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토론에서 경제사학을 전공한 이영훈 교수가 정신대 문제에 대해 기탄없는 발언을 하여 그 파문이 천파만파 일고 있다. 정신대는 대부분 한국인에 의해 징발되었으며 그렇기에 해방 이후부터 한국에 존재한 미군 위안부들과 같은 선상에서 인식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대와 관련된 2000점의 일본인 고백 자료를 꼼꼼이 살폈고, 그 자료를 정리한 일본학자들에게는 경의를 표하였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아직도 여자를 쇼윈도우에 가둬놓고 성매매를 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강력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신대=성매매'란 뉘앙스를 짙게 풍겼다. 발언의 전체 문맥으로 보면 완전히 악의적 발언으로만 볼 수 없지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경상도에는 '시근'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에는 항상 상황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안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상황의 분위기를 통찰하여 해석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상황의 섬세성을 무시하고 논리적 주장에만 목소리를 돋운다면 듣는 사람은 참으로 어이없기 마련이다.
한국역사의 권위자‘브루스 커밍스’는 정신대 문제를 이렇게 말한다.『일제는 위안부들의 할당량을 정했다. 일제는 일본인 노동력 부족을 한국인 관리들로 대체하여 교묘한 분리통치술을 구사했다. 일본인들은 감독 역할만 충실히 하고 위안소를“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것처럼 보이게”했다. 그 관리인들을 주로 가난한 사람들과 불우한 가문들에서 노동자들을 골랐으니 바로 이 한국인 관리들이야말로 그 지역사회에서 가장 증오 받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우리는‘위안부’문제의 진정한 참상, 왜 일본이 그것을 은폐했고 또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남한 정부가 이를 방치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 성적 노예에 대한 조사를 개시하면 많은 한국여성들이 한국 남성들에 의해 동원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일본은 한국인끼리 싸우게 만듦으로써 한국의 민족정신을 파괴했고 그 결과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그렇기에 정신대를 정면으로 마주보기엔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교수는 많은 학식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모르게 한국인끼리의 싸움에 뛰어든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 우리나라 이퇴계 정도의 대접을 받는, 일본 학계에서 텐노오(천황)로 불리는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이중성을 이렇게 보았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포로학대 문제를 보기로 하자. 수용소에서 있은 포로에 대한 구타 등에 관한 재판보고서를 읽고, 기묘하게 생각되는 것은 피고인들이 거의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수용소의 시설 개선에 힘썼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 점이다. 나는 그것을 반드시 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궤변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주관적인 의식에서는 확실히 처우 개선에 힘썼다고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들은 처우를 개선함과 동시에 때리기도 하고 차기도 한 것이다. 자혜로운 행위와 잔혹한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와 권력의 미묘한 교착현상을 볼 수 있다.』이 미묘한 교착을 간파한 마루야마는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에 베푼 작은 몇 가지 자혜로운 행위로 엄청난 잔혹함을 감추는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윤리 의식에 호된 비판을 가한 것이다. 이교수가 마루야마와 같은 양심적인 일본학자를 접하지 못한 것이 몹시 안타까울 뿐이다.
「중용」 2장에 다음과 같은 경구가 나온다. "군자는 군자로써 시의 적절하게 행동하고, 소인은 소인으로써 기탄없이 행동한다." 편향된 학문에 기탄없이 집착하면 아무리 박학하고 논리가 정교하더라도 빤한 곳에서 맴맴 돌게 될 뿐이다.
정신대 누드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배우 이승연이 '철'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최고학부의 교수가 이번 일로 참으로 '시근'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책상머리에서 학문한 정열의 몇 십분의 일의 성의를 가지고 정신대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는 '시근'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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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거 수정기능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