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산업구강보건 전문가입니다!
상태바
당신은 산업구강보건 전문가입니다!
  • 이흥수
  • 승인 2021.08.26 16: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⑨]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흥수 감사

본지는 구강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연구하고, 노동자의 구강건강 향상을 위해 활동해 온 한국산업구강보건원(이사장 전성원 이하 산구원)과 공동기획으로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을 지난 2016년 8월부터 연재해왔다. 산구원 제9대 전성원 이사장 체제를 맞아 본지는 '소곤소곤 산업구강보건' 연재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편집자

와인바 종사자가 알코올 중독증 판정을 받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와인바 종사자가 알코올 중독증 판정을 받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와인바에서 바텐더를 하는 한 노동자가 알코올 중독증으로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 노동자의 알코올 중독증은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이 평소 술을 좋아했다면 어떨까요? 알코올 중독증은 술집 종업원에서만 생기는 병이 아니므로 직업관련 질병이 아닐까요?

만약 이 알코올 중독증이 술집에서 종사하는 노동자 10명 중 5명에서 확인된다면, 이때는 어떻게 될까요?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요? 법정 소송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사실 이 경우에는 직업관련 질병이 맞습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고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 직업병 인정 기준이 배타적이어서 연관 관계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노동자의 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사건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했던 다른 노동자에서도 종양이 많았음에도 역학 조사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산재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11년의 지난한 투쟁이 이어진 다음에야 삼성의 사과와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직업관련 질환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폐증처럼 직업 혹은 작업환경이 병의 발생의 필요조건인 경우입니다. 이때는 바로 직업병 판정을 받습니다. 직업성 치아부식증도 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직업 혹은 작업환경이 병의 충분한 원인이 되나 필요조건은 아닌 경우입니다. 과도한 작업량이라는지 심한 직업성 스트레스 등이 질병을 유발한 경우입니다. 단순 반복 작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치주병을 유발한다는 보고가 여기에 해당되겠지요.

세 번째 유형은 직업 혹은 작업환경이 병의 발생에는 관계하지 않으나 진행에 관계하는 유형입니다. 유기용제의 남용이라는 사회 환경 하에서 유기용제 취급 노동자는 유기용제로 인한 질병이 악화됩니다. 처음에 언급했던 와인바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알코올 중독증 역시 세 번째 유형의 직업관련 질환일 것입니다. 

왜 이런 장황한 말씀을 드렸을까요? “산업보건은 골치 아파서… 이건 노동부 소관이니 우리가 할 것도 별로 없고…” 구강보건법 제정 당시 산업구강보건 관련 조문에 대한 보건복지부 공무원의 반응입니다. 아마 ‘정체도 알 수 없는 화학물질로 인한 병’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혹시 우리 치과의사 역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알코올 중독이 정체모를 화학물질 알코올로 인해 발생되는 것일까요? 치주병은 수은이나 납 등의 중독으로 인해서 발생되기도 합니다. 화학물질에 기인한 직업병은 참으로 어려운 분야입니다. 특히 구강병과의 연관성을 확인하는 연구가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안타깝게도 산업구강보건하면 ‘매우 복잡하고 전문성이 있는’, 그래서 이 분야를 아는 소수 전문가의 일로만 치부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구강병은 직업관련 질환 유형 중 두 번째와 세 번째가 더 많을 것입니다. 첫 번째 유형에 해당되는 직업성 치아부식증조차도 세 번째 유형인 경우가 많습니다. 식이성 치아부식증이 발생돼 있다면 산을 취급하는 노동자에서는 치아부식증이 악화됩니다.

근무 형태에 따라서도 양대 구강병인 치주병과 치아우식의 발생 정도가 달라집니다. 야간 교대 근무 노동자와 주간 근무 노동자를 비교한 연구들은 야간 교대 근무 노동자에서 치아우식과 치주병이 더 많다는 것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평균현존치아수 역시 야간 교대 근무 노동자가 더 적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야간 교대 근무가 양대 구강병의 유병정도나 위험도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산업구강보건은 결코 소수의 전문가만이 취급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구강보건의 대상은 ‘산업’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우리 이웃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진료하는 많은 사람들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치과의사의 ‘평상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직업이 혹은 작업환경이 우리 이웃, 내 환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의 관심을 기울이면 됩니다. 산을 취급하는 작업장의 사람이라면, 식이 요인이 치아부식증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산성 음식 섭취를 조심하도록 이야기해주면 됩니다.

마모도가 높지 않은 치약, 불소양치용액 사용을 권장한다면 이미 당신은 ‘산업구강보건 전문가’일 것입니다. 직업성 치아부식증인 경우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설명까지 한다면 여러분은 ‘열혈 산업구강보건전문가’ 반열에 오를 것입니다. 치과나 집 인테리어를 할 때, 인테리어 업자가 못이나 핀을 물고 있다면 치아마모증이 생길 수 있다고 다정하게 말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만약 와인바 노동자가 알코올 중독증에 걸렸다면 말해줄 것입니다. 직업성 치아부식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직업적 와인 시음자는 직업성 치아부식증의 고위험군이니까요. 그리고 와인 속에 숨어 있는 노동자의 땀을 맛볼 것입니다. 노동의 가치는 가장 진한 맛입니다.

이흥수(원광대학교 치과대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