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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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견문록] 미국에서 교수되기 3
  • 이상윤
  • 승인 2007.05.06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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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를 마치고 난 후에 환자에게 치료가 다 끝났다고 하는 표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이 ‘We’re are done (for today).’ 또는 ‘We(You)’re finished (for today).’ 등이고,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말하고 싶으면 ‘You’ve gone through a lot today, thanks for your patience.’ 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어라는 것이 그렇듯이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환자에 따라, 또 치료한 내용에 따라 어떤 때는 ‘We(You)’re through all for today.’ 또는 ‘You are good for today.’ 라고 하거나 또는 ‘You are all set for today.’ 등등으로 말 하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때 우리 어시스턴트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You are a free woman!’.
모두 생생한 영어 표현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들이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인들이 공들여 외울 가치가 있는 것들일까?


별로 아니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번째로, 공부해서 익히기에는 상황이 너무 많다. 우리가 흔히 생활영어나 영어회화를 공부할 때는 상황(시츄에이션)이라는 것을 설정해 놓고 오갈 수 있는 대화를 가상해서 외우는데, 그 시츄에이션이라는 것이 너무 많다.

치과에서만 해도 턱 좀 치켜들지마라, (체어) 위로 좀 올라와라, 입좀 크게벌려라, 입안에 있는 물로 그르릉 거리지 마라 등등 수 많은 ‘상황’이 있고 각 경우에 또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다.

물론 그 치과라는 ‘상황’조차도 생활의 아주 일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 그런 상황들을 대비해서 표현들을 다 익히고 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비효율성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인들은 get 이라는 단어를 무지하게 많이 사용한다.

예를 들면 get you, get him, get me, 등등…모두 get + somebody 형식의 표현들인데 뜻이 경우에 따라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어시스턴트 한테 수술기구를 설명해주면서 ‘이건 이렇게 관리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기구를 쓴다’하고 설명해 주면 어시스턴트가 그런다. ‘I got you!’ 이건 알아들었다 (understand)는 뜻이다.

앉아 있던 환자가 어디갔냐고 하면 어시스턴트가 잠시 대기실에 나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I’ll go get him.’ 이건 환자를 지금 데려오겠다(bring)는 뜻이다. 수술하면서 수술바늘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어시스턴트의 손과 부딪혀 놀라서 쳐다보면 고개를 가로 저으며 ‘You didn’t get me.’ 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바늘에 찔리지 않았다는 말로 알아듣고 안심한다.

이 이외에도 수도 없이 get이나 have와 같은 쉬운 단어를 써서 하루의 대화를 이어 나간다. 이러한 표현들은 실제 상황에 처하면 누구든지 쉽게 이해하고 익힐 수 있는 것들이지만 회화책을 통해 익히려면 헷갈리기도 헷갈리고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우리가 회화 또는 생활영어라고 공부하는 것들은 – 그것이 아무리 많은 분량의, 말하자면 미시간 액션 잉글리쉬처럼 수십개의 책과 테잎으로 담겨있는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 바둑으로 치면 몇개의 정석이나 묘수풀이를 익히는 것일 뿐 실제 바둑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변화의 경우를 다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 와서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공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마치 금(gold)이 일개 재물(財物)중의 하나였지만 역사적 발전을 거쳐 상품간 교환의 중심인 화폐로 변한 것처럼, 영어도 미국(과 영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어였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언어간을 교류시켜주는 언어의 언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익히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어를 왜 공부하는가, 무엇을 위하여 영어를 공부하는가,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 하는 개념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고유의 문자와 언어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12년의 의무교육기간 동안 영어를 주요 교과목으로 간주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는 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 좀 술술 해보려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영어라는 언어로 표현되어 있는 지식들을 익히고, 더 나아가 전문지식과 관련해 더 공부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스스로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기초적인 능력을 배양해 주는 것일 것이고, 그것은 곧 문법과 독해력중심의 영어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생활영어는 상황에 떨어지면 필요에 맞게 늘어나지만 그 기초가 되는 문법과 독해력은 학교교육이 아니면 배양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에 여기서 더 나아가 미국사람들과 영어로 술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 개별적인 요구에 맞추어 더 공부하면 된다. 관광을 가고 싶으면 각자 책자를 구해 관광영어를 배우면 되고 유학을 갈 사람들은 그에 맞추어 학원에 다니면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면 되고 영어로 비즈니스나 학술교류를 할 사람들은 또 그에 맞추어 알아서 준비하면 된다.

온 국민이 자신에게 닥칠지 안닥칠지도 모르는 시츄에이션 때문에 유치원때부터 영어를 쓰고 어설픈 원어민 강사들을 칙사대접하면서 영어회화에 올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얼마전에 초등학교 6학년인 우리 큰아들의 writing class에서는 좀 색다른 행사가 있었다. get, got, was, be, - ing 등 몇가지 단어의 장례식을 지낸 것이다.

즉 get이나 be동사와 같은 쉬운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대화나 작문을 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그 어휘들은 우리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웠던 그런 단어들이다.

나는 가끔 치과에서 어시스턴트들에게 훌륭한 영어를 쓴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건 내가 회화를 잘해서가 아니다. 아마도 그건 - 내가 가끔 그들의 영어를 잘 못알아 들어도 - 내가 쓰는 어휘들이 걔들이 쓰는 속어나 간편생활영어가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우고 책을 보며 익힌 단어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교과서나 종합영어를 통해 익힌 소위 ‘문법과 독해중심의 영어’들이 매우 수준있는 것들이었으며 외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전문직을 수행해나가는데 아주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전에 어떤 잡지의 기사를 보니까 모 재벌기업 연구소에서 우리나라에서 영어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10 몇 조씩이나 되는데 비해 영어성적은 전세계에서 90 몇위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그러므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구역을 만드는 등 영어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나라가 영어에 사생결단 올인을 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몇 십년앞을 내다보며 경영을 기획한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회사 연구소에서조차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은 좀 실망스럽다.


그 연구소에서 인용한 자료는 보나마나 토플이나 토익등 전 세계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치루는 시험결과일 것인데 - 그래야 비교가 가능했을 것이다. - 영어의 일부분인 회화능력위주의 시험을 근거로 ‘영어실력’을 90 몇위로 단정한다는 것도 우습고 영어 공용어 구역을 통해 ‘영어교육’을 강화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영어교육과 영어실력의 개념이란 도데체 무엇인가.

영어 유치원이나 지자체에서 앞장서는 영어 마을 등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지만 요즘 한국에서 나타나는 개념없는 영어편향성의 백미는 아무래도 대학교에서 유행한다는 영어로 하는 수업이 아닌가 한다.

미국에서 십수년을 공부한 사람들도 영어로 배우거나 가르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데 과연 한국에서 부담없이 영어로 수업을 준비하고, 또 부담없이 영어강의를 통하여 전문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영어는 영어시간에 하고 전공시간에는 전공에 집중해야지 왜 대학교 수업시간에 영어를 하라고 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만드는 것일까? 이는 모든 대학수업을 영어회화의 ‘시츄에이션’으로 바꾸는 꼴이어서 내게는 일종의 시트콤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올해로 미국에서 교수 2년차를 맞는 S박사는 감칠맛나는 적절한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한국어 대신 영어로 강의를 준비하느라고 몇배의 노력을 들여야 했다.

특히 작년에 했던 학부생강의는 본인 표현에 의하면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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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산치과 2007-05-07 17:53:24
잘 지내니?
벌써 6학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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