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이야기] 블랙리스트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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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이야기] 블랙리스트를 만들자?
  • 신이철
  • 승인 2004.09.0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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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지역의 치과의사회 모임에 나갔다.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런 저런 이야기에 인사조차 나누기 힘들다. 개원의들이 모이면 늘상 떠는 수다이지만 이번엔 좀 심각한것 같았다.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고 게다가 좋은 직원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 이야기다. 개원한지 몇 달 안되는 L원장은 한숨까지 내쉰다. 겨우 구한 직원들조차 한두달을 넘기지 못한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선배인 J원장은 경험담을 늘어 놓으며 직원구하는 요령에 못된 직원 가려내는 노하우까지 몇마디 거든다.

직원들의 도움이 절대적인 치과의사들에게 직원을 잘 뽑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성실하고 손발이 척척맞는 직원을 만나게 되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불성실하고 나태한 정도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무단결근을 하거나 심지어 돈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치과 저 치과 돌아다니며 물을 흐리는 경우도 있고 가장 난처한 것은 월급만 챙기고 집단으로 증발하는 경우라는데...

치과의사회 모임에서 급기야 블랙리스트를 만들자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문제 인물들의 취업을 원천적으로 막아 치과의 피해를 줄여보자는 이야기이다. 일면 그럴 듯 한 주장으로 들려 한때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몇몇 원장들이 나서서 블랙리스트는 절대 안된다는 의견을 강력히 제시해 겨우 분란을 잠재우긴 했지만 직원들에게 몹쓸 짓을 당해 본 원장들의 분은 삭아들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7,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참이었을 때 공장활동을 위해 취업한 운동권인물을 가려내기 위한 방법이었고 이후에도 노동운동 탄압의 무기로 사용된 강력한 수단이었다. 지금까지도 사업주의 일방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노동운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치과의사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만들면 안되는 이유는 한 둘이 아니다.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제약하고 취업의 자유와 직업 선택의 기회를 박탈하는 일이며 원장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수도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잦은 이동과 안좋은 행동의 근본적인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원장들의 책임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직원들에게 인간적인 대우와 적절한 복지가 제공된다면 직원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그만큼 줄어들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직원들의 책임으로 돌리기 보다는 스스로를 돌아 보는 계기로 삼는 지혜도 필요할 것이다. 혹시 우리 치과가 취업해서는 안될 블랙리스트에 오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치과에서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말자고 주장했던 것을 후회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인근 치과에서 일하다가 한달전에 우리 치과로 오게된 신참 직원이 월급을 받은 후 잠적한 것이다. 너무 황당했다.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질 줄이야... 상상도 못했는데... 직원들에게 잘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자고 극구 주장했던 L원장의 화가난 얼굴이 머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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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위생사 2004-09-19 16:18:18
원장님 글 잘 읽었습니다. 10여년이 넘는 임상에서 저또한 저의 동료들이지만 어째 프로의식이 없을까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그렇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절대로 아닙니다. 몇몇 직업의식이 부족한 사람들 때문에 전체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경우도 종종 봤습니다. 심지어 학교별로 따지시는 원장님도 봤습니다.원장님들과 저희들은 협력 관계여야 합니다.상하 주종 관계가 아닌 병원 운영의 파트너로서 주인의식을 가진다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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