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그리고 영화 『자산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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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그리고 영화 『자산어보』
  • 박준영
  • 승인 2021.11.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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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세상읽기- 서른 다섯 번째 이야기

크로스컬처 박준영 대표는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언론과 방송계에서 밥을 먹고 살다가 지금은 역사콘텐츠로 쓰고 말하고 있다. 『나의 한국사 편력기』 와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 등의 책을 냈다. 앞으로 매달 1회 영화나 드라마 속 역사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김훈의 소설 『흑산』은 조선이 기울어지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절정에 이르렀던 신유년(1801)의 신유박해를 그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주여 주여 부를 때 노비들은 부를 수 있는 제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 겨웠다.’

그 시대에 피지배층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는 말이다. 백성들이 기댈 데라고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가르치는 천주님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조가 1880년에 승하하고 ‘세도정치’가 시작됐고 조선 백성의 핍박과 굶주림은 500년 역사에서 가장 극에 달하게 된다.

​황구첨정(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군포를 매겨 세금을 거두었다)과 백골징포(죽은 자에게도 세금을 매겼다) 등은 당시의 대표적인 수탈, 착취의 방법이었다.

정약전과 약종, 약용 3형제는 양반이지만 ‘천주쟁이’였다. 성리학이 학문의 뿌리였지만 새로운 사상을 접하고 수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약종은 하늘을 보고 죽겠다고 해 누워서 참수를 당했고 약전과 약용은 각각 흑산도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영화 『자산어보』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 당시 황사영과 정약종의 이야기로 빠르게 전개되더니 곧이어 정약용의 한시와 편지들로 극 전반의 분위기를 잡는다.

​정약전 역을 맡은 영화배우 설경구는 사극 연기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올해 영화평론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제대로 역에 몰입한 덕이다. 또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시대극 속에서 가거댁 역을 맡은 명품배우 이정은의 연기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순조 1년,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마을에 도착하자 흑산도를 관할하는 관리는 마을사람들에게 다짐을 받는다.

이 곳에서 무료한 삶을 지낸던 정약전은 바다 생물에 매료돼 급기야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창대라는 청년의 도움으로 책을 조금씩 완성해 가는데 영화는 『자산어보』의 서문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 ‘창대’에 가상의 이야기를 덧붙힌 것이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지만 창대의 꿈은 쇠락한 정약전의 곁을 떠나 출세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 급제하면서 나주목사 밑에서 일하게 되나 책에서 보던 ‘관리의 참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임을 깨닫고, 다시 관직을 버리고 흑산도로 돌아오고 만다.

영화는 창대가 『자산어보』보다는 『목민심서』의 삶에 천착하는 태도를 보여주면서 둘의 갈등을 깊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펴낸 이유나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쓴 이유 모두 백성들의 삶을 곤궁하게 한 조선의 모순을 지적, 민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결국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이준익은 한 인터뷰에서 “정약전은 잘못 그리면 역사왜곡이라고 해서 큰일 난다. 그래서 창작 여지가 있는 창대 캐릭터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역사의 충실한 재현이 그간 이준익 표 사극의 최고 장점이었지만 한편으론 양면의 칼날처럼 영화적 상상력의 부재라는 단점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자산어보』에서는 이를 극복한 듯 싶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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