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잘못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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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잘못된 동행
  • 우승관
  • 승인 2007.03.19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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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의협에 기대는 잘못된 동행을 계속 할 것인가?

 

꽃피는 춘삼월이 왔다. 여기저기서 산수유가 피고 있고 매화가 만개하고 있다. 모든 생명이 다시 움트는 봄이 왔다.

바다건너서 들려오는 소식과 분단의 철책선 너머 들려오는 소식들은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너무나 충분해 보인다. 오랜만에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는 희망의 메시지가 한반도에 넘쳐나는 것이다.

이런 소식들이면 희망으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진료를 하면서도 갑갑한 심정은 가시질 않는다. 한미 FTA 문제가 그렇고 의료법 개정의 문제가 우리의 가슴을 너무도 짓누르고 있다.

한미 FTA로 인해 의약품 추가 지불액이 연간 2조원을 넘어선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고 의료법 재개정 문제로 인해 머리는 혼란스럽다. 그렇다고 마냥 앉아서 기다린다는 것,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기피하는 것은 그냥 귀찮아서 싫다는 귀차니즘의 소치로 돌리기엔 의료에서의 파급력과 국민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도 크다.

이번 의료법 전면개정안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이래 많은 혼란이 존재하고 특히나 의료단체들의 반발이 심하다.

다수의 단체에서 다수의 의견으로 혼란에 빠질 때는 ‘우리는 어디에 그 중심적 관점을 두는갗에 따라 수많은 정당성을 발견하고 당황스러워 한다. 그렇기에 이것을 바라보는 중심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그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주장에 한걸음 더 빨리 다가서는 길이 있다. 그렇다면 보건의료인의 중심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진료전달체계 확립과 국민의 건강권 수호’라는 대의적 명분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더 나아가 의료의 공공성 확립으로 누구나 편안하고 누구나 쉽게 의료를 이용하며 질병에 걸리지 않는 예방적 시스템의 건설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또 이야기해야 할 부분은 목적을 향한 대응의 진행방식이다.

우리는 이제는 흔하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있다. 연대와 연합이라는 단어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공조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겠다. 이는 정보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더욱더 큰 의미로 부각되고 있다. 연대와 연합의 중심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의 같음을 추구하는 “구존동이” 의 사상이다.

여기에서 같음이란 같은 이해와 요구의 동일함과 그 동일한 목표에 대한 진정성의 믿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했을 때만이 연대와 연합(혹은 공조)이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는 공조내지는 연대라고 부를 수가 없고 ‘야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 한명은 아름다운 오솔길을 감상하면서 자연을 만끽하는 사람과 다른 한명은 오솔길을 깎아서 도로를 내고 오폐수를 방출하는 염료공장을 세우려고 길을 측량하는 사람이라면 둘은 결코 동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가지 관점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의료의 본질적 속성상 의료의 결정권은 그 누구보다도 국민이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의료의 틀을 국민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의료체계와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곱지 않다. 특히나 의약분업 시에 나타난 모습들을 전체 의료인들과 동일시 할 수밖에 없는 국민들의 시각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는 포털 사이트의 게시판을 봐도 누구나 쉽게 국민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대중은 우매하고 피동적인 객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미 국민들은 주체로 나서기를 자처하고 있으며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의료법의 전면개정의 필요성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주장하는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35년 동안 한번도 전면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의료법 자체의 문제이다. 소위 누더기 법안으로 불리는 이러한 구닥다리 법안으로 의료의 전반적인 모습을 조율하려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안을 환자의 권리강화라는 측면에서 진행하였다고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장기간 준비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래 준비된 법안이 오타 투성이 일수 있는가? 법안의 문구들은 그 자체가 엄청남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데 오타가 수없이 존재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과연 장기간 준비를 잘 했다고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밥 먹고 놀기만 하였다고 의구심을 느낄 것인가?

그리고 환자의 권리강화가 주된 내용이라고 홍보하다가 의협의 반대에 부딪히자 이제는 의사단체에 유리한 법률이라고 하면서 그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맞는 소리인가? 너무도 안이한 대처이다. 국민의 시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관료주의의 표상이다.

의협은 처음부터 반대를 해서 언론이 집중 취재가 이루어졌다. 의사들의 요구를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는 웹사이트의 토론방에 들어가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토론은 의사들과 국민들 간의 설전으로 보인다. 누구도 더 이상의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의협은 의료사회주의를 정부에서 하려고 한다면 반발하고 있다. 허지만 실재 법안은 의료 사회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하는 것이 그 주요한 내용이다. 의료의 영리화를 통한 의료의 경쟁력 강화라는 정부 측의 논리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의료사회주의라고 반대하는 것은 중학생정도의 논리적 사고만 해도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의협이 반대를 표명하고 있는 부분은 국민의 건강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부분이다. “간호진단” “투약명시”등은 의료에 있어서 의사의 권한을 강조하는 항목이지 결코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문구가 아닌 것이다. 이번 정면 개정안에서는 “간호진단”의 규정을 명확히 했다. 이러한 진행과정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의료법 전면개정이 특정집단과 보건복지부와의 밀실야합의 결과로 통과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킬 수가 없다.

의료법의 전면개정의 필요성은 격렬히 반대를 하고 있는 의사회는 물론 시민단체에서도 인정해왔던 것이다. 예를 들어 진단서를 발부하는 것조차 법적 근거를 가지지 못했던 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정부의 의료법 전면개정 의 의도는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요구해왔던 것과 거리가 멀다. 의료계는 현행법의 불합리한 규정들의 개정을 원했고, 시민사회단체는 국민의 권리 강화와 의료전달체계의 확립을 원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그런 것들은 '시늉'에 그쳤다. 오히려 '유사의료행위'등 사회적 갈등만을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의료법 전면개정안에 대한 반대는 타당성이 있다. 좀 더 논의를 하고 좀 더 국민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해서 개정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전면개정을 조금 늦춘다고 무엇이 잘못이겠는가?

하지만 이번 의료법 전면개정에 대해서 의사협회나 치과의사협회, 시민사회단체가 공히 반대한다고 입장이 같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전문가단체는 전문가집단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부합되도록 법안이 만드어지도록 노력을 할 것이고, 시민사회단체는 국민과 환자의 입장이 반영이 되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부분은 오랜 논의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다. 협상과 합의의 과정에서 각각은 자신의 입장이 지지를 받고 관철되게 하기 위해 연대도 하고, 주고받기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서 치과의사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치협도 주장을 하지만, '의료의 상업화'를 하는 조문들이다. 자, 여기서 물어야 한다.

치협의 '의료의 상업화 반대'에 동의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바로 시민사회단체이다. 의료계에서 한의사협회이다. '의료의 상업화'에 찬성하는 세력은 누구인가? 병원협회와 네트워크거대의료기관을 꿈꾸는 일부 의료세력과 민간의료보험세력을 위시한 자본세력이다. 의사협회는 어떤 자세인가?

 대부분의 개원의들은 내심 의료의 상업화를 반대하지만, '의료사회주의' 운운하는 보수적 의료정치세력에 맞서는 반대세력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의사사회 일부의 정치세력이 의사들 일반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의협의 일부 임원들은 '의료의 산업화'는 적극 찬성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다니고 있다.

그런데, 현재 치과의사협회는 의사협회의 그런 입장을 뻔히 알면서도, 집회를 같이 하고, 투쟁을 같이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는 가장 힘센 세력이기 때문이다. 집회를 해도, 치협이 독자적으로 동원하기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의협이 혹시 배반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속으로 억누르며, 의협의 손을 붙들고 불안한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검은 고양이던 흰 고양이던 쥐만 잡으면 되니까. 그런데, 같이 가던 검은 놈이 갑자기 돌변하여 흰 고양이를 무는 검은 개가 될 지 모르니,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당할 수 밖에 없다.

하여, 이제 치과의사협회도 앞으로 가야될 길을 잘 전망하고 준비를 하여야 한다.

첫째, 의사협회가 치협의 입장에 명시적인 '동의'와 '공동요구'를 하도록 협상하고 강제하여야 한다. '의료상업화 조항의 삭제'를 공동의 입장과 요구로 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되지 않는 한, 의사협회와의 공조의 미래는 없다.

둘째, 시민사회단체와 적극적으로 연대하여야 한다. 의료법 전면 개정안 반대의 명분은 시민사회단체가 갖고 있으며, 국회의원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또한 향후 벌어질 투쟁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불이익에 대해 사회적으로 차단하고 치협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셋째, 독자적 행동력을 키워야 한다. 의협이 아니라도, 치협이 독자적으로 집회도 하고, 문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의협이 치협을 우습게 보거나, 정부 당국이 치과계를 무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의료법 개정을 둘러싼 싸움은 이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회에 상정될 4월부터, 최소한 6월국회때 까지는 지속될 것이며, 설혹 이번에 의료법 개정이 무산되더라도,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의협에 기대는 잘못된 동행을 계속 할 것인가?

이제는 회원들과 함께 가는 길이 그 누구의 정략적 이해관계에 휩쓸리지 않고 치협의 구성원들과 함께 국민의 구강건강권 확립과 일차진료기관을 생존을 목적으로 가야 한다.

가는 길이 다르더라도 설혹 가는 도중에 같은 장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길을 나선 이유가 다른 것이다. 그것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다. 환자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언제부터인가 잃어버렸다. 이제는 그 호칭을 찾아야 한다.

이제 잘못된 동행은 그 끝을 내야만 한다.

우승관(건치 광주전남지부 조직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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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학사 2007-03-20 01:04:50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는 단기적인 전술과
미래를 밝힐 장기적인 전략.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능력은 참으로 갖고 싶은 바람입니다.

우승관 선생님의 의도는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나는, 그런 바보스런 짓을 하지 말자는 것이겠지요.

땀이 베인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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