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이전의 ‘발칙했던 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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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 이전의 ‘발칙했던 1963년’
  • 송필경
  • 승인 2022.10.14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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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상상력에 권력을①

1963년,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사춘기를 막 지나 젊은이가 될 무렵 ‘발칙한’ 기운이 유럽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 수상한 기운은 대중음악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20대 초반의 영국 그룹 비틀즈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대중 영향력에 있어 베트남전쟁의 반전 기수인 미국 가수 밥 딜런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악보조차 읽을 줄 모르던 노동자계급 출신 젊은이 4명이 만든 그룹 비틀즈는 대중음악의 불멸의 전설과 신화를 창조했다. 이 더벅머리 가수들은 젊음, 나아가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기성세대에게 전혀 색다르게 물었다. 이를테면 반항과 도전이었다.

혁명에 버금가는 ‘젊은이의 반란’은 텔레비전이란 파급력이 획기적인 대중매체를 통해 인류가 이전에 한 번도 겪지 않았던 변혁의 물결을 쓰나미처럼 몰고왔다.

젊은이들은 일찌감치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을 찾아 열정을 폭발시켰다. 젊은이들이 펼쳐 보인 새로운 문화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계급과 차별의 경계를 빠르게 깨뜨렸다.

피임약이 비로소 보급되고 전쟁이 당분간 침묵하자, 임신과 징병의 불안에서 벗어난 젊은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구세대의 체계(생각과 체제)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음악이 앞장서자 출판, 영화, 언론, 패션, 미술 같은 나머지 문화가 뒤따랐다.

젊은이들은 자유와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위해 거칠게 부르짖었다. 기성세대의 문화에 맞서기 위해 악기, 카메라, 붓, 펜, 가위를 집어들었다.

거리에는 미니스커트가 등장하고 영화에서는 여성이 가슴을 드러냈다. 밝은 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틀즈의 록 음악이 흐르는 클럽에서 마구 춤출 때 젊은이들은 해방을 느꼈다. 

삶과 사랑, 패션의 풍경이 그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다른 꿈’과 ‘새로운 욕망’을 실현하고자 젊은이들은 대중문화에 몸을 던졌고, 그런 반란의 기운은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관습을 과감하게 버리고, 낡은 체제를 뒤바꾸는 반항과 저항을 통해 자신의 뜻을 표현하면서 행복의 의미를 찾았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의 독점물이라는 어제의 선입관과 달리, 혁명과 다를 바 없는 오늘의 변혁을 새로운 중‧상위층이 이끌고 노동자계급과 하위층이 따라 갔다. 동시에 정치와 종교를 초월해 대중예술가를 영웅으로 추앙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었다.

어느 날 비틀즈의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하자 신문은 동이 났다. 정치문제나 사회의 대형사고·사건은 연예기사에 밀려 고스란히 파묻혔다.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젊은 여성들의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도 1963년의 특징이다. 이 여성들은 완고한 상류층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또박또박 걸었다. 스스로에게 당차고 멋진 여성이었다.

거리는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성과 이를 경멸하는 사람들로 나뉘었고, 성 표현이 더욱 자유로운 출판과 영화 분야는 대중의 지지를 업고 검열 제도에 맞섰다. 

이제 케케묵은 계급은 ‘깨부술 수 있다’고 믿었다. 부조리와 부당함이 가득한 사회제도와 기득권 세력의 아니꼬운 눈길에 거리낌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저질렀다.

대중 가수 영국의 비틀즈와 미국의 밥 딜런에게서 발화한, 기성세대들에게 향한 ‘반란과 저항’의 불꽃은 1963년 이후 구체적 많은 사건을 맞이하면서 1968년 마침내 화산처럼 대폭발을 일으키는데 이를 ‘68혁명’이라 한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대폭발은 아무런 까닭이나 과정도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화산은 대지 밑바닥에서 힘들이 오랜 세월 서로 작용해서 화력이 모여 대지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때 비로소 대지를 뚫고 거대한 화염을 뿜으며 용암으로 분출한다.

1960년대 68혁명의 지각 아래에서는 다음의 힘들이 작용했다. 1964년 미국은 베트남을 침략했다. 1966년 중국에서는 문화혁명이 시작됐다. 1967년 혁명가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했다.

1968년을 맞았다. 1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소련에 저항한 ‘프라하의 봄’이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있었고, 미국의 푸에블로호가 첩보혐의로 북한에 억류당했다.

베트남에서는 설날대공세에 19명의 베트콩들이 약 6시간 동안 미대사관을 점령했다. 침략자 미국으로서는 대단한 치욕이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1968년에 다음과 같은 일들이 있었다. 1월에 한 여학생이 청소년장관에게 ‘여성과 성’의 문제를 소홀히한다고 항의했다. 3월에는 ‘극좌 프랑스 학생운동’이 낭테르대학의 행정본부를 점거했다. 5월에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방화가 일어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학생들의 저항이 일어났다. 

마침내 새로운 힘을 응축한 ‘68혁명’은 화산처럼 폭발해 그 화산재가 전 세계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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