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올해 봄은 느긋하다. 남쪽에서 꽃이 핀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눈소식과 늦추위로 주춤거리고 있다. 코로나19로 한껏 움츠려 있는 우리를 닮았나보다. 지난해는 ‘변산바람꽃’을 찾지 않았다. '나 하나라도…'하며 한해를 쉬는 휴식년을 만들었다.

봄바람을 데리고 와 바람꽃일까? 바람이 꽃자리를 만들어주니 바람꽃일까? 아니면 아직은 차가운 이른 봄바람에 여지없이 흔들리고 있어 바람꽃일까?

고개를 내밀곤 낙엽 아래서 한숨을 돌리며 힘을 저축할 것이다. 그리고는 남아 있던 에너지를 끌어 모아 넓은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폈다. 이렇게 씩씩하고 당당할 수가 없다.

언 땅을 뚫는다. 대체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 걸까? 한 계절 넘게 단단하게 쌓여 있던 시간을 작은 씨앗이 밀어 올렸다. 그 안간힘을 사람들이 짐작이나 할 수 있으려나.

변산에서 처음 찾아내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제주와 거제를 비롯해 따스한 남쪽에 모여 있지만 중부지방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높은 산에선 3월말까지 피어난다.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대부분의 바람꽃들이 그렇듯이 꽃잎처럼 보이는 게 꽃받침이다. 대부분 하얗고 드물게 연분홍빛인 다섯 장의 꽃받침과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잎, 연두빛 고깔모양의 꽃, 거기에 푸른빛 암술과 기다란 수술… 이 특별하고 어여쁜 변산바람꽃의 조합 속에서 울리는 감동은 꽃 크기와 관계가 없는 듯하다.

변산바람꽃은 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기다림과 그리움, 그리고 긴 겨울을 견디게 하는 절절함과 애닯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꽃이다. 변산바람꽃을 만났으니 비로소 우리는 봄을 품었다. 바.람.꽃. 가만히 읊조리던 속울림이 더이상 속울림이 아니다. 새계절은 새 희망을 품고 꽃으로 다가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