 비용이 공개되지 않아 어디까지가 공정한 가격이고, 어디까지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에서는 요양급여대상 여부를 결정할 때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환자의 비용부담 정도, 사회적 편익 및 건강보험 재정상황 등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효과의 개선 정도와 비용의 증가 정도를 따져 묻는 것이 비용-효과성인데 현재 중증질환에 대해서는 다른 질환에서보다 더 완화된 비용-효과성 판단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가치판단을 필요로 하는 부분으로 이런 류의 판단을 뒷받침할만한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고 강조했다.

약제 급여 결정에 고려하는 가치 요소(출처: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약제 급여 결정에 고려하는 가치 요소(출처: 약제의 요양급여대상여부 등의 평가기준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

아울러 배 교수는 “누군가는 생명이 모든 것의 우선에 있어야 한다고, 절박한 생명 끈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에게 비용을 따져 급여를 거부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고 하지만, 또 누군가는 지금 들어가는 이 비용은 다른 누군가를 살리고 치료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돈으로 고가 신약에 자원이 집중되면서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다른 많은 환자들에게 돌아갈 자원이 줄어들고,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데 소요되는 재정도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결국은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피력했다.

끝으로 배은영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중증질환과 비중증질환, 다수가 앓는 질환과 소수 환자가 앓는 질환, 대체제의 존재 및 환자 연령 등에 어떻게 상대적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공론의 장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용-효과성 문제를 단순히 건강 혹은 생명 대 돈의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배은영 교수
배은영 교수

지정토론자로 나선 시민건강연구소 조상근 회원은 “제약업계는 정부와 사람들에게 신약이 비싼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해 흔히 몇 조에 달하는 개발비용 등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과 함께 ‘약의 효과가 크기 때문에 더 비싸게 팔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생산비용에 기회비용과 같은 실제 지급되지 않은 관념적인 비용을 포함해도 되는 것이지, 또한 기존 약보다 효과가 더 크다는 이유만으로 생산비용과 전혀 상관없는 기존 약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방식이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설파했다.

또한 그는 “의약품 공정가격 논쟁이 불거진 이유는 약값이 비싸기 때문”이라면서 “독점으로 인해 왜곡된 시장에서는 공급자가 최대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가격을 설정할 힘이 생기는 만큼 이러한 힘에서 나오는 불리한 권력관계를 뒤집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조상근 회원은 “의약품 기획과 생산에 관여하지 못하는 주체는 권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정부가 국영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의약품을 기획해 개발 결과물을 공공의 소유로 하거나, 필요에 따라 민간 제약회사를 선별 지원해 완성된 의약품에 대해 공공이 부분적인 소유권을 갖고 협상력을 획득하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며 “특히 코로나19 백신 등의 개발 과정에서 보았듯 서구 사회에서 전형적이지만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공공의 자금으로 개발된 연구 결과물이 민간 소유로 이전되는 경향은 의약품 접근성 차원에서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