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의 ‘자기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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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자기훈련’
  • 송필경
  • 승인 2022.11.0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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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전태일은 의미 있는 글을 많이 남겼다. 잦은 이사와 찢어지는 가난 때문에 배운 기간은 초등학교 과정 2년, 중학교 과정 1년뿐이었다. 이마저도 꽉 찬 수업을 받지 못했다.

정규 초등교육을 받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전태일은 글쓰기를 좋아해 일기와 수기를 빼곡하게 남겼다. 무지렁이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가 쓴 글은 믿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매우 높았다. 학식 높은 학자의 금언이나 고결한 수도승의 잠언과 견주어도 한 치 모자람이 없었다.

누군가 ‘왜 전태일인가?’라고 묻는다면, 전태일은 자기훈련을 엄격히 하면서 자신이 말한 바를  실천한 인물이었다고 나는 답한다.

공자가 말한 ‘수신(修身 자기 닦음)’이 전태일의 자기훈련 모습이 아니었을까? 큰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을 먼저 가다듬는다! 자기훈련, 수신이야말로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정신 유산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전태인은 아마도 죽음을 결심할 즈음인 1969년 말 또는 1970년 초 자기훈련의 글을 썼다고 짐작된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는 저항을 이렇게 해석한다.

국가권력이나 지배권력은 정당성이 없을수록 더 많은 폭력을 사용한다.(… 중략 …)

지배 권력의 폭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거나 저항하는 양상은 크게 3가지다.

1. 비폭력 저항이다. ‘3.1운동’이 대표적이다.

2. 무장폭력 저항이다. 지도부가 확고한 이념을 가질 때 따르는 무리들이 무기를 들고서도 도덕적 지향을 잃지 않는다. 이 저항이 우리 근대사에서 찬란한 빛이었던 ‘갑오동학혁명’이었다.

3. 특이한 양상의 저항이 하나 있다. 저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외쳐도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칠 때다. 이럴 때는 폭력이 자신에게 향한다.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발자국을 남긴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대표적이다.

전태일의 ‘분신’은 특이한 저항이었다.

‘분신’은 스스로에게 향한 폭력이라도 일반인에게 심각한 비난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저항이다. 비난과 오해를 말끔히 떨어 없애기 위해 전태일은 준비를 철저하게 했다.

날마다 자신의 소명을 점검하고 지난 하루를 반성하는 기도를 올렸다. 일상에서 먼지 한 톨이라도 맑은 영혼에 묻지 않게 애썼다. 숭고한 무게감이 기도하는 전태일 정신에 자연스럽게 담겼다.

죽음을 마주하며 전태일은 침착하고 확신에 찬 인간으로 변모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서로 사랑하자고 외쳤다.

풀빵 정신도 전태일의 위대한 유산이다.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고 이를 적용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노력도 전태일의 위대한 유산이다.

갓 20살을 넘긴 청년이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정신과 몸가짐을 정결하게 가다듬은 예를 인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철저한 자기 수양과 훈련, 그리고 실천, 이 점이야말로 참된 인간 전태일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위엄이 아닐까?

자본주의 노동투쟁의 역사에서 이런 자세를 지닌 노동자의 예가 있었던가? 인류 노동운동 역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위엄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전태일은 노동투쟁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윤리적, 도덕적, 철학적 ‘실천 모범’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투쟁에 헌신하려면 전태일의 자기훈련의 정신을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다음은 위에서 설명한 전태일이 스스로에게 묻고 다짐한 글이다. 나는 이 글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큰 뜻(대의)을 외치지만 권리에 앞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부담이 되는 글이기 때문일까?

전태일의 원본 수기에는 노트 3쪽에 걸쳐 자신을 다짐하기 위한 37개 항목이 있다. 먼저 정신 자세를 가다듬고, 신체 건강을 유지하고, 심리 상태를 점검하고 나서 실천과 행동을 다짐하는 4항목 37개의 글이다.

1. 자신의 정신자세를 묻는다.

* 나는 종교적 신념이 있는가?
* 나는 인생의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 나는 친구나 동료 윗사람에 대해 성실하고 솔직한가?
* 나는 도덕적으로 결백한가?
* 나는 목적을 이룩하기 위해 자기수양에 노력하고 있는가?
* 나는 장래를 위한 지식을 쌓기 위해 연구를 게을리하고 있지 않은가?

2.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습관을 기른다.

* 두뇌 능률을 위해 신체적 에네르기의 사용을 절약하자. 육체적 약점은 없는가?
* 신장에 비해 체중은 어떠한가?
* 음식은 충분한가, 과식은 하지 않는가?
* 매일 밤 잠은 잘 자는가?
* 운동은 충분하가, 운동이 과하지는 않는가?
* 몸과 마음에 나쁜 영향을 미칠 좋지 못한 습관은 없는가?

3 심리 상태를 점검한다.

* 쉽사리 낙담하지 않는가?
* 생활상의 파란으로 극단적으로 낙관하거나, 비관하거나 하지 않는가? 
* 실망, 낙담했을 때에도 일을 평상시와 같이 계속할 수 있는가?
* 맡은 일에 대해 정력을 다 기울이고 있는가?
* 어제 그릇된 일 때문에 오늘의 일에 방해가 되거나 하는 일은 없는가?
* 결단을 신속하고 명확하게 내릴 수 있는가?
* 확신 있는 해답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 문제에 생각을 집중할 수 있는가?
* 동료나 윗사람에게 정직한가?
* 나는 여러가지로 생각이 깊고 신중하며 기략이 있고 친절한가, 어떤가?
* 딴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딴 사람의 의견만을 좇는 일이 있는가, 없었는가?
* 나는 일에 대해 빈틈이 없고 또한 일하는 태도가 훌륭하다고 볼 수 있는가?
* 수입의 몇 할을 저축하고 있는가? 
* 나의 교양과 지위 향상에 준비를 위해서 수입의 몇 할을 정해서 쓰고 있는가?
* 기술과 집중력, 결단성, 인내력, 깊은 생각, 믿음성 등에서 현재의 내 지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 나는 이러한 성능을 얼마나 지니고 있는가?
* 현재의 일은 나의 일생의 목적에 대해 얼마만한 의지를 가졌는가?
* 현재의 일은 일생의 사업으로서 희망성이 있는가, 없는가?
* 나는 어찌하여 위의 말한 각 조목의 물음에 답하였는가?
* 나는 나의 일생의 궁극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한 인물인가?

4. 앞으로 실천과 행동을 다짐한다.

* 목적을 잡고 꿈을 이루며 돌진해라. 자기 손으로.
* 일생의 건축기사로서 사람은 그 일에 온갖 정력을 퍼붓지 않으면 안 된다. 물질적으로 1달러도 못 나가는 육체까지도.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한 행동하라.
* 목적이 문제가 아니다. 목적의 성공이 문제다.
* 입은 굳게 다물고 양 귀와 두 눈은 크게 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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