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높은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한줄기 빛을 붙잡아 제 몸에 가두었다. 숲속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금강초롱을 만나면 그 환한 보랏빛 꽃 등불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푸르름이 버무려진 보랏빛으로 춤추는 숲을 본다. 어두움도 잊고 혼자라서 오는 잠깐잠깐의 불안도 평안으로 바뀐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꽃, ‘금강초롱’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꽃이다. 그럼에도 학명 속에는 창씨 개명된 일본이름이 숨어 있고 종명에는 아시아종이라 적혀 있다.

이런 상황들을 생각하면 금강산에서 발견돼 금강초롱꽃이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신뢰를 잃는다. 최고로 여기는 귀한 것에 ‘금강’이라 붙이는 관습도 있으니 말이다.

살고 있는 곳은 설악산, 오대산, 대암산, 화악산 등 중부 이북 우리나라 뼈대가 되는 높은 깊은 산속이다. 처음 만난 것은 '오지 트레킹'으로 걸었던 곰배령에서였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슬슬 꼬리를 내리는 즈음에 피어나 지쳤던 생활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가을꽃의 시작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가기 힘든 이유는 더위에 약해서다.

올해 나와 금강초롱의 시간은 아슬아슬했다. 한여름 물난리에 쓸려 내려간 곳도 많았으나 긴 가뭄으로 성장이 더뎌진 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내년에는 ‘설악초롱’이라 따로 이름을 붙이고자 애쓰는 대청봉의 보랏빛 무리를 만날 꿈을 꾸어본다. 하얀 금강초롱으로 환한 인제의 숲속 잔치에도 참여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