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성조의 베트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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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성조의 베트남어
  • 김기현
  • 승인 2007.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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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베트남 진료단 후기 연재]-⑥
가끔, 예전에 다녔던 대학 후문 근처에서 약속이 있을 때가 있다.

내가 처음 신입생이었을 때는 식당과 막걸리집 일색이었던 그곳이, 이제는 광주에서도 내노라 할 상권이 되어 휘황찬란하다.

수많은 자동차가 지나가면서 뿜어져 나오는 엔진 소리, 길가 상점과 가판대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악소리, 그리고 젊은이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조용함이란 찾아볼 수 없는 거리이다.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지라, 음악소리가 조금이라도 큰 맥주집도 사양하는 나로서는 그런 소음이 반갑지 않을진대,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전 내가 거닐었던 거리였다는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이미 지나가 버린 젊은 청춘에 대한 그리움일까?
그곳에서의 소음을 즐거이 받아들이고 있다.
쌍쌍이 아니면 삼삼오오 무리지어 가는 젊음을 보면서....

퀴논의 호텔(숙소) 식당 발코니에서는, 저녁마다 술과 함께 하는 모임의 연속이다. 통역으로 참가한 호치민대 한국어과 학생들도 힘든 기색이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함께 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젊은이를 보면서 느끼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나에게는 즐거움의 연속이다.
많은 걸 배우려고 왔을 그들이 실망하지 않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들 앞에서 시나브로 잊게 된다.

술보다는 그들의 젊음에 취해서이리라.

<'꼬 꼬 꼬이 꼰 꼬 꼬 꼬 꼬 안 꼬'.
베트남어 문장을 한글 발음으로 표기해보았다. 무슨 뜻일까? ‘목을 움츠리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학을 아가씨가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꼬’라는 발음만 일곱 번이나 등장하는 이 문장이, 어떻게 그런 뜻을 가질 수 있나? 베트남어는 6성조의 언어이기에 가능하다. 똑같은 발음인데 성조를 올리고, 내리고, 굴리고, 꺾고, 깔고, 평평하게 하는 것에 따라 뜻이 모두 달라지는 것이다.

베트남어의 6성조는 음악에 버금간다.

음계 없는 음악은 상상할 수 없듯이 성조 없는 베트남어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고무줄 없는 팬티다. ‘지에우 나이 또이 쎄~ (오늘 오후 나는 ~할 것이다.)’라는 어구는 ‘쾌지나 칭칭나네’의 음계와 거의 유사하다. 만약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음계를 제대로 타지 않는다면 어구의 뜻은 6의 네제곱배로 달라진다

베트남어처럼 성조가 있는 언어들은 독학이 불가능하다. 성조를 글로 표현하는 게 가능하지 않고, 또한 눈으로 이해하는 게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현지에서 귀와 입으로 익힐 도리밖에 없다. 성조가 어그러지면 오해는 기본이요, 상대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게 태반이다.>
(하재홍, 호치민통신 중에서)

베트남어는 듣고 있으면 재미있다.

우리 조에서도 '흐응'이라는 이름을 가진 통역학생이 2명 있었는데 음치인 나로서는 도저히 성조를 따라 할 수 없어 결국 성조로 구분하여 부르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진안에서 온 이성오 선생님은 '기분좋을 때 들으면 상당히 듣기좋은 매력적인 언어고, 기분 나쁠 때 들으면 떽떽거리면서 시끄러운 것 같은 말'이라고 정의한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운게, 1주일동안 배운 베트남어가 '신 짜오(안녕하세요)' '깜온(감사합니다)' 단 두마디 였다는 거다. 술마실 때 했던 우리의 '하나 둘 셋 건배'란 말도 마실 때마다 취해 다음날에는 기억하지 못하기를 반복하여, 지금 역시 생각나질 않는다.
돌이켜보면 줄기차게 해댔던 그 두 마디도 현지 베트남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했던 것 같다.

'응옥'은 이번 진료단 통역중 유일하게 학생이 아니다. 그리고 최고령자이다.
이번 진료단에 참가하기 위해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는(?) 후문이 있었던, 또랑또랑한 아가씨이다.
한국말도 능수능란해 웬만한 농담은 쉽게 받아칠 정도이니 베테랑중의 베테랑이다.

쉬지않고 '응옥'이 말을 한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녀의 말은 베트남어의 6성조를 타면서 리드미컬하다.
말하는 그녀가 아파보인다.
한국을 좋아한다던 그녀가, 그래서 한국에 오래 머물렀던 그녀가, 자신의 조국에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했던 조상들을 회상하는 것이 힘들었을까?

그래도 그녀는 냉정하다.
흐트러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리드미컬한 모국어로 우리에게 또박또박 이야기한다.

'베트남 전쟁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싸움도,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내전도 아닌, 침략자 미국에 맞선 민족해방전쟁이었다'고...
'그리고 한국군은 침략자 미국의 용병이었다'고...
'그런데 왜 용병에 불과했던 그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민간인을 학살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지금의 베트남 정부는 전쟁의 책임을 당분간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을 것 같다'고.

'묻는다해도 미국에게 먼저 묻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에도 그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왜냐하면..............................우리 조국이 지금은 너무 가난하니까요'라고.

심포지움을 끝내고 나가는 나의 머리가 무거웠다. 그리고 가슴도 답답했다. 힘든 일정임에도 무언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졸린 눈을 비벼가며, 빠져들었던 그곳에서도 역시 명쾌한 해답은 보이질 않는다.
우리가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풀어줄 열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술을 한잔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의지와 상관없이,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을 푹 잔 덕분에 버스에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다.
그러나 머리는 여전히 무겁다.
옆에 앉은 진료단 베테랑 이성오 선생님께 물어봤다.
'지금의 베트남 정부가 과연 옳은 것이냐?' '가난 때문에, 돈 때문에,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을 늦춰도, 아니 포기해도 되는거냐?'고.

후배지만 선배같은 그가 진중하게 말한다.
'베트남을 우리의 잣대로 이해하지 말라'고.

갑자기 머리가 가벼워졌다.
어제 심포지움에서 버벅댔다고 놀려댔던 그에게 괜시리 미안해진다.

버스는 정겨운 베트남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정겨워진 크락션을 연신 울려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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