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생김새는 잘 알지 못하나 이름만으로도 친근한 꽃이 있다. ‘물봉선’이 그 중 하나 아닐까?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으면 무심히 발길을 옮기던 산객들도 한번쯤 멈추고 무슨 꽃이냐 묻는다. 물봉선이라 답하면 한결같이 돌아오는 답이 “아, 이게 그 물봉선입니까?” 또는 “물봉선이군요”이다. 그 말은 이미 물봉선을 반쯤은 알고 있다는 뜻이겠다.

손톱에 물들이는 봉선화, 우리 이름 봉숭아에 담긴 추억을 갖고 있어 더 반가운 이름이다. 8~9월에 핀다고 쓰여 있지만 더 이른 여름부터 싸늘해지는 10월까지 볼 수 있다.

물을 좋아해서 물봉선이다. 산자락 물가에는 어김없이 피어 있다. 분홍이 대세이나 조금 더 높은 산에 들면 하양과 노랑도 만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꽃빛이 진하고 자그마한 ‘가야물봉선’과 꼬리처럼 생긴 꿀주머니, 거(距)가 말리지 않고 아래로 처진 ‘처진물봉선’, 색감이 오묘한 ‘미색물봉선’ 등이 있다. 하양과 노랑도 변이가 아니라 당당히 이름을 갖고 있다.

꽃모양뿐만 아니라 열매를 건드리면 껍질이 순식간에 또르르 말리며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는 습성도 봉숭아와 꼭 닮았다.

같은 봉선화 집안이지만 고향은 다르다. 물봉선은 우리 땅을 비롯한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가 원산이고 봉숭아는 인도와 동남아가 원산으로 오래 전에 들어온 귀화식물이다.

봉숭아, 봉선화에 대해서는 이름이나 출신, 일제강점기에 얽힌 이야기들까지 다양하지만 정작 우리 토종인 물봉선에 대해서는 말이 짧다.

통통한 아가볼 같기도 하고 분홍빛 수줍은 새악시처럼 곱기도 한 물봉선. 재잘대며 속삭이는 물봉선들의 소란스러운 이른 가을노래가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지난 여름의 지쳤던 기억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은 까닭이지 않을까?

길고 혹독했던 여름을 묵묵히 견딘 꽃들이 풍족히 내린 비 때문인지 우리보다 더 넉넉하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