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또다시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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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희망과 절망… 그리고 또다시 희망을
  • 송필경
  • 승인 2022.11.30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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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2016년 10월 24일 최순실의 태블릿 PC 존재를 jtbc에서 보도했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촛불운동이 일어났다. 2017년 5월에는 촛불행동이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져 이른바 ‘촛불정부’를 탄생케 했다.

그러나 2022년 3월 10일 새벽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새롭게 확정되면서 무사안일했던 촛불정부는 맥없이 무너졌다. 이 짧은 시기에 일어난 놀랄만치 허무로 끝난 정치사건을 우리 사회에서, 나아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로 바라봐야 할지 나는 헷갈렸다.

다음은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의 맨 첫 부분이다.

최고의 시간이면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지혜의 시대였지만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신기원이 도래함과 동시에 불신의 신기원이 열렸다.
빛의 계절이었지만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다가도 모든 것을 다 잃은 것 같았다.
다 함께 천국으로 향하다가도 지옥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지금도 물론 그런 식이지만, 언론과 정계의 목소리 큰 거물들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시대가 극단적으로만 보여지길 원했다.

이 소설은 찰스 디킨스가 1859년에 발표한 『두 도시 이야기』이다. ‘프랑스혁명’이라는 거센 폭풍우가 몰아친 시기에 런던과 파리에서 일어난 프랑스 사람의 이야기다. 디킨스 자신은 끔찍한 격동의 시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쓴 소설이라고 밝혔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은 내가 방금 겪은 5년 반 동안의 촛불정부 모습을 기막히게 설명한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163년 전의 묘사가 지금 내가 느낀 상황과 별 다름이 없어 보였다. 이게 바로 고전 반열에 오른 작품의 힘일까?

2016년 10월 24일 저녁에는 내 앞에 모든 것이 있을 것 같았는데, 2022년 3월 10일 새벽에 눈을 떠 보니 내 앞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두 도시 이야기』와 『레미제라블』
『두 도시 이야기』와 『레미제라블』

전태일의 평화시장을 들여다보면서 참고로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였다. 19세기 초 영국이 산업화를 시작하던 시기에 아동학대를 비롯한 산업화 사회의 짙은 그림자를 고발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어린 올리버 트위스트가 겪은 삶의 고통이, 남한에서 산업화가 막 시작될 무렵 전태일과 청계천 평화시장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겪은 고통과 어쩌면 그렇게 비슷했을까?

찰스 디킨스의 시선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향하면서 항상 따뜻했다. 아무리 비참한 상황을 묘사하더라도 유머의 끈을 놓치지 않은 디킨스의 문학은 남달랐다. 영국인들은 그런 디킨스를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견주는 대문호로 존경하고 있다.

다음은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옛날의 압제자를 파멸시키고 새로운 압제자로 떠오른 자들,
(보복의 기구인) 단두대가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지기도 전에 단두대에서 스러지는 것을 본다.
아름다운 도시와 훌륭한 사람들이 이 심연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그들이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진정한 자유를 위해 분투하여,
승리와 패배를 통해 예전의 악에서 비롯한 이 시대의 악까지
스스로 조금씩 참회하며 스러지는 것을 본다.

5년 반 전 촛불정부가 출범할 때 ‘사람이 먼저’인 사회가 나는 정말 올 줄 알았다. 이제 돌이켜 보니 소리친 적이 없는 메아리를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운 헛수고였다.

디킨스는 사회를 더 따뜻하게 바라보라는 간절한 글을 인류에게 속삭이듯 썼다. 디킨스의 희망은 악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떨치고 일어서는 현명한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믿음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지만 절망이 다시 희망으로 바뀌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게 디킨스가 말한 전진하는 역사의 속성이 아닐까?

나는 디킨스를 그렇게 읽었기에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 한 우리의 역사는 전진하리라고 믿는다.

“어떤 진보도 한꺼번에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프랑스혁명의 소설 『레미제라블』를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두 도시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2억 부 가량이나 팔린 책이라고 한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안 알려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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