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잠’과 원주민 ‘삶의 터전’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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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과 원주민 ‘삶의 터전’은 지켜져야 한다”
  • 윤은미 기자
  • 승인 2022.02.0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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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오늘(7일) 영등포구청에 존치의견서 제출…52개 단체 및 5,663명 개인 동참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원회가 오늘(7일) 영등포구청 앞에서 꿀잠 존치의견서를 구청 관계자에 전달했다. 이날 존치의견서 제출에는 52개 단체와 5,663명의 개인이 동참했다.

참고로 대책위는 꿀잠의 존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영등포구청은 재개발정비사업계획(안)에 대해 주민 의견을 청취하는 공람 고시를 할 계획이라며 공람의견서를 받고 있다. 또 지난 6일에는 신길제2주택재개발정비사업계획(안) 공람 고시가 되면서 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상황이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원회가 오늘(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꿀잠을 지키는 사람들, 꿀잠대책위원회가 오늘(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의견서 제출에 앞서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측은 존치의견서 발표 및 기자회견을 열고, 참여 단체의 발언 시간을 가졌다. 

용산참사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이충연 씨는 “8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잠을 잘 수 있는 꿀잠이 공공재로서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영등포구청에 강력히 요구한다”며 “이 지역에서 꿀잠이 더 좋은 모습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또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목사는 “영등포구의 자랑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이되는 꿀잠을 지킬 것을 약속한다”며 “이공간을 지켜내는데 구청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지혜를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꿀잠을 매주 이용 중이라는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차헌호 지회장도 발언에 나섰다. 그는 “꿀잠은 단순히 4층짜리 건물 한 채가 아니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너무나 따뜻한 공간이자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싸울 수 있는 버팀목이다. 절대 사라져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산재피해자가족네트워크 ‘다시는’ 관계자도 “산재피해 유가족들과 비정규직들의 유일한 비빌언덕이 꿀잠이었다”며 “우리 역사 속에서 용산참사와 같은 부끄러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희망인 꿀잠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대표는 “태안에서 한 달을 싸우고 피폐해진 몸으로 상경했을 때 빈소에서 꿀잠을 알게 됐다”며 “가장 힘 없고 힘든 사람들이 모이는 꿀잠을 꼭 지켜달라”고 읍소했다.

문화예술인들도 꿀잠의 존치를 외쳤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꿀잠은 역사적인 공간이다.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를 제대로 생각한다면 반드시 존치돼야 한다”며 “절대 갈아엎을 수 없도록 우리 예술인들이 눈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문화‧역사 공존하는 재개발사업 돼야…

이어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김상철 정책팀장이 신길제2구역 재개발 사업의 문제점을 낱낱이 짚었다. 그는 “해당 구역에 무허가 건물이 5.4%이고 그곳에 320명 정도가 살고 있는데 이들은 임대 주택에 입주할 조건도 되지 않아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허가 주택에 살고 있더라도 경제활동이 보장되지 않으면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이들은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건물이 낡고 호수밀도가 높다는 이유로 재개발 대상지가 되었는데 밀도가 높다는 것은 집이 좁다는 뜻”이라며 “좁은집에 사는 사람은 그집에 살 수밖에 없어서 사는 것인데 영등포구청이 마련한 정비구역지정변경안에는 이런 속사정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가 꿀잠 존치의견서를 받고 있다.
구청 관계자가 꿀잠 존치의견서를 받고 있다.

김상철 정책팀장에 따르면, 구청의 정비구역지정변경안에는 오로지 용적률을 높여 일반분양 주택을 늘리는 사업성만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특히 건물을 높이고 이격거리를 넓히기 위해 도로를 더 좁히는 안이 나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 팀장은 “그야말로 조합의 사업성을 위한, 일부 영등포구의 토지주를 위한 영리추구행위에 영등포구청이 조력한 것”이라며 “상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꿀잠 이사장인 조현철 신부는 꿀잠의 공람의견서를 낭독하면서 꿀잠의 역사와 의미를 되짚어 눈길을 끌었다. 꿀잠을 마련하기 위해 3천여명이 넘는 이들이 기금을 조성했고 연인원 1천여명의 노동자들이 직접 쉼터를 다시 지어올려 지금의 4층짜리 꿀잠이 마련됐다. 그런 꿀잠이 한국 사회에서 중대한 문제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지원하기 위해 4년간 활동해오던 중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조현철 신부는 “그간 1만 5천명의 노동자가 이 집에서 씻고, 잠자고, 밥먹고, 빨래하고, 회의하고, 법률상담, 치롸 및 한방진료, 몸살림 체조, 공연, 강좌, 영상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다”며 “꿀잠은 휴식의 공간이자 배움터이며, 병원이었고 목숨을 건 노동자들의 밥을 짓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조현철 신부는 “낡은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 모르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재개발은 부동산 가치 증식에만 혈안이 된 투기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다”며 “지역의 역사, 공동체, 공적 역할에 대한 무차별한 삭제를 자행해 왔고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원주민들은 추방돼왔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조현철 신부는 “주택재개발이 구역 전체를 모두 허물고 뒤집어야만 하는 ‘싹쓸이’가 돼서는 안 된다”며 “재개발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존치할 것은 존치하고 새로운 주택들과 공존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공람의견서 전문이다.

사단법인 꿀잠은 사회활동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쉼터를 마련하여 휴식 및 재충전, 치유, 교육과 문화활동, 소통과 연대를 통해 시민운동을 활성화하고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2016년 6월 11일 설립되었습니다.

설립목적에 따라 쉼터를 마련하기 위해 종교계, 문화예술계, 법조계를 비롯한 전문가, 활동가, 노동자 등 3,000명이 넘는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2017년 1월 어렵게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비록 지하1층, 지상4층, 옥탑방의 낡은 건물이었지만, 연인원 1,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직접 망치와 톱을 들고 새집처럼 꿀잠 쉼터를 다시 지었습니다. 시민운동가, 종교인, 예술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집을 단장했습니다. 아이들의 돼지저금통으로 지은 집이며, 한평생 노동자의 친구로 살아온 백기완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 ‘두 어른’이 남은 힘을 쥐어짜 일으켜 세운 집입니다. 꿀잠 외벽에는 이 집을 짓기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습니다. 꿀잠이 지어진 과정 자체가 한국하회의 뜻깊은 역사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현안으로 사회 양극화의 핵심 주범이기도 합니다. 꿀잠은 저임금과 불안한 고용형태로 고통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차별받지 않고, 다치지 않고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 부당한 해고에 맞서 거리에서 사우는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집입니다.

꿀잠 쉼터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 최초로 만들어진 비정규노동자들의 자발적인 공간이며, 어느 한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서 공익성과 공공성이 매우 큰 공간입니다. 

꿀잠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몸이 아프면 쉬고, 밥도 먹고, 빨래도 하는 등 언제든 쉬고 재충전하면서, 더불어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활동도 하는 복합적 공간입니다. 

2017년 8울 19일 쉼터 문을 열고 4년 동안 연인원 1만 5천명의 노동자가 이 집에서 씻고, 잠자고, 밥먹고, 빨래하고, 회의하고, 법률상담, 치과 및 한방진료, 몸살림 체조, 공연, 강좌, 영상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꿀잠 쉼터는 휴식의 공간이자 배움터며, 아픈 곳을 치료하는 병원이었습니다. 목숨 건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이던 파인텍 노동자들에게 날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올려준 곳이 꿀잠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한겨울 상경투쟁을 해야만 했던 태안화력발전소 청년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님과 한국마사회 특수고용노동자 문중원님의 유족이 쓰러질 듯한 몸을 기댄 곳도 꿀잠이었습니다. 멀리 경주에서, 구미에서 억울하게 해고되어 서울로 성경해 싸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보금자리입니다.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 서로 연결되는 허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역사적이고 소중한 공간인 꿀담 쉼터는 보존되어야 합니다. 

낡은 삶의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의 재개발은 부동산의 가치 중심에만 혈안이 된, 투기와 욕망의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왔습니다. 켜켜이 쌓이 지역의 역사, 공동체 안의 따스한 삶들,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공적 역할에 대한 무차별한 삭제를 자행해 왔습니다. 그 결과는 예외 없이 힘없는 이들, 가난한 이들, 원래 살았던 원주민들의 추방이었습니다.

주택재개발이 구역 전체를 모두 허물고 뒤접어야만 하는 ‘싹쓸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구 도심가의 존치와 재생을 모색하는 도시재생사업은 이익을 위한 공동체 파괴를 막으려는 마지막 몸부림일 것입니다. 재개발은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존치할 것은 존치하고 새로운 주택들과 공존하도록 추진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개발주택정비조합측이 제출한 정비계획변경(안)은 35층 아파트를 짓겠다는 내용만 있습니다. 수차례 꿀잠의 존치를 제기했는데 공공재인 꿀잠을 보존한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과 아파트에 입주하지 않고 마을에 남아 살고 싶은 주민들의 대책 역시 없습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위와 같은 문제에 대하여 심도 깊은 논의와 해결 방안을 마련한 정비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꿀잠이 이곳 신길동에 자리잡은 것은 ‘돈’ 때문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분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하기 위해선 교통편이 좋아야 해서 서울 도심에 쉼터를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높은 땅값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꿀잠 입장에선 이곳 영등포가 마지노선 지역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꿀잠이 존치되지 않고 쫓겨나게 된다면 높은 부동산값을 감당할 수 없어 꿀잠의 목적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쉼터를 중단없이 운영할 수도 없습니다. 꿀잠뿐 아니라 신길2구역에 살고 있는 세입자들, 재개발에 동의하지 않은 원주민들도 이곳에서 밀려나면 높은 주택가격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주택재개발은 공익성이 강조되는 공공사업입니다. 그런데 지난 정비계획안에 대한 주민설명회 자리에서 주로 제기되었던 내용은 ‘재개발을 통해 재산을 늘리자’ 였습니다. 공익성은 없고 재산증식ㅇ르 위해 마을에 살고 싶은 80%가 넘는 세입자와 원주민을 내쫓는 것입니다. 
공공사업이 재산증식만을 위해 진행된다면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업이므로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공익성을 최우선으로 두고 사업을 진행해야 합니다. 

개인 주택이 아닌 공공재로서 공동이용시설인 꿀잠 쉼터가 아파트에 들어가 사업을 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공제인 꿀잠 쉼터는 존치되어야 하고, 중단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신길2구역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세입자들의 주거대책과 삶의 공간을 지키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존치와 재개발을 반영한 주택재개발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2022년 2월 7일
사단법인 꿀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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