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소에 앉아 사연 있는 환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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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에 앉아 사연 있는 환자를 기다리며
  • 조병준
  • 승인 2021.12.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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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조병준 공동대표
조병준 공동대표
조병준 공동대표

며칠전 부산 어느 쪽방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한 주민의 허벅지가 어른 팔뚝정도도 안 되고 체중은 43kg의 영양실조로 보이며 치아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사연진료소로 일단 의뢰를 받았습니다. 함께 온 파일엔 ‘완전무치’라는 말과 노숙에서 쪽방까지 온 그의 긴 인생의 사연이 짧게 쓰여 있었습니다.

건치 부경지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연진료소는 사회연대진료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연이 있는 쪽방주민들이 주로 이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58년생으로, 올해 만64세가 됩니다. 따라서 건강보험 틀니대상자도, 지자체 의치사업대상자도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 사연진료소로 의뢰됐습니다.

현재 영양상태로는 이분의 건강상태가 매우 위급한 상황이며, 사회적 자활은 어려운 상태일 듯합니다. 최근 몇 차례 쪽방주민들의 고독사 및 공영장례 소식을 전해들으며, 아마 관계자분도 염려가 돼 급히 연락을 해온 것 같습니다. 

이분에게 지금 치과치료는 생명과 건강의 시작입니다. 구강건강은 전신건강의 입구라는 말이 떠 오릅니다. 기대로는, 틀니치료 하나로 영양실조 및 전신건강상태를 회복하고 사회적 자활을 통해 공공근로나 다른 멋진 일자리로 이어져, 이분이 쪽방에서 벗어나 임대아파트라도 가기를 상상하며 진료소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라는 것은 All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모인 Every다! 

부산시인권센타 설립을 위해 애쓰고 있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모두’라는 말이 지금 시대에 참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나 혼자서 건강해도, 누군가의 바이러스로 감염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건강한 삶을 살아도, 주변의 누군가가 씹을 치아가 없어 삶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양실조로 말라가고, 그것이 또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모두가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간의 수돗물불소농도조정사업이나 치면열구전색 등의 구강보건사업 이후, 구강건강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건강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아동치과주치의, 장애인치과주치의, 노인치과주치의 등의 사업도 하나씩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모두가 건강한 사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동치과주치의는 지난 2012년 서울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10년이 지났지만 한·두학년 시행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상급식과 같이 전학년으로 확대돼야 합니다. 만 65세 이상 건강보험틀니 및 지자체 의치사업은 사회적 자활이나 삶의 노동을 위해 구강건강회복이 꼭 필요한 중장년층까지 확대돼야 합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중증장애인 등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이 필수적 치과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진료소 외에도 그들이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이 필요합니다. 

건치 구강보건정책연구회에서 연구·제안한 ‘모두를 위한 치과주치의제’는 환자에게는 예방관리의 필요성을 인식시키고, 의료인에게는 경쟁적·상업적 개원환경을 완화시키고 사람중심의 일차의료기관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행돼야 합니다.

진료소에 이분이 오면 그의 입안을 검진하고 치과로 의뢰해 틀니치료를 시행할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이분의 구강상태와 같이 ‘지금이 아니라면 대체 언제인가!’라는 절박함이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2022년, 임인년 새해에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위한 동의와 출발로 치과보건의료인들이 구강건강불평등 해소의 기치를 내겁시다. 볕이 들지 않는 천장에 구멍뚫기를 멈추고, 볕이 구석구석 골고루 들 수 있도록 그 천장을 걷어내기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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