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령…안전사고 예방 의무 담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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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시행령…안전사고 예방 의무 담겨야”
  • 안은선 기자
  • 승인 2021.08.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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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네트워크, 오늘(19일) 온라인 기자회견 개최…시행령안 위법 부분 지적‧개선안 개진
지난해 12월 1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계 전문가 공동선언이 국회 앞에서 열렸다. (출처=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사이트)
지난해 12월 1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학계 전문가 공동선언이 국회 앞에서 열렸다. (출처=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사이트)

위험한 노동환경을 방치한 ‘주체’를 처벌하는 것을 취지로 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취지가 무색하게 누더기가 된 채로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국회는 중대재해처벌법 합의안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경영책임자의 책임의무 삭제 ▲발주처의 공기단축의무 요구 금지 삭제 ▲일터 괴롭힘 예방 삭제 ▲형사상 인과관계 추정 삭제 ▲인허가권 행사 공무원 처벌 규정 삭제 ▲법인 처벌 시 매출액 기존 규정 삭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상한 축소, 하한 삭제 등을 밀어붙였다.

아울러 합의안에서는 ▲중대시민재해 관련 공중이용시설과 중대산업재해 관련 직업성 질병자 정의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범위 등을 시행령으로 위임했다. 

이어 정부는 지난 7월 12일 관련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했는데, 그 내용은 ▲직업성 질병의 범위를 급성중독 위주로 한정하면서 법 적용 대상을 과도하게 축소하고 ▲2인 1조 작업‧신호수 투입 의무화 누락시키고 ▲안전보건 관리상의 조치를 외부 민간기관에 외주화 가능성을 열어 놓는 등 중대재해처벌법의 본래 취지와 시민사회의 요구에서 한참 벗어난 내용으로 채워져 논란이 됐다.

이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과정에 참여했던 여러 학술‧전문가 단체들은 “예방할 수 잇는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국민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며 ‘중대재해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네트워크(준) (공동대표 권영국 김현주 신희주 이하 중대재해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이들은 지난 7월 4일부터 8월 4일까지 5차례에 걸쳐 시행령안이 입법 취지에 맞게 제정될 수 있도록 각계 전문의 의견을 취합하고, 그 개선안을 정부에 제출하는 한편, 오늘(19일) 온라인 기자회견을 통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살인법까지 명시하는 게 명확성 원칙 아냐”

먼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천지선 변호사는 이 시행령안이 명확성의 원칙을 과도하게 요구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과 취지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시행령안은 사실상 재계의 요구에 따라 통상 형사법에서 통용되는 명확성 원칙 법리 이상의 과도한 명확성을 요구한다”며 “명확성 원칙은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명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법 문언이 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해 그 의미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해석이 해석자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없으면 명확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는 헌재 판결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재계는 이에 반해 이번 시행령안에서 과도한 명확성 원칙을 요구하는데, 이는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해야 살인죄로 처벌받는지를 더 자세하고 명확하게 규정하라는 것과 같다”며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 위반 소지가 있고 위헌, 위법이며 오히려 중대산업재해 책임자 처벌 범위를 산업안전 보건법 위반 혹은 그 이하로 좁혀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과 범위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직업성 질병과 ‘안전확보의무 위반’ 간 인과관계 따져야

작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중대재해네트워크 김현주 공동대표는 시행령안에서 중대산업재해 질병 범위를 급성 중독만 인정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고용노동부는 인과관계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일부 급성 중독만 중대산업재해로 인정한다고 하는데, 이 법에서 검토할 인과관계는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직업성 질병과 사업주의 안전확보의무 위반 사이의 인과관계”라며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는 이미 산재보상법에 있다”고 짚었다.

또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직업성 질병이 포함되면 산재보상이 위축된다는 우려에 대해 “이미 직업성 질병은 사망의 경우 중대재해이며, 이번 시행령안에서 직업성 질병의 포함여부를 정하는 게 아니다”라며 “산재보상 위축 걱정은 현재 산재보상시스템의 공정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공동대표는 사업주의 산재은폐 등 부작용 우려에 대해서는 일부 긍정하면서도 “산재은폐는 우리가 해결할 과제이지 용인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직업성 질병에 대해 사업주에게 책임을 묻는 게 과도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김 공동대표는 “직업성 질병이 발생했다고 해서 모든 사업주가 처벌받는 게 아니고, 일년에 해당 사업체에서 일년에 3명 이상 동일한 직업병이 발생할 경우로 한정돼 있는 등 발생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며 “2014년의 경우 9개소가 처벌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직업성 암, 직장 내 괴롭힘, 산재사고 트라우마 등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사업주가 안전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입증돼야 처벌받는다”며 “여기서 안전의무란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근로조건 확보, 청년노동자 7명이 실명했던 메탄올 중독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한 화학물질 안전 관리, 폭염에 노동자들을 고강도 업무로 내몰지 않는 것 등이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예방가능한 문제를 방치하는 것에 대해 최대 징역 7년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과도한 것이냐?”면서 “직업병은 중대재해가 아니라는 인식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이윤근 소장도 ‘급성중독’을 24개 항목으로 제한한 시행령 제2조의 별표1 역시 공정한 법 집행 취지에 어긋난다며 이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시민건강연구소 김창엽 소장은 “시행령안은 안전보건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을 제외했는데, 이는 노동자의 건강 문제가 개인의 책임이라는 과거 패러다임으로 후퇴한 것”이라며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며, 직장내 괴롭힘 등 정신건강 문제를 포함해 위험한 노동환경 예방 조치를 경영책임자의 의무에 포함하도록 안전보건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을 포함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와 더불어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최정학 교수는 시행령 제4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에 관한 조치’에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의 내용이 누락된 것을 지적했으며, 손익찬 변호사는 경영책임자가 점검 위탁을 할 수 있다는 시행령 제5조 2항은 삭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민주노동연구원 이승우 연구원은 사업장 내 안전조치 의무뿐 아니라, 공중 교통 수단 관련 ‘안전 거버넌스’를 제도화해 사회적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안전관리 지침에는 노동자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구성‧운영토록 규정하고 있고 이미 구미 선진국에서는 철도 등 공중 교통 수단에 노조와 시민이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제도화 했다”며 “공중 교통 수단의 안전 계획 수립, 점검, 사고 조사, 대책 마련 등에 시민의 참여를 반드시 제도화하면 사업주와 관리자만으로는 불가능한 사전 예방적 안전관리체계 정착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공동대표는 대정부 호소문을 낭독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라는 촛불운동의 정신은 더 이상의 세월호 참사, 구의역 산재 사망사건이 한국사회에서 되풀이 돼서는 안된다는 국민들의 염원”이라며 “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중대재해처벌법을 더는 후퇴시키지 말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지켜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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