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작년 시월 초, 친구가 사는 강릉을 방문했다. 갯내음을 들이마시며 들어선 바닷가에 오밀조밀 해란초가 모여 있었다. 꽃 필 시기도 아니었고 해란초를 찾아 나선 길도 아니었기에 그 만남은 말 그대로 보너스였다.

발밑에서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자그마한 몸체는 폭신한 계란찜 같기도 하고 고소한 팝콘 같기도 한 첫인상 때문에 마냥 즐거웠다.

난초는 아니지만 난초처럼 귀하게 느껴지나보다. 바닷가에서 소금기를 견디며 팍팍한 모래땅에서 이리 환한 꽃을 그리 오랫동안 피워내니 난초에 못지 않은 강단진 모양이다.

7~8월에 꽃이 핀다고 적혀 있으나 봄 가뭄이 심해 꽃들이 몸살을 앓았던 어떤 해는 5월말에도 만났고 작년엔 가을빛 물씬 나는 10월 초에 만났으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줄기가 위로 꼿꼿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옆으로 비스듬하게 자란다. 잎은 은은하게 은빛이 섞여 있어 평범한 초록색이 아니다.

노오란 꽃잎도 특별한데 가운데 주황빛 알맹이는 더욱더 별나 보이고 꽃잎 뒤로 뾰족한 꿀주머니도 인상적이다. 이름하고는 달리 약초들이 많이 모여 있는 현삼과로 분류돼 있다.

남들은 스쳐 지나치는 꽃을, 혼자서 알아보고 담는 그 은밀한 기쁨은 쾌감에 가깝다. 또한 꽃 속에 들어 있는 아름다운 창조주의 솜씨를 나누고 싶어 민망한 결과물이나마 세상에 드러낼 때는 상큼한 긴장감마저 돌기도 한다.

꽃과 꽃사진에 버무려져 있는 시간들은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팍팍하고 건조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생활속 에너지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