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喜怒哀樂] A형이라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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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喜怒哀樂] A형이라서 그런가...
  • 임종철
  • 승인 2007.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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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리 치과에 계속 다니던 어떤 여고생을 치료할 때였다.

진료를 하면서 ‘자, 뒤로 기대세요’하고 체어를 눕히는데 교복주머니에서 뭔가가 빠져나왔다.

다행히 그 담배갑은 주머니에 반쯤 걸친채 멈춰서 바닥에 떨어지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이걸 내가 다행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그 담배갑이 진료실 바닥에 떨어졌으면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하는게 현명한 판단이며 행동일지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다.

치료하다 말고 ‘야, 니 담배 떨어졌다.’라면서 집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동네 영감님도 아닌데 담배피운다고 뭐라고 하는 것도 주제넘은 짓 같고. 그리고 그 학생 가족들도 치료받으러 오는데 그 지역사회에 파문이라도 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 짧은 순간 그리고 그후 얼마간 이런 생각을 아주 심각하게는 아니더라도 난감한 심정으로 떠올렸다.


이런 소심함은 비단 이런 특별한 상황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Porcelain을 맞춰보면서 ‘자 거울 한번 보세요’하는 순간 맥박이 급상승하는 느낌도 십여 년을 겪어도 여전하다. 그럴 때 아직까지 환자가 벌떡 일어나거나 소리를 지르며 까무라치는 일은 없었지만 꼭 그럴 것만 같은 두려움을 종종 갖는다. 그렇다고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두려움이 없네~’하고 찬송가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이것도 천상 내가 안고 살아야 할 부분인 것 같다.


물론 이건 어느정도 내가 어차피 뛰어난 자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게으르고 부족한 치과의사 처지라 겪는 일들이다. 그러고 보면 다 내 탓이고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고민하고 반성하는 생활은 계속된다. 아마 좀더, 열심히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듯 싶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돌발상황’ 같은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더 늙어도 정답을 얻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앞으로 진료실에서 얼마나 많은 돌발상황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굳이 내 뒤를 따라올 그 누구는 없겠지만 눈 위의 발자국처럼 흔적이 남고 내 가슴에 새겨지는 하루하루, 그게 나의 진료실에서의 삶이다.

그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임종철(편집위원, 좋은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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