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기 베트남 진료단 후기]⑦ -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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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베트남 진료단 후기]⑦ - Let it be
  • 김기현
  • 승인 2007.05.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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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태운 벤츠 미니 버스는 흙먼지를 날리면서 비교적 잘 닦인 비포장 도로를 달린다.
얼마만 이었던가? 이런 정겨운 비포장도로를 달려본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은 오래 전일지라도, 사소한 것일지라도, 아주 작은 자극만 가해지면 쉽게 재생이 된다.

이렇게 흙먼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때면 어김없이, 아주 어렸을 적 시골의 외할머니 댁을 찾아가는 길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이 기억난다.

▲ 고자이 마을의 위령비
너무 어렸을 적 돌아가신 외할머니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그 길은 마치 엊그제 다녀간 것처럼 뚜렷하다. 가는 길이 멀다며 칭얼대는 나를 다독거리며 업어주시던 엄마의 따뜻한 그 등까지도.

정겨운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고자이'라는 조그만 마을이다.
우리로 치면 '리'정도 되는 아주 조그만 마을.

그곳은 지금으로부터 41년 전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주 잔인한 기억이 되었던 곳이다. 1966년 2월 26일, 380명의 마을 주민이 한국군에 의해 죽음을 당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그 많은 수가 단 1시간만에 땅에 묻히게 된 것만으로도 전쟁의 야만성을 다 보여주는 것 같아, 전쟁박물관에서 느꼈던 아픈 마음과 달리 웬지 모를 무거움이 가슴을 짓누른다.

묘지에 새겨진 그들의 이름을 보면서 무거움이 더해진다. 향불과 함께 피어나는 연기조차도 그 무거움에 더디 날아가는 듯 하다.

그저 그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그들과 우리의 마음을 좀 더 가벼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그곳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긴다.
'잔인한 기억도 그러할까?'
'아마 그렇겠지? 아마 그럴꺼야!'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돈다.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몇 번이나 내 생각을 애써 부정해 본다.

벌써 40년 동안이나 그 기억을 하고 살아왔고, 앞으로 또 몇 십 년을 그런 기억 속에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끔직한 일인것 같기에.

흙먼지 날리며 온 정겨운 그 길이, 되돌아가는 동안엔 기억나질 않는다.

무슨 말이 더 필요 있을까?

전 세계 대중음악 역사상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름.
음악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두곡 쯤은 어디선가 반드시 들어봤을 음악.
숱한 화제를 뿌리며 사라진지 40년이 된 지금도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이들.

비틀즈와 그들의 음악이다.

▲ 베트남 진료단의 남자들. 빨간 옷을 입은 분이 8기 진료단의 정태환 단장님
비틀즈의 해체위기 때 그 괴로움을 이겨내고자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는 'Let it be'.
결국 이 노래가 담긴 음반 발매와 동시기에 비틀즈는 해체되고 말았고, 'Let it be'는 지금까지 세계인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음악 1위를 그 이후로 한번도 놓치지 않게 된다.

무척 좋아하는 노래이다. 멜로디나 그들의 목소리도 좋지만, 가사의 의미가 더욱 가슴에 와닿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하면 '순리대로 살아라(내비둬)'라고 하는 제목의 이 노래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지혜는 결국 'Let it be'라고 그들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다.

대학시절, 순리대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순리대로 살면 짓밟히고, 터지고, 철창에 갇히고, 죽임을 당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열심히 땅을 일구어 살아가는 농민들은 그들이 흘린 땀의 대가를 받기는커녕 수많은 빚더미에 짓눌리게 되고, 세계 최장시간과 최고의 노동강도로 일하면서도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가난과 재해로 쓰러져간 노동자들을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그래서 순리대로 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썩 열심히 그리한 건 아니지만) 저항하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었고, 저항정신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것이란 믿음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았다.

맞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고 변혁하는 것은 저항하는 것이다.
저항정신이 없으면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그래서 저항정신을 시대정신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저항하는 것은 곧 순리대로 사는 것이다. 저항은 대립되는 것과 날을 세우는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날을 세우는 건 초보자의 몫이다. 진정한 고수는 물결 가는 대로 있는 듯 없는 듯 함께 가면서 흐름을 바꾸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뀌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이번 진료단의 노장 3인방은 저항과 순리의 변증법적 관계를 몸소 보여준 선각자들이다.

부산에서 오신 조기종 선생님은 얼굴에서부터 'let it be'이다. 그저 뒤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될 터인데,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고, 실무진들이 챙기지 못한 부분을 항상 챙기신다.
젊은 우리들도 따라하기 힘든 일정을 단 한번의 어긋남도 없이 소화해 낸 진정한 고수이시다.

대구에서 오신 정제봉 선생님은 참으로 영혼이 맑은 분이다.
불의를 보며 참지 못했다던 작년의 사건을 직접 말하면서, 그런 점 때문에 스스로 백의종군하여 올해 궂은 일을 도맡아 하신 노장이다. 베트남 중학생들과 함께 맑고 선한 눈빛으로 오락시간을 주도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감동 그 자체였다. 마치 스스로 이야기했던 작년 사건이 진실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리고 항상 말씀은 없으시지만 웃는 표정의 정태환 단장님!
두말할 필요가 없는 분이다. 그의 넉넉한 웃음만으로 모든 걸 다 말씀해 주지 않는가? 그의 구수한 말투 속에서 모든 걸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이전 단장님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단장으로서 가져야 할 최고덕목을 지녔으니, 이번 단장 선정은 역대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말을 안해도 통하는게 있다.
노장 3인방을 보며 느끼는 이번 진료단원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8박 9일동안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편안함, 존경스러움, 행복함, 부러움 등등.
이번 진료단의 이심전심이 아니었을까?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그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단 하나일 것이다.
For 'Let it be'.

내가 고난의 시간들 속에 있을 때 'Let it be'
내가 어둠에 잠겨 있을 때도 'Let it be'
사람들이 세상을 살면서 좌절할 때도 'Let it be'
비록 서로 헤어지더라도 다시볼 기회는 있기 마련이죠. 'Let it be'
어둡고 껌껌한 밤에도 나에겐 아직 등불이 있어요. 'Let it be'

김기현(건치 광주전남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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